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식물도감: 시적 증거와 플로라” (-3/19)
단상들: 문명의 표준, 작동 방식의 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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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제국이 제작한 문명, 특히나 근대 문명은 표준화를 수행한다. 도시는 단연 만들어 것들 가운데 기준의 역할을 한다. 도시는 채집된 것을 분류하고, 표준적인 정보로 내보낸다. 대상은 식생하거나 인공적인 모든 것. 식물 역시 현지에서 채집되어 도시지식인들에 의해 분류에 처해진다. 도시지식인들의 채집 도구는 대량 생산되어 각지로 팔려나가 쓰인다. 문서들 역시 그러하다. 현장에서 채집하여 연구실로 돌아와 표준적 지식을 만든다.
#1
식물채집과 분류. 사회의 정보 채집과 분류는 디드로의 백과전서와 린네의 분류법으로 가득 찬 18세기 공간에서 시도되었다. 이후 진화론으로 나아간다. 알다시피 우생학으로도. 민족학으로 파생되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는 하늘로 향하는 종교 나름의 ‘학’과 신화의 계통학(계보학)을 딛고 그 방향을 인간과 사회와 자연으로 뒤집은 결과. 이는 지금까지 이어진다.

#2
분류에서 중요한 건 기록하는 방식. 기록지에 담긴 글자들은 신성하진 않아도, 일종의 정식화 과정을 거치며, 과학적 논리를 거쳐 사전적 의미를 가진 주요한 일반명사 혹은 개념으로 나아간다. 일부는 이론으로. 반면에 실질적으로 근대적 공문식에 변용되기도 한다. 식물과 동물을 기록하는 문서란 인간을 기록하는 문서와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3
한국의 열대식물. ‘한국’이란 특수. 제국은 식생하는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식민상태의 식자들은 이 기록법을 익히고, (어떤 이들은) 그 특수에 감정을 더하며 기록한다. 이를테면 그 감정은 민족에 대한 기록이라며 나아가거나 과학이란 (추상적이며) 보편적 세계에 부역하고자 한다. 이 행위들은 실상 제국의 통치도구를 이용하는데, 여기에서 행위와 감정 사이의 묘한 긴장이 발생한다. 행위는 남아 여전한 기초 정보가 되어 쓰인다. 후의 독자, 혹은 해석자들은 이들을 두고 부역자니 민족지식인이니 하는 설을 푼다. 좌충우돌하는 식민상태의 지식.
#4
본래 한국 식물학 분류에 대한 강의를 들으려 신청했지만, 중요한 연구자의 발표회가 열린다길래 취소를 하고, 못 갔다. 아쉬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잠시 다녀왔다. 과학(작업법과 분류, 채집법, 표본, 전기반응 실험)과 인문과학(역사, 문화), 미술(세밀화) 등 다방면으로 접근한 전시. 지나치면 안 될 전시, 그러나 남은 시간이 얼마없다.
#5
19일까지. 주중이나 일요일에 다시 한 번 방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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