[기고] 재활용품수집 노인들에 대한 연구노트

『걷고싶은도시』90호(2017 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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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품수집 노인들에 대한 연구노트 

소준철

1. 들어가며

나는 노인과 노인들의 생활세계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다. 2015년과 2016년, 서대문구 북아현동을 거점으로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의 생애사, 생활공간인 경로당의 현재, 노인들의 식생활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자로서의 본령(本領)인 역사사회학/사회사 분과에서 해방 후 도시계획 하 강북 지역에서의 넝마주이와 고물상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현장 연구의 여진(餘震)이 상당하다.
어쩌다 이런 연구자(지망생)가 되었는지 털어놓으며, 나름의 연구 방편(方便)을 소개할까 싶다. 알고 보면 역사사회학/사회사 전공자다 보니 이론과 사료(史料)를 오가는 일이 보통의 연구법이다. 그렇기에 오래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혹은 서울역사편찬원과 같은 도서관/자료관, 박물관이나 온갖 온라인-아카이브들이 현장이다. 별난 현장이라 해봤자 단골 헌책방이나 박물관이고, 답사를 빙자한 골목(안 맛집)탐방이었다. 그런데 이 골목-탐방이 ‘현장’이 될 줄은 몰랐다. 노포(老舖)를 찾아 골목을 걸을 적에 여기저기 쌓인 박스더미를 심심찮게 발견했고, 아침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을 지나쳤다. 어느 날 강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작은 골목을 지나가는데, 일 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거리에서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 여럿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녀들이 함께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녀들은 경쟁 중이었고 갈림길에 다다르자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엔 몰랐지만, 고물은 먼저 발견한 사람의 차지가 되니까 남의 뒤를 따를 필요가 없던 것이다. 한 소설의 설명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고물은[고물줍기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였다. 물건이 나올 시점을 잘 잡아 때맞춰 돌아다녀야 했다.” 모두가 다른 편인, 재활용품 줍는 노인 무리를 보고 나서 무작정 연구를 시작했다.
현장연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처지라, 조은·조옥라의 『도시빈민의 삶과 공간: 사당동 재개발지역 현장연구』와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이하 사당동)을 연이어 읽기 시작했다. 지난한 과정이 될 줄은 몰랐지만 훌륭한 방편을 깨쳤다. 김홍중 역시 나와 같은 지점에서 『사당동』이 알려 준 방편의 가치를 되짚는다. “『사당동』은 해당 사회현실로부터 ‘통계적 일반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대신, 수많은 도시빈민과 그들의 셀 수 없이 많은 삶의 이야기들 중에서 오직 하나의 사례,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세부(細部), 돌려 말하자면 하나의 모나드를 설정하고 거기에 전적으로 집중한다. 그 가족의 내부를 깊이 들여다본다. 그들과 소통하면서 그들 생활세계의 의미영역들을 차분히 가시화한다. 그런 방식으로 개방된 가족의 삶의 현실은, 가족을 품고 있는 한국사회 자체의 다양한 문제들을 응축(표현)하고 있다.” 선배연구자의 연구를 디딤쇠로 박고, 한 사람의 생활의 사회적 위치와 그 의미를 깊이 들여다 볼 요량으로 ‘현장’에 진입했다.
현장에 진입하자, 가난을 상대하는 자세, 즉, 연구의 목표 설정이 중요했다. 최현숙이 기획하고 쓴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가?』와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를 읽었다. 최현숙은 기존의 가난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가난은 “삶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며, 가장 온당한 존재 방식”이며, “가난은 잘만 살면 좋은 삶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자 가장 온당한 존재 방식”이란 서문이 인상적이었다. 일상과 학계는 가난에 대해 “저임금 노동-과로-노동-빚-병으로 점철된 삶”이라 대변(對辯)하며 담론을 구상한다. 그러나 “자급하는 삶”을 통해 “자존감”있는 삶이라면 ‘좋은 삶’이라는데 이견을 달 수 없다. 부유한 삶이 항상 좋은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처지를 ‘가난하다’고 전제하는 걸 피하고, 사람의 역사와 이야기를 통해 ‘어떤’ 가난, 즉, 자급하는 삶인지 아닌지, 그 생활을 세밀하게 관찰하기로 했다. 그러나 돌파해야 할 것들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첫째, ‘재활용품 수집’일을 하는 노인들에 대한 일종의 ‘가난한 노인의 일’이라는 신화를 털어내야 했다. 최초의 실태조사인 이봉화의 “관악구 재활용품 수거 어르신들의 생활실태와 개선 방안”은 재활용품 수집의 계기를 묻고 있는데, 노인들의 응답은 “용돈 마련”과 “생계유지”나 “부업”, “소일거리”와 “운동 삼아”로 나눴다. 재활용품 수집의 계기가 가난이라는 동정심을 반박할 여지가 보인다. 돌려 말하자면, “소일거리”나 “운동삼아”라는 (적은 수의) 응답은, 늙지 않은 그리고 은퇴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답이다. 재활용품 수집은 생계의 방편일 뿐 아니라, 생활의 방편인 셈이다. 재활용품 수집 행위는 가난한 노인의 표상(表象)이지만, 한편으로 어떤 노인들은 ‘자급하는 삶’의 수단이기도 하다. 이 경우는 각각 다르게 읽어야 한다. 가난은 해결해야 할 사회적·경제적 문제 지점이지만, 그/녀들의 삶이 새겨진 근육을 보며 ‘가난’하다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혀를 찰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둘째, 노인의 생활을 알아야 했다. 특히, 도시 단위가 아닌 동 단위에서의 생활을 알 필요가 있다. 동네를 몇 바퀴 돌고 그저 방을 얻어 사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없었다. 북아현동은 다른 빈민주거지역이나 마찬가지로 “가시적인 빈곤이 사라진” 공간이다. 그렇기에 대면하지 않고 단순한 관찰로는 속사정을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다세대주택의 경우에 거주하는 ‘방의 층수’, (판매 이전에) 재활용품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는지를 ‘보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2015년의 연구에서는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행위에 국한하여 관찰하는데 그쳤고, 2016년의 연구에서는 이전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여 제도·정책과 인간관계에 대해 가능한 세밀하게 살폈다.

2. 넝마에서 폐지로: 재활용품 줍기의 간략한 역사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나타나는 특징이 하나 있다. 르페브르(Henri Lefebvre)의 지적대로, 제도와 산업이 곳곳에 스며든 공간이다. 재활용품 수거는 단순한 정책이라기보다, 제도와 산업이 스며든 행위이다. 재활용품 수거는 1980년 들어 아파트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한동안은 재활용품 수거, 특히 분리배출은 기대만큼 원활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기존의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주택 역시 재활용품의 수거를 바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재활용품 산업이 별달리 성장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재활용산업을 위한 수거보다 매립 혹은 소각 등의 ‘처리’방법을 결정하기 위한 분리수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5년 들어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생겨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흔히 쓰레기수수료 종량제가 시행되었다고 하는데, 이 제도는 ‘일반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리고, 재활용품은 분리배출한다’는 원칙을 세운 시기다. 이전까지 넝마주이와 고물상이 재활용 업체와 직접 거래를 해왔지만, 이 시기부터 공공영역이 재활용품 산업에 개입하였고, 관리의 직접적인 주체가 됐다.
불가능할 상상을 해보자. 자원순환이 완벽하게 기능하는 사회를 상상하는 일이다. 필요한 도시의 물리적 기반시설로 쓰레기통, 중간처리시설, 소각장, 재활용-자원생산시설이 있다. (여기에서 분리수거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수집과정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중간처리시설에서 분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쓰레기를 수집하는 청소부, 그리고 각 단계에서 필요한 노동인력을 상정해보자. 완벽한 자원순환이 가능하다면, 다르게 말하자면, 골목과 대로의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정부의 제도에 의해 완전히 보장되고 기능한다면, 인민(人民)들은 재활용품이란 단어를 쓸 이유가 없다. 쓰레기를 버리면, 제도/절차에 의해 알아서 처리되니, 개인은 알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우리가 딱히 알 필요 없는 은어로나 남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재활용이란 단어와 그 실체는 생활에 무척 밀접한데, 이를테면 제도와 산업에 의해 완벽하게 굴러가는 자원순환은 여태껏 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재활용품 수집가들의 처지란, 제도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못 하는 빈틈을 순종하는 개인이 메워온 것에 해당한다는 주장은 비약일까? “다시 말해, 그/녀들은 정책과 제도가 미처 닿지 못한 문 앞과 골목까지 찾아와 방치된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과 제도를 대신한다기보다, 재활용품 수집은 정책과 제도의 빈틈이 만들어 낸 변종의 직업이라고 보아야 한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의 역사적 계보를 간략하게나마 그려보겠다. 넝마주이가 언제 어떻게 짜잔 등장했는지 아직 알 수는 없다. 고물상이 등장할 즈음에 활개를 핀 게 아닐지 추정할 수 있다. 누군가 버린 것을 주워 와 자신이 재사용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고물상이나 재활용업장에 팔아 돈을 버는 일이니, 넝마주이와 고물상은 등장 시기가 비슷할 것이다.
남이 버린 물건을 주워와 일부를 재사용하고, 쓰레기를 재활용-자원으로 삼는 곳에 판매하는 일은 필경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관찰의 사례로 식민지기의 한 기록이 있다. 1924년 아카마 가후(赤間騎風)라는 재조일본인(在朝日本人)이 경성에 대해 쓴 르포르타주,『대지를 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카마는 현재의 오장동에 있는 넝마주이 소굴에 간다. 그러고는 한 넝마주이의 망태에 담긴 쓰레기들을 기록한다. “넝마, 마루마게(丸髷) 가발, 염소가죽인지 돼지가죽인지 서너 치[약 10cm]쯤 되는 걸 4,50매 묶은 것, 헌 게타(げた)짝, 유리병, 유리조각, 털 지스러기, 진흙투성이 조선 빗, 털 빠진 브러시, 왼쪽뿐인 털장갑, 낡았지만 멀쩡한 알루미늄 주걱, 조선 가구의 놋쇠 장석, 구리 선, 자개 단추, 망가진 장난감 납 시계”같은 것들을 모아놓았다. 이 넝마주이들은 등에 망태를 걸머지고 손에 쇠꼬챙이를 들고 다닌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공간은 주로 쓰레기통이며, 모은 것 중 일부는 고물상에 팔았다. 특히, ‘마루마게 가발’에서 나오는 솜을 꺼내, 고물상이 아니라, 다리집[かもじ屋]에 직접 가져다 팔았다.
1955년 동아일보는 서울로 올라와 종로 어귀에 살며 넝마주이일을 하는 18세 정모의 사연을 보도한다. 정모가 줍는 건, “깨어진 병, 종이, 쇠토막, 양은, 깨어진 것, 유리판쪽[유리판 조각], 홍겁쪼각[헝겊 조각], 뼈다귀” 등이다. 넝마를 줍는 방법이란 식민지기의 방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커다란 광주리를 등에 걸머지고 쇠꼬챙이를 엽창 삼아"줍는데, 기자는 이를 두고 ”쓰레기 사냥“이라 표현한다. 자신(과 속한 넝마주이 조직)이 ‘나와바리(구역)’ 삼은 ”여관, 회사, 학교, 은행, 다방, 신문사 등의 쓰레기터[쓰레기장]“에서 팔 수 있는 쓰레기를 솎아 온다.
1980년대 들어 넝마주이들의 활동 공간이 줄어든다. 1980년이 기점으로 보인다. “폐품활용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당시 환경청 산하에 한국자원재생공사를 설립한다. 연이어 1981년 12월부터 일부 시·도에서 분류수거[현재의 분리수거]를 실시했고, 1982년 전국적 확대를 시도한다. 이 시기 들어 주부들이 폐지나 빈 병을 모아 직접 고물상에 파는 일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고물상은 넝마주이 뿐 아니라 주부들까지 상대하게 되었다. 반면, (전업) 넝마주이는 이제 서울의 대로변과 골목이 아니라, (1978년 설치된) 난지도 매립지로 향한다. 이들의 모습은 1980년대 도시 하층민을 다룬 민중문학에서 반복하여 확인할 수 있다.
넝마주이가 재활용품 수집 노인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며, 연원(淵遠)한 경로를 주장할 수는 없다. 가령 재활용품 수집을 하는 노인들, 특히 당대 주부였던 여성들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사이에 ‘고물’을 팔아 돈을 번 습관을 이어가는지도 모른다. 즉, 이즈음 생계를 위한 넝마주이의 재활용품 수집 뿐만 아니라 가욋돈을 버는 재활용품 수집/판매 방식이 만들어졌다.

3. 재활용품 줍기와 노인의 방법

현재의 재활용품 수집 노인을 정리하면 “몸과(/혹은) 마음이 불안정한 처지로 인해 골목에서 재활용품을 주워 파는 노인”으로 볼 수 있다. 사회에서의 역할이 크게 변치 않았다는 해석 하에, 새로운 넝마주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이는 가욋돈 벌이의 수단으로 재활용품을 모아 판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작업활동을 구분하면, ‘진입→수집→운반→보관→판매’로 볼 수 있다. 노인들이 재활용품 수집에 진입한 계기를 살펴보면, 노인의 처지가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처지이며, 그나마 장사를 한다 해도 개인사업자라 해도 쇠퇴(衰退)한 지경에 처한 처지라고 볼 수 있다.
노인들이 수집하는 재활용품의 종류는 가지각색이다. 종이상자와 신문지 같은 폐지는 물론이고, 금속 파이프, 오래된 텔레비전, 나무액자, 의자 등, 고물상에서 사줄 법한 물건들이라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수집한다. 이 수집 과정은 주로 미개발된 골목이나 주변의 상권에서 이루어진다. 북아현동 지역에서의 수집 방식이란 여섯 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골목에서 이루어지는 수집으로 (1)문전수거 방식으로 배출된 재활용품 수집, (2)재활용정거장에서의 재활용품 수집, (3)분리수거망에서의 재활용품 수집, (4)이웃들의 도움으로 재활용품 수집이 있다. 나는 조사 과정에서 노인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1)과 같이 문전수거 방식으로 배출된 재활용품을 줍고 다닌 적이 있다. 자치단체의 조례에 따라, 단독주택이 밀집한 지역에는 문 앞에 재활용품을 내놓는 경우인데, 골목을 따라 줍다보면 보통 한 시간 동안 박스 십여 개 이상을 주웠다. 그러나 그 값은 몇 백원이 안 되었다. (2)와 (3)은 실상 재활용품 더미를 헤쳐 팔 만한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일인데, 동사무소 직원, 주민, 재활용정거장 관리사 등의 눈초리를 피해 남몰래 이루어진다. 이는 신체의 활력이 현격히 떨어진 노인이나 생계를 위한 재활용품 수집 노인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근처 이대 앞이나 충정로, 서대문역, 광화문 등지를 걸어다니며 (5)상업지구에서의 재활용품 수집을 한다. 마지막으로 사무용 빌딩 혹은 사업장에 들어가 청소와 같은 단순노무를 하고 합당한 임금 대신에 (6)대가로서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 이 건 대개 여성들의 일이다.
운반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이전 넝마주이와 달리, 무척 다양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작은 차이가 있다. 남성들 대개는 리어카를 끄는데, 간혹 리어카에다 오토바이를 연결하는 경우도 있으며, 혹자는 오래된 자동차를 끌고 다니며 시트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온갖 고물을 넣었다. 여성은 등에 가방을 짊어지는 사람, 노인용 보행기를 끌고, 카트를 이용하고, 간혹 리어카를 직접 끄는 사람이 있다. 관찰한 한에서, 할머니들은 카트를 끌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은 여성처럼 노인용 보행기나 카트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는 별로 없다. 다만, 남성들은 여성에게 위협적이라는 건 알아둬야 한다. 재활용품 수집이란 몸이 경쟁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별다른 운반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령 북아현동에서 만난 A씨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재활용품을 줍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가방’을 꼭 메고 간다. ”길에 버리는 옷이라도 거기 있으면, 신문이라도 거기[가방에] 담으면은 챙피하지가 않는다[않아]. 구루마 끌고 다니면은 보이잖아. 그래서 안갖고 와. [가방에다] 별거 다 주워가지고 와.”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을 더 하면, 심야 시간에 수집·운반하는 노인들에 대한 접근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조사 과정에서 노인들은 새벽 4시에서 6시 사이, 즉, 잠을 자고 일어나서 나선다. 그러나 새벽 1시에서 4시 사이에 골목을 오가는 노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의 경우는 생계를 위해, 생활의 곤궁함을 해결하기 위해 수면을 포기하고 거리에 나선다. 또한 심야 시간은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심야에 골목을 걷는 일은 교통사고에 직결되기 쉽다. 여러 지자체에서 안전장구를 제공하지만 착용하는 노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차라리 골목 안에서 차량이 자연스레 속도를 절감하게끔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는 일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그/녀들은 재활용품 수집을 마치면,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바로 집에 들어가지 못 한다. 돌아오자마자 재활용품과 운반수단을 보관한다. 보관방법은 다섯 가지 정도로 나뉜다. (1)벽이나 담 근처에 재활용품을 따로 빼 포장/보관하거나, (2)집 근처에 운반수단에 실은 채로 보관한다. 건물 주인과 주민들의 명시적/암묵적 동의를 얻어 (3)건물 현관 입구나 건물 내 자투리 공간에 보관한다. 물론 (4)집 안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드물게 집단적으로 수집하는 노인들의 경우 (5)경로당과 같은 합의된 거점공간에 모으기도 한다. 노인들이 판매만큼 중히 생각하는 건, ‘수익’과 직결되는 보관이다. 모아놓은 재활용품 뿐 아니라 운반수단까지 도난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재활용품을 판매하기 전에 필요에 따라 사용할 물건을 선별한다. 옷과 신발, 그릇 같은 일상적인 가재도구들은 쓸 만한 것들을 골라 두고, 자신이 직접 사용하거나 주변의 노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그리고 팔 만큼의 재활용품이 모이면, 고물상이나 (보통 1톤 트럭을 끌고 다니며 재활용품을 매입해다 선별업체나 보다 큰 고물상에 파는 중개상인인) 나카마(なかま)에게 판다. 이 재활용품의 가격은 널리 알려진대로, 재활용-자원의 최종 구매자격인 제지업체, 자원업체에서 정한다. 폐지의 경우, 제지업체가 수율 기초로 매입가격을 결정하며, 이 가격을 기준으로 중간처리업체가 자신의 이윤을 계산해 고물상 등에 매입가격을 고지한다. 고물상 역시 자신의 이윤을 계산해 노인들에게 폐지 가격을 통보한다.
한 재활용품 수집 여성노인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A는 가욋돈의 형태로라도 생계비에 보탬을 주려기 위해 재활용품을 줍기 시작했다. “돈(이) 다 없어졌어. (그래서) 여기 오자마자 했지 뭐”라며 말이다. 우선 그녀의 한 달 생계비를 따져보자. 한 달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은 16만원(기초연금)과 20만원(노인일자리사업)으로, 총 36만원이다. 그러나 노인일자리사업의 경우, 1년 가운데 9개월만 일하기 때문에 3개월은 16만원(기초연금)으로 지내야 한다. 1년 단위로 치면 약 756만원의 수입을 가진다. 고정적으로 내는 돈은 다음과 같다. 휴대폰 요금으로 한달에 9670원 정도의 비용을 낸다. 내야 하는 공과금은 첫째, 건강보험료 지출이다. 대략 13,000원 정도를 내고 있다. 대중교통비는 거의 들지 않는다. A는 걸어서 이동하기 힘든 거리는 무료로 승차가 가능한 지하철을 택한다. 주로 식사와 난방비와 관계를 갖는 가스비는 “1,100원” 정도를 낸다. 전기요금은 “요새(2016년 여름), 여기 전기요금, 테레비전 안보니깐 3,000원”이다. 보고 싶은 티비는 “여기(경로당)서 노상 보”고 “냉장고 하나 쓰니까” “기초만[기본적인 비용만] 나갈거”라 말한다. 다만, 친목회 같이 기존에 자신이 활동하던 사회참여는 그만 둔 상태다. 경조사비를 내는게 부담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A는 “그짓말해서 남의 돈(을) 꾸기도 싫고, 내 양심껏 살아야”한다고 본다. 그러나 “내가 살기가 힘드니깐” “누굴 (돈을) 주지(는) 못”하는 처지이다. 이 외에 여기 저기쓰는 돈을 합치면 “잘 하면 50,000원 나가는 거 아니야? 이것저것”이라 파악한다. 한 달에 39만원에서 40여만원 정도의 수입으로, 3-5만원의 고정 지출을 두고, 나머지 금액은 필요에 따라 지출한다. 2016년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가 649,932원이며, 생계급여가 471,201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자. 1인당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A가 서울이란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 무척 놀랍다.
A가 언제, 어떻게 폐지와 재활용품을 주워다가 어떻게 파는지,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살펴보자. 우선, 그녀가 폐지를 수집하는 시간은 의외로 규칙적이다. 이는 그녀의 하루 생활이 아침시간의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와 경로당 활동이라는 비교적 규칙적인 일과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기상(5~6시) → 아침식사 → 노인일자리사업(인근 주차장 청소: 일주일에 이틀, 한 달 열 번) → 경로당(10시~11시) → 점심식사/경로당 내부 혹은 바깥(월,화,목: 경로당. 수,금: 교회) → 경로당 문닫기 / 저녁 식사 → 채소트럭 알바(18시~21/22시) → 취침”으로 이루어지며, 하루 생활 가운데 상당 시간이 경로당에 이어진다. 그녀는 폐지를 수집하기 위해 일부러 골목을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일,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겸사겸사 골목에 내놓은 재활용품을 수거한다. 그녀가 말한 노하우가 하나 있다. 무작정 골목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이사가는 사람이 있는지 눈 여겨 보고, 소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사대행업체의 차량이 있는지 없는지를 관찰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사 간 사람들. 이삿짐 센터 (차가) 있을 때는 분명히 거기서 나오거든 그런 게 갖다 주는 거지. 그럼 내가 필요한 거 이제 가져오는 거야.” A에게 재활용품 수집은 가욋돈을 버는 방편이다. 지역 내외를 돌아다닐 때 폐지나 재활용품을 주워 집 마당에 쌓아놓는다. 모은 재활용품을 파는 건 정기적이지 않다. 파는 시기도 꽤 떨어져있는데, 일 년에 몇 차례되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에 재개발지구의 한 주차장에서 임시영업하며 “딸딸이”를 끌고 북아현동 일대를 쏘다니는 ‘나카마’-부부나, 윗동네에 있는 고물상 할아버지를 불러 판다. 이렇게 간헐적으로 팔아 받는 돈은 아무리 많아야 2-3만원 정도다.

4. 공동의 인정, 혹은 어려움의 타개

A는 삶에 필요한 최저물품을 상정하고, 각 물품을 구하는 각각의 요령과 방편을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다. 무엇보다 A에게 경로당은 다양한 자원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그녀의 생활을 유지시킬 수 있는 중요한 플랫폼(platform)이다. 단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정보와 ‘기회’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봉사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자원 조달을 위한 일을 한다. 우선, 그녀는 임원이란 위치를 이용한다. 경로당에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는데 임원으로 앞장선다. 자신의 봉사를 통해 회원들의 암묵적 동의를 얻는다. 또한 관과 개인 사이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경로당에서 정보를 선취할 ‘자격’을 얻는다. 무엇보다 ‘회계장부’를 관리하고, 필요에 따라 경로당 내 회원들에게 공개하면서 회원들의 견제를 방어한다. 젊은 시절부터 이어 온 조직에서의 뛰어난 방편이다. 이처럼 경로당에서의 봉사(와 일)는 자원조달을 위한 A만의 방편 중 하나다.
재활용품 수집 역시 A가 경로당에서 ‘인정’을 받는 방편이다. 사실 A가 재활용품을 줍는 이유는 다음의 네 가지 때문이다. ‘경로당의 소득’으로 삼을 재활용품과 ‘자신의 소득’으로 삼을 재활용품과 ‘팔지 않고 자신이 재사용해 쓸 것’ 그리고 ‘팔지 않고 나눌 것’을 명확히 나누어 수집한다.
무엇보다 ‘경로당을 위해 팔 재활용품’은 무척 성가신 수집이다. 경로당에서 상시적으로 식사를 하는 인원이 적잖다. 여자방의 경우 보통 13명 내외, 남자방은 16명 내외이다. 부족한 쌀은 지역사회단체로부터 기부를 받는 방식으로 감당하고, 부식비가 부족하기에 반찬을 가정에서 조달하거나 값싼 재료를 사온다. 문제는 믹스커피같은 같은 기호품의 조달이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종종 믹스커피를 사서 비치하기도 하지만, 항상 기댈 수는 없다. A는 재활용품을 모아 팔자고 제안했고, 같은 건물의 공무원들에게 요구해 주민센터에서 나오는 폐지를 모아 수집하고 있다. 게다가 A를 주축으로 경로당 회원들 중 일부가 폐지수집에 참여한다. 그 결과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처럼 100~130kg의 폐지·의류·신발 등을 모아, 정한 양이 모이면 재활용품을 팔아 기호품비를 충당한다. 그러나 재활용품 수집을 불편하게 여기는 회원들이 ‘눈칫밥’을 주거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특히, 그녀는 주변의 눈칫밥을 신경 쓴다. A는 자신의 경로당에서 임원직을 맡고 있다. 가방이 아니라 눈에 뵈는 운반수단을 들고 다닌 날엔 눈칫밥을 먹기 일쑤다. “그걸 또 왜 들고댕겨. 들고댕기면 (중략) 주책이라고.” 그래서 그녀는 재활용품을 주워다 넣을 ‘가방’을 멘다.
더욱이 어떤 노인들은 재활용품을 쌓아놓는데 대해 불평불만을 털어놓는다. 그렇기에 그녀는 보관에 신경을 써야 하고, 재활용품 판매의 당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내가 박스를 착착 쌓아놓거든. 지저분할까봐. 그렇게 해서 요거 팔면 또 커피 살 거니까요. 지저분하다고 그러지 마세요. (중략) 내가 이건 내 개인 사유로 하는 거 아니니까, 보태는 거니까 내가 돈을 못 쓰니까 그런 거라도 내가 해야 하잖아”라고 말이다. 간혹, 팔아서 제 몫을 챙긴다는 말도 듣는다. “[노인들이 뭐라고] 그래”서 “나 여기서, 노인정에서 훔쳐가는 거 아니에요”라고 변명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렇게 사적인 소득을 얻지 않냐는 의심을 산다. 눈칫밥과 의심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가장 필요한 건 필요에 따라 원조를 구해오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는 빈곤함을 온전히 증명하지 못하고,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이다. 필요에 따라 경로당에 그릇을 가져다 놓기도 했다. 이사가며 버린 그릇들은 A의 눈에 “쓸만한 것들”이었고, 그 양이 적잖었다. 나누는 일이란 단지 온정적인 공유의 일만은 아니다.
필요한 자원을 얻고, 나누기 위해 재활용품을 수집하기도 한다. 자신이 쓰고, 다른 이들에게 나눠줄 것은 대개 옷과 신발이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옷을 주워 입는 건 아니다. 노인정에 한 두 사람 정도가 “메이카 있는 옷”만 사입지만, A는 “그런 걸 안 사입잖아”라며, 자신은 옷 사는 돈을 아낀다고 힘주어 말한다. 만약 산다 해도 “만원 짜리 이상 사 입는 일이 없”고, “누가 주면 입고”, “오천원, 만원”짜리 정도의 옷을 산다. 그럼에도 버린 옷이지만, “너무 좋은 옷(을 사람들이) 버리는게 너무 아까워”라 한다. 덕분에 “이름 있는 것”만 입고, 굳이 “사 입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옷과 신발은 “(남들이) 버리는 걸 주워 신”는다. 버리는 옷이나 신발이 많이 나오기에, “밀려가며[물려가며] 신어, … 물려가며 신는다.” 집에도 열 켤레 정도의 주워온 신발이 있고, 색도 종류도 다양하다. 그리고 입을만한 것은 더 주워 와 경로당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재활용품 수집은 단순한 개인의 난국을 타개하는 방안만은 아니다. 지원이 부족한 경로당이라는 공동체가 처한 어려움을 타개하는 방안이며, 한편으로 이 방안을 제시하는 모습으로 공동의 인정을 얻는 방편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에는 장사를 위해 시작했던 사회활동과 그 안에서 임원으로 지내왔던 덕에, 자신의 ‘체면’이 활동과 생활에 미칠 파급을 정확히 이해하는 개인적 특성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책맞은’ 일을 ‘해볼만 한’ 일로 바꾸는 시도로도 볼 수가 있다. 이를테면, 폐지수집 하는 일을 돈이 없어 하는 일이 아니라 믹스커피 백개들이를 사기 위한 집단의 노력으로 이끌어내는 일 말이다. 삶의 긍정성과 일의 긍정성은 분명 다른 지점에 속해있다. 바깥의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결국 스스로 찾아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처지인 셈이다.

5. 나오며

우리는, “늙는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것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도시에 사는 노인의 처지는 굉장히 유별나다. 서구가 400여 년에 걸쳐 겪은 변화를 40여년 만에 이뤄낸 급격한 산업화과정의 탓인지도 모르겠다. 공동체의 보살핌은 사회와 도시의 변화 속에서 급속히 약화되었다. 유별난 이유란, 이 급격한 변화와 함께 지금 우리가 겪는 문제 역시 인류가 처음 겪는 문제이기 때문은 아닐까?
노인들은 젊은 시절, 자신들을 위한 ‘사회적 장치’를 단 하나도 만들지 못 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늙은 상태에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마땅한 방법 역시 갖기 힘들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늙을 줄 몰랐거나, 가족의 부가 증대되면 (마치 자신의 부모세대처럼) 으레 가족의 부를 통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들은 늙었고, 자식들은 ‘가족의 부’를 나눠가졌을 따름이다. 청년층과 마찬가지로, 늙은 그/녀들 역시 각자도생해야 할 처지이다. 청년은 ‘노오력’하고, 노인은 ‘노력’이 끝나지 않는다. 이 “끝나지 않는 노력”은 노인의 모습이다. 재활용품수집은, 노인들이 가질 수 있는 몇 안되는 방편이지만, 한편으로 노인들이 자원을 ‘수집’하고 ‘이용’하는 유효한 방편이다. “이 앞에서 우리의 안쓰러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그/녀들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녀들은 나름대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연구, 행정, 혹은 남 몰래 가진 사소한 감정에서도.”

이 글은 『함께 걷는 도시』90호(2017 봄호) 에 기고한 글입니다. 읽기가 힘든 경우, 걷고싶은도시만들기연대의 웹사이트 (http://www.dosi.or.kr/걷고싶은도시-2017-봄호/)에서 내려 받아 읽을 수 있습니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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