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난은 누가 어떻게 쓰는가

가난은 늘 누군가에 의해 쓰인다. 그러나 여러 가난을 한데 모아 쓰기란 어렵다. 가난을 쓰는 손마다 각기 다른 얼굴을 붙들게 되는데, 저마다 다른 가난을 마주한 탓이고 그만큼 가난의 종류도 많다. 제도권 연구자는 대개 가난을 통계와 정책의 언어로 마주하고, 그중 한 줌의 연구자는 가난을 현장과 생애로 대한다. 또 어떤 소설가는 인물과 장면으로 쓴다. 활동가는 가난을 연대와 저항의 기록으로, 함께 싸운 이들의 증언으로 쓴다. 그리고 드물게, 가난을 살아낸 사람이 스스로 그것을 써낸다. 손이 다르면 글에 불러오는 것이 다르고, 놓치는 것 역시 다르다. 그러니 가난을 읽는 일이란 그것이 어떤 이의 손으로 언제 어떻게 쓰였는지 먼저 묻는 일이어야 한다. 물론 이때 선행해야 할 다툼이 하나 있다. 누가 가난을 말할 수 있는가. 자격의 문제다. 스스로 써냈더라도, 가난을 쓰는 일에는 자격과 ‘대변(代辯)’의 문제가 따라붙는다.

최인기의 『저항하는 청계천』은 부제 그대로 ‘서울 도심 개발과 밀려난 사람들의 역사’다. 청계천의 오랜 시간을 훑되 그 초점은 개발에 밀려난 이들에게 놓이며, 그 끝에는 저자 자신이 그 거리에서 살아온 삶이 겹쳐 있다. 책은 청소년기 부모를 따라 상경해 청계천에서 살았던 저자가 한동안 그곳을 떠났다 돌아온 이야기로 시작한다. 창밖으로 창신동 일대가 내다보이고, 동대문아파트 근처로 청계천이 흐른다. 지금 롯데캐슬베네치아 아파트가 선 자리에 있던 삼일시민아파트, 그 근처의 이발소와 양장점, 세탁소와 방앗간, 생필품을 팔던 구멍가게는 이제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이 공간과 가난은 찐득하게 붙어 있다. 1960~70년대 청계천은 인구나 건축물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어려운데, 이는 당시 이곳에 터를 잡은 이들의 높은 유동성과도 관련이 있다. 그나마 최협의 『판자촌 일기』(2026)와 노무라 모토유키의 『노무라 리포트』 정도를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연구자들은 행정자료와 수기, 문학, 언론 등을 뒤지며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아낼 수 있지만, “그 변화가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까”(13)라는 물음을 직접 던지지는 못한다.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저자가 가난을 쓰는 자리가 나의 자리와 다름을 깨닫는다.

(중략)

그럼에도 물음은 남는다. 이 책이 그리는 저항은 노점상과 노포처럼 서로 오랜 시간 골목을 공유하며 조직될 수 있는 빈민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가난은 꼭 그렇지 않다. 필자가 『가난의 문법』에서 들여다본 북아현동, 한때 조사를 다닌 천호동과 길음동에는 대책위도 상인 간 연대도 꾸리기 어려운 흩어진 가난이 있었다. 청계천의 저항이 이 흩어져버린 빈민 사이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저항의 밑천인 자율은 종종 ‘불법’의 형식을 띤다. 노점도 무허가도 제도의 눈에는 불법이지만, 그것이 생존의 유일한 형식일 때 우리는 그 불법성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즉, 노점과 상가가 오랜 시간 빚어온 자율의 질서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단속의 대상이 될 때, 우리는 제도에 맞서 그 질서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자율성이 어떻게 사회질서 내부에서 재편될 것인지, 또 우리는 흩어진 가난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이 책이 답하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운동을 멈추지도, 글쓰기를 멈추지도 않는다. 그는 여전히 그 거리에 남아 상인들과 밥을 나누고 함께 싸우며, 바로 그 곁에서 쓴다. 그에게 쓰기는 싸움을 대신하는 위안이 아니라, 곁에 남는 일의 연장이다. 그 기록이 있어, 빈민의 생존이 사회의 근거라는 주장은 패배한 자리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의 저항은 이론도 해석도 아닌, 곁에 남아 함께 싸우고 기억하는 실천이다. 나는 경계인이자 관찰자라며 ‘낯설게 보기’니 ‘두껍게 읽기’니 하는 태도를 지닌 척 아는 체해온 사람이지만, 그가 곁에서 살아낸 삶과 그가 만든 이 증언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떠난 자는 부끄러움으로 자기 계급을 썼고, 남은 자는 저항으로 자신의 동네와 이웃을 썼다.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청계천을 비롯해 도시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다시 개발될 것이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밀려날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함께 싸우며 밀려난 이들의 생애를 사회로 되돌려 쓰는 이가 필요하다. 저항이 끝내 해내는 건 그들을 사회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마음을 내려놓고 살 수 있는 곳, 누구나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곳”(127)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본다.

책 정보 https://culturescience.kr/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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