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철


도시에서 사람들이 먹고, 싸고, 사고, 버리고, 치우는 일에 관심이 있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두부의 맛이 바뀌었다. 수세식 변기가 깔리면서 똥을 치던 사람들이 일을 잃었다.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버리는데도 어떤 동네의 골목은 더 지저분해졌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사소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술이 바뀌고, 시장이 움직이고, 정책이 만들어질 때, 명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몸과 감각과 하루하루가 바뀐다. 그 바뀜이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오는 건 아니다. 그 차이 속에 불평등이 새겨진다는 걸 추적하고 탐정질 하는 게 내 연구다.

도시는 내 탐정놀음의 현장이다. 한국의 도시들은 짧은 시간 안에 격렬하게 만들어졌고, 어떤 곳은 버려졌다. 무덤가가 달동네가 됐고 연이어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하천이 복개되고 노점이 생겼지만 곧 복원되며 노점은 쫓겨났다. 사람들은 변화에 올라탔거나 밀려났다. 도시개발과 재개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공간이 변할 때 삶이 재편되는지가 보인다. 청계천에서 난지도로, 다시 서울의 변두리로 이동해 간 사람들의 궤적이 그린 이야기다.

소비와 일상에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매일 먹는 것, 입는 것, 쓰고 버리는 것에는 시장과 기술과 제도가 겹겹이 얽혀 있다. 차가운 두부가 당연해진 과정에는 냉장 유통망과 대형마트의 확산, 입맛의 재편이 함께 들어 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느끼는지는 개인의 취향이기 이전에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감각의 질서다. 그 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을 감각사와 물질문화의 관점에서 읽고 있다.

인프라스트럭처는 그런 질서를 떠받치는 보이지 않는 구조다. 상수도, 하수도, 쓰레기 수거, 위생시설처럼 제대로 작동할 때는 아무도 의식하지 않지만, 고장 나거나 닿지 않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들. 이 인프라가 누구에게 먼저 닿고, 누구에게 마지막까지 닿지 않는지를 보면, 도시의 불평등이 가장 물질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위생이 시민의 자격과 연결되는 방식, 인프라의 상품화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배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

재난은 그 불평등이 한꺼번에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내가 주목하는 재난은 갑작스러운 파국만이 아니다. 노인이 여름의 폭염 속에서 조금씩 고립되는 것, 반복되는 침수 뒤에 쓰레기가 특정 동네에 쌓이는 것, 재난 이후의 복구 비용이 누군가에게만 전가되는 것, 천천히,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느린 재난에 관심이 있다.

이런 질문들을 붙들기 위해 여러 방법을 쓴다. 오래된 신문과 관보, 통계를 뒤지는 역사 연구,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구술사와 에스노그라피를 오간다. 방법이 다르더라도 질문은 같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진 역사를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을 다시 보이게 하는 것.

글은 학술지에만 쓰지 않는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썼고, 『녹색평론』, 『릿터』, 『복지동향』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했고, 『걷고싶은도시』의 편집을 맡고 있다. 연구자가 알게 된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는 일이 연구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도 준비하고 있다.

지금은 전남대학교 역사문화연구센터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