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읽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 박사과정
소준철

1. 들어가며 

일기에 대한 이야기는 꽤나 적다. 연구자들에게 일기는 그 내용이 ‘사실적인 기록’이거나 ‘사실’을 보완하는 자료로써 사용될 때나 쓰인다. 그러나 보편적인 일기의 특징이나 그 구성의 특수성, 작성과 쓰임 등에 대한 이야기는 부족하다. 이 글은 일기를 하나의 사료로써 읽는 시도이다.

우선, 일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기의 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볼 요량이다. 일기에 빠지지 않는 “년·월·일·날씨”란 일기가 가진 연대기적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며(2), 초등학교(혹은 초등학교) 시절 맨 처음 쓰는 (공산품인) ‘생활일기장’류의 일기장의 구성은 일기가 사회에서 작동하는 내용을 드러낸다고 본다(3). 또한 나는 일기를 내적검열의 정도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고 본다. 일기가 작성된 시점에서 공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내적검열의 정도가 낮을 것이며, 공개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면 어느 정도 내적검열의 정도가 높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엄밀하진 않지만, 두 경우는 작성된 일기는 보관되거나, 편집되어 공개되는 서로 다른 경로를 가진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타당하리라 생각한다. 임의적으로 내적검열의 정도가 낮으며 보관되는 경로의 일기를 “나만의 일기(4, 5, 6)”로, 공개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작성 과정에서 내적검열이 이루어지고 편집 과정에서 일부 검열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7, 8, 9, 10)”로 이름붙여 놓았다.

짧아야 마땅한게 ‘웹콘텐츠’지만, 누군가의 “개인적” 기록을 피키캐스트의 콘텐트마냥 장난스레 읽는다는 건 왜인지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스압” 주의를 …….

 

2. 일기의 시작은 항상 “년·월·일·날씨”다 

날짜를 적지 않는다 해도 그 누가 무어라 하지는 않을텐데도, 일기는 항상 날짜를 적는데서 시작한다.  그 이유는 무얼까? 우선 일기가 무언지 생각해보자. 우리는ᅠ살아온 평생의 삶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좋거나 나쁘거나 한 특별한 기억들만 저장하고 다시 그것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일기라는 기록은 그 빈 틈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국립민속박물관(2008), 『기억, 기록 인생이야기: 학호 박래욱 선생의 일기 인생』, 국립민속박물관: 5-6쪽 참조). 물론, “특별한 기억”과 기억의 한계가 가진 “빈 틈”을 고루 적는다. 후에 “끄집어 낼 수” 있게 말이다. 이어 적기 때문에, 일기의 가장 큰 특징은 연대기적 성격을 가진다. 년, 월, 일과 날씨를 적어서 하루치 일기라는 구획을 규정하고, 단 하루나 며칠 만에 끝내는게 아니라 쭉 이어 쓴다는 점이다. 그날그날의 일을 꾸준히 기록하는 행위기 때문에, 일기란 일종의 “연대기적”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읽어봄직한 일기
고은, 2012, 『바람의 사상: 시인 고은의 일기 1973-1977』, 한길사.
김현, 2015/1992, 『행복한 책 읽기: 김현 일기 1986-1989』, 문학과지성사.
박일호, 2013, 『아버지의 일기장: 만화가 박재동, 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에서 부정父情을 읽다』, 돌베개.
이오덕, 2013, 『이오덕 일기: 1962-2003』,양철북.

*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말은 왜인지 모르게 야릇하다. “남의 일기”를 읽는 상상을 해보자. 내가 좋아하던 아이의 속내가 궁금해서 몰래 펼쳐 본 일기이거나, 라이벌의 전략을 훔쳐보기 위해서는 아닐까? 그러나 어떤 일기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여지거나 편집된다. 혹은 그럴 목적은 아니었으나 편집을 통하여 공개되는 경우가 있다. (앞서 살펴 본 일기들과는 다르다.) 출판된 일기들 말이다. 예를 들면, (한국 문학의 “황금 그물”이라 불린) 문학평론가 김현의 일기 『행복한 책 읽기』(문학과지성사, 2015/1992)와 시인 고은의 1973년에서 1977년까지의 일기를 모은 『바람의 사상』(한길사, 2012)은 이후 작가 본인의 편집을 거치고나서 출판되었다. 교사 이오덕이 1962년부터 2003년까지 쓴 일기를 모은 “이오덕 일기”(양철북, 2013: 총 5책)와 만화가 박재동이 아버지가 1971년부터 1989년 사이에 쓴 일기를 편집해 출판한 『아버지의 일기장』(돌베개, 2013)은 각각 출판사와 아들에 의해 편집되어 출판되었다. 출판된 ‘일기’에 대해 지금 책장에 꽂힌 일기와 같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편집’과정을 거쳤고, ‘자기검열’의 가능성 때문이다. (작성 과정에서도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자기검열’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편집 과정에서 내용 중 일부를 덜어냈거나 덧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출판된 ‘일기’는 분명히 사적이고 내밀한 듯 보이나 일기를 쓴 시점의 일기 본문과 편집된 시점의 일기 본문 사이에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기가 내밀한 기록이라면, 이같은 출판된 ‘일기’들은 “일기 형식”의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 

 

3. 일기쓰기란 “반성의 체득”이다

일기쓰기란 꽤 많은 이들이 학습한 개인적인 글쓰기의 일종이다. 어릴 적, 일기쓰기의 방법을 묻자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써봐. 반성할 점도 적고”라 말하였다. 유일한 나의 사적인 기록을 남기는 방식을 이렇게 배웠다. 그러나 차가운 눈초리로 매섭게 바라보자. 일기쓰기는 개인적인 반성의 수단이기에, 분명 사회적이며 교육적이다. 나 자신을 기록하되, 어떤 기준 또는 목표에 견주어 반성하는 수단이다.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시절에 썼을 법한 “생활일기” 공책 혹은 “생활일기장”에는 이같은 반성이 구조화되어 있다. 알다시피, 나의(우리의) 일기쓰기 역사는 대개 방학숙제로써 생활일기장 채워넣기로 시작하였다. 생활일기장(이하 일기장)은 본문이 원고지 형태로 되어 있어 ‘바른 글씨체를 강조하는’ 교사와 부모들이 자주 선택하는 일기장이다. 이 일기장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보자. 단순히 일기를 쓰는 종이뭉치가 아니라, 구조화된 공간이다. 일기를 적는 본문을 먼저 살펴보자. 맨 위에는 날짜와 날씨를 적는 란이 있고, 그 왼쪽편에는 “생활내용” 항목과 체크란, 왼쪽 아래는 “좋은 일기는”이란 제목의 짧은 메시지들, 오른편엔 “주제”란과 원고지 형태로 된 본문. 그 아래엔 주인이 헷갈리는 “가정통신 및 적어두기”가 있다.

이 일기장은 ‘생활내용’을 통하여 ‘반성’을 반복하게 하며, ‘반성’해야할 것들의 목록을 제시하는 것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이 공책의 업체는 ‘생활내용’이 “문교부령 286호의 행동특성을 중심으로” 선별된 것이라 적어놓았다. (“문교부령 286호”는 1972년 3월 1일에 시행된ᅠ”교육과정령” (국가법령정보센터)을 가리키는데, “행동특성”이 정확히 무얼 가리키는지 진중히 탐색해야겠지만) <교육과정령>의 <부록 2 – 국민학교특별활동>에서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생활경험을 통하여 사회성의 신장을 도모하고, 민주적이며 협동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민”을 만들겠다는 말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생활내용’이 무얼 묻는지 살펴보자. ‘생활내용’은 말그대로 ‘반성’해야할 내용을 제시한다. 생김새는 항목과 체크란이 있어서, 마치ᅠ설문지표와 같다. 항목은 총 네 개인데 “근면”과 “책임”과 “협동 자주”와 “준법”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있고, 하위 항목에 따라 해당하는 것을 체크하게끔 되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일기장은 내게 “정직한 생활”을 하였는지, “정숙한 생활”을 하였는지. “애국하는 일”과 “저축을 잘” 했는지, “학교생활 규칙을 잘” 지키고 “잘못한 일을 뉘우쳤”는지 따위 등을 묻는다.ᅠ제시된 생활 내용을 “반복”적으로 “반성”케 하여 “행동의 변화”를 꾀하고 “전인적인 인간”을 육성하고자 한다는게 바로 그 목적에 따라서 말이다. 사업가가 공책의 계몽의 ‘과학성’을 자랑하려 한건지, 있었는지 없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어떤 정부의 시책에 그대로 따른 것인지, 혹은 역사적으로 일본 관료의 『공무원 수첩』(1887, 일본 대장성)의 자장 안에 있는 건지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생활일기장에 일기쓰기란, “반성”의 “반복”을 체득하는 수단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 관련된 읽을거리
이케다 유타·진정원·이정덕·마츠다 시노부·허펑차오, 2014, 『동아시아 일기연구와 근대의 재구성』, 논형.
정병욱·이타가키 류타 엮음, 2013, 『일기를 통해 본 전통과 근대 식민지와 국가』, 소명출판.

 

4. 나만의 일기 1: 흔한 ‘일기’

자료명: 1976년 3월 29일부터 1976년 8월 12일까지의 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043130

40년 전인, 1976년 3월 29일부터 같은 해 8월 12일까지의 일기를 읽자. 3월 29일부터 4월 16일까지는 매일 적었고, 5월과 7월과 8월에 며칠씩 작성되었다. 일기장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일반 노트에다 자를 대고 빨간 줄을 긋어 날짜를 적는 란과 본문을 적는 란을 구분하였다. 정말 흔한 일기이다. 흔하다 말한 이유는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이라는 점에 충실한 일기이기 때문이다. 오늘 함께 살펴 볼 일기는 1976년 8월 4일에서 6일까지의 일인데, 겪은 일과 생각과 느낌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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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살펴보자. 4일은 춘천에 있는 외할아버지 집으로 기차를 타고 간 모양이다. 와중에 차창 밖을 보며”보이는 아이들과 피서객들의 물장구치는 모습”이 “매우 평화롭고도 아름답게 보였”다고 적는다. 다음 날인 5일, 이모 집에 놀러갔다. “새소리가 듣기 좋아 마음이 흐뭇”하다고 시작하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는 중학교 3학년생 사촌동생을 보며 “내가 요번 방학에 너무 공부를 안한 것 같다”며 반성을 하며 끝난다. 6일의 일기에는 묘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미시시피 강에서 잡혔고 한국의 어느 다방을 거쳐 글쓴이가 방문한 극장 앞에서 미꾸라지나 잡아먹는 신세가 된 악어를 본 일이다. 이뿐 아니라, 다른 날의 일기에서도 당시 고등학생인 글쓴이의 소소한 일상과 느낌, 글쓴이가 바라본 풍경이 드러난다. 우리에게 보통의 ‘흔한’ 일기란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적는 개인의 기록이다.

 

5. 나만의 일기 2: 굵게 또박또박 쓴 글씨체의 의미

자료명: 3.15선거를 앞둔 어느 고등학생의 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434355

일기는 개인의 삶을 통해 당시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돕는다. 이 사료는 1960년 2월 14일과 15일, 18일에 쓰인 마산 지역의 이름모를 고등학생의 일기다. 1960년 3.15 선거와 마산 지역의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전후 분위기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이제부터 그 사회와 개인의 흔적들을 찾아보자.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글쓴이에게 1960년, 2월 14일 일요일은 특별한 일 없이 소소하다. 해가 날 때까지 “늦게까지 누어잦”고, “오늘도 어쩐지 공부가 하기 싫”은 그런 날이었을 뿐이다. 이름모를 필자의 방에 친구들이 노름할 공간을 찾아 온게 그나마 특별한 일이었다. 일기엔 으레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

하루가 지난 15일, 전날의 일기와 자못 다른 내용이 적혀있다. 학교에 등교한 모양인데, 아침부터 “이(승만) 대통령 각하”라는 제목으로 글을 지었다고 한다. “이것도 선거의 일종이 아닐까” 의심하며, 당시 집권당인 ‘간신’과 자유당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ᅠ게다가 이 날은 조병옥이 사망한 날이다.ᅠ”장말로 진실한 애국자이신 조박사. 그대도 이젠 가시었으니 나라에 나라에 유명한 영도자를 한 사람 잃었도다”라며, 그 죽음을 기린다. 이 말은 단지 죽은 자에 대한 형식상의 추도로 읽어내기 힘들다. “이젠 자유당 일당정치로 되지 않을까? 정치는 영구히 부패된 정치가 되지 않을까? 아이구 될되로 되어라. 자유당이여 당신네들은 이젠 야망을 채울 것이다.”라며 당대 자유당이 집권한 상태인 국내 정치에 대해 걱정하고 분노하였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심정도 허전했다”는 문장으로 이름없는 글쓴이의 실망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조봉암의 죽음은 단순히 정치인 한 명의 죽음은 아니었다. 이승만은 2월 13일 반대를 무릅쓰고 조기선거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고, 자유당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선거운동을 실시한 상황이었다. 그러나ᅠ이승만과 자유당 독재에 ‘대항’하던 조봉암과 신익희는 이미 죽었고, 유일하게 조병옥만이 살아있던 상황이었다. 투지가 없는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조병옥은 야당 세력에서 대통령이 될 만한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하나 남은 후보가 죽어버린 것이다. 많이 알려진대로, 이후 2월 28일 대구에서 정부가 학생들이 민주당 유세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바람에 학생 시위가 발생했다. 선거가 치뤄진 3월 15일, 자유당에 의해 부정선거가 이루어지자 이 일기를 쓴 학생이 살던 마산지역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가 터졌다. 이날 8명이 사망하였고, 80여명이 부상당했다. 그리고 김주열(1943-1960)이 사라졌다.

다시 일기로 돌아오자. 이 이름모를 학생은 펜을 꾹-꾹 눌러 큰 글자체로 “조병옥 박사(철학, 경제학 박사)”라 적었다. 사람들이 느낀 당대 이뤄진 정치에 대한 허무의 표시는 아닐까. 일기는 행위와 느낌의 기록을 넘어선다. 구석의 낙서나 두껍거나 큰 글씨체, 특별한 표시 등의 사소한 것들로 마음을 세세히 살필 수 있다. (이 점에서 육필 일기는 인쇄된 자료와 다르다!)  그렇기에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라 볼 수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콘텐츠ᅠ
3.15 마산시위
http://archives.kdemo.or.kr/Collection?cls=001&yy=1960&evtNo=10000003
4.19혁명 사진 아카이브즈
http://archives.kdemo.or.kr/PhotoView?pPhotoId=00755002
4월 혁명 구술 아카이브즈 http://oralhistory.kdemocracy.or.kr/servlet/com.avatar.mms.cybr.main.MainCmd
사료로 보는 4.19혁명
http://contents.kdemo.or.kr/419/

– 관련된 읽을거리
4월혁명사료총집발간위원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10, “4월 혁명 사료총집”: 총 8책.
권보드래·천정환, 2012, 『1960년을 묻다: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 상상.
서중석, 2007, 『이승만과 제1공화국: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1)』, 역사비평사.
윤석연, 2010, 『4.19혁명(십대가 만난 현대사 1)』, 한겨레틴틴.

 

6. 나만의 일기 3: 누구도 말 하지 않는 비밀스런 기록.

자료명: 박종철 가혹행위 치사사건 가해자 부인의 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868180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은 남영동에서 처절히 죽었다. 이 죽음은 6월 항쟁의 단초였다. 이 일기는 박종철의 사망을 둘러싼 여러 사료 가운데 독특한 위치에 있다. 박종철 사망의 주범으로 꼽힌 조 모씨의 부인이 쓴 일기로 1월 14일부터 4월 20일까지의 일기다. 여기에는 박종철 가혹행위 치사사건에 대한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담긴 기록이다. 나는 조 모씨의 무고함을 주장하기 위해 이 일기를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조 모씨는 분명 가해자이며, 당시 고문의 현장 책임자 중 한 사람으로 그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 아내의 기록을 통하여,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전략, 그 가운데서도 사건의 여파를 최소화하겠다는 목적의 ‘내부 단속’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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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를 살펴보자. 1987년 1월 15일 오후 3시 30분, (다음 날인 1월 16일자) 『중앙일보』 는 특종을 신문에 실었다. “경찰조사 받던 서울대생 숨져”라는 제목으로. 언론사에게는 특종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조 모씨 역시 “신문보고 놀”랐다 한다. 오전까지만 해도 “별일 아니니 걱정 마라. 오늘 일찍 들어갈게.”라 말한 남편이 “11시가 넘었는데 연락이 없어 불안하다” 적는다.ᅠ조 모씨는 다음 날 아침 8시 30분이 되어서야 충혈된 눈으로 집에 돌아왔다.ᅠ”인공호흡 시키느냐고 눈의 신경이 파열되었단다.난 뺨 한 대 안 때렸으니 염려 마라. 책임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글쓴이는 다시 18일이 되어서야 남편을 만난 것으로 보인다. 남편을 만나기 전, 이 모씨와 김창환(김창현), 정기홍 등이 찾아와 “면회 준비 하세요. 조형은 절 때 그런 사람이 아닌데ᅠ정책상 어쩔 수 없습니다. 잘 될꺼에요.”라 말한다. 조 모씨가 아내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걱정 말고 아이들을 잘 돌보라. 내가 십자가를 졌으니 Θ[옮긴이: 하나님]은 아신다. 고문한 당사자는 괴로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떳떳하게 법정에 가서 투쟁 할수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ᅠ내일 아침 신문에 내가 물을 눌러 죽인 것으로 나올테니 놀라지 말라. 조서를 꾸며 위에 보고 했기에 그대로 시인 할 수밖에 없다. 반장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대로 인정하기까진 두시간동안 고민했었다. 어쩔수 없지 않느냐. 대공을 위해 내가 책임을 질 수밖에. 잘 될것이다. 너무 염려 말고 사무실에서 모든일은 돌봐 줄 것이다.”ᅠ다음 날, 치안본부장의 고문치사 사실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이 이루어지고, 조 모씨는 수감되었으며, 글쓴이는 동생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일기를 살펴볼 때, 한참을 경찰들의 보호(혹은 감시) 속에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단장, 5처장, 본부장’ 등 간부급 인사들이 글쓴이를 찾아와 위로금과 생활비 등을 전달하거나, 추가로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정부의 이러한 행태에 대하여 불신을 고백한다. 변호사를 몰래 만나 형량을 줄일 수 있는지 알아보지만, 5처장이라는 자 혹은 다른 자들에게 들키고 그들의 화받이 신세가 될 뿐이었다.ᅠ아래 문장은 글쓴이의 심정을 잘 드러낸다.
“가족으로선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조금이라도 억울함을 풀수 있다면, 형을 짧게 할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랴. 이해가 안간다. 우리가 무지막한 무식하지도 않는데 야당 쪽으로 기울까봐 그렇단다. 정치, 여론을 살펴가며 하는데-. 사무실 쪽에 모든걸 일임하란다. 위와 협상을 잘해 형량도 짧게 생활비도 100만원식 빨리 나올수 있게 한단다. 다 좋다. 그러나 죄목은 어쩔것인가. 어떻게 벗길 수 있을까?“

가해자인 경찰과 정부는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그 “민낯”을 살필 수 있다. 사건 축소를 시도하는 과정이 보여지며, 여기에서 남편인 조 모씨의 발언, 동료들의 발언 등을 통하여 당시 경찰의 대응의 목적 등을 역으로 살필 수 있다. 이러한 ‘내부 단속’은 사건으로 인한 여파를 최소화하는 목적만을 가졌고, 그렇기에 무척 취약한 논리로 구성되어 있다. 글쓴이의 ‘억울함’과 행동은 국가의 ‘내부 단속’의 한계를 드러낸다.ᅠ더욱이 협박을 통한 겁주기, 주거 및 이동의 통제, 위로금이라는 엉뚱한 명칭의 금전적 보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시도한다. 정부의 공식문서는 이런 상황을 기록하지 않는다. 당시 저항세력은 이 사실을 명백히 확증하기 어려워 공공연히 말할 수 없었을게 분명하다. 글쓴이는 어디든 기댈 곳이 없는 상황이었고, 일기는 글쓴이가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대나무-숲”이었다. 우리는 그 덕택에 당시의 숨겨진 정황을 알 수 있다.

– 오픈아카이브즈 내 사료 소개ᅠ
각종 성명서 외에 1987년 1월 26일 김수환 추기경이 박종철 추모 및 고문추방을 위한 미사에서 행한 강론 <박종철 군의 죽음을 민주제단에 바친다> (등록번호 : 162432),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 발족식 안내문( 등록번호 : 431893), 박종철 군 아버지 박정기씨가 쓴 재판 관련 글(등록번호 : 51925), 박종철 고문과 관련한 조영래 변호사의 자필노트(등록번호:431739), KBS가 제작 방영한 박종철 관련 영상자료 인물한국사 시리즈(등록번호 : 456695, 456702), 동아일보 신문스크랩(등록번호 : 59558), 경향신문 사진사료 143건, 박용수 선생 사진사료 57건 등 비교적 다양한 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콘텐츠ᅠ
박종철고문치사사건 – 진실이 힘이다
http://archives.kdemo.or.kr/RecordContentsView?pId=14
종철이 아버지의 6월 이야기
https://www.youtube.com/embed/K3EHQNqDMME

– 관련된 읽을거리
김원(2009), 『87년 6월 항쟁』, 책세상.ᅠ
김윤영(2006), 『박종철: 유월의 전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태호 외(1998), 『박종철 평전』, 박종철출판사.ᅠ
서중석(2011), 『6월 항쟁: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돌베개.
유시춘(2003), 『6월 민주항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최규석(2009), 『100도씨: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창비.
편집부(2010), “6월 항쟁을 기록하다” 전5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ᅠ

 

7.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1: “Please Share”ᅠ

자료명: 계엄령시기에 쓴 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531087

이번에 살펴 볼 자료는 1980년 5월의 일기다. 1980년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광주사태’라 불렸지만, 이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 불린다. 이 일기는 5월 18일과 5월 27일까지의 광주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의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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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저녁 6시. 글쓴이는 이렇게 적었다.  “지난 주 일요일부터 매일 밤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요일의 이른 여섯 시, 나는 짧은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외쳐댔다, ‘밖으로 나오시오.’라고 말이다. 나는 두려웠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입었다. 그 사람의 외침은 모두를 향한 부름이었는데, 나는 공포를 느꼈다. … 한 주 동안 밤낮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사실 하루가 지났을 뿐이다. 가장 무서운 공포는 군인들이 병원에 들어갈 수 있으며, 나이가 젊은 환자들과 의료진들뿐 아니라 다른 환자들까지 대량학살할지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같은 대기 상태는 마치 고문과도 같았고, 가장 강력한 무기다. …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건지, 총격이나 피타(被打)가 이루어지긴 한건지, 구금되기라도 했을지 모르겠다. 분명히 가까운 날에 기자들이 뉴스를 내놓을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가 보고 기다려야 한다. 몇 천에 달하는 용감한 젊은 이들이 희생될지, 진실을 위해 필사적으로 거짓에 맞서는지를 알아야 한다. 거짓말들은 라디오 방송과 공습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날, 새벽 7시경, 시민군과 계엄군이 국군광주 통합병원 앞에서 대치하였다. 그의 걱정은 사실이었다. 18일부터 광주의 상황은 가족과 친구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연락이 두절되고, 총소리가 들렸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공포’로 가득하였다. 글쓴이의 바람대로 “가까운 날에 기자들이 뉴스를 내놓”지 못 하였다. “우리가 보고 기다려야 한다”는 이 문장은 이 일기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을 짐작케 한다.

5월 27일, “오늘 새벽 3시 50분부터 총격이 시작되었다. 단발의 소총 사격 후에 어마어마한 총알소리가 들려온게 기관총 사격이 이루어진 것 같다. 5시 쯤 되어서, 나는 무언가 도심을 관통하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헬리콥터나 전투기 소리같다. 우리는 아이들의 요(매트리스)가 있는쪽으로 옮겨가, 그걸로 창문을 가렸다.” 계엄군은 새벽 3시부터 작전을 시작하였다. 3시 30분부터 도청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고, 전남도청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체포되거나 사살되었다. 4시 11분부터 3공수부대가 전남도청 안으로 투입되어, 4시 55분 계엄군은 도청을 장악하였다. 5시 10분, 광주 전지역이 군대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5시 22분경 전일빌딩 옥상 위에 남아있던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시민군 모두가 사망하였다.

이 일기는 본래 영어로 적혔다. 타자기로 타이핑한 것으로 보아 매일매일 쓴 일기가 아니라 5월 27일 혹은 그 후에 몰아쓴 것으로 생각된다. 아니라면 육필(肉筆)로 적은 것을 옮겨적었을 수도 있다. 일기의 오른편 아래에는 1980년 5월 24일과 27일의 상황을 “Please Share”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널리 알려주세요”라고. 재야(在野)에서 광주를 알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한참동안 “광주사태”란 단어 자체가 말할 수 없는, 말해선 안되는 사건으로 오랫동안 남았다.

– 오픈아카이브즈 내 사료 소개ᅠ
광주민주화운동은 “5.18”, “광주항쟁”, “광주사태”,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민주화운동”, “5.18 광주민중항쟁”, “5.18 광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으로 검색할 수 있다. 사료 가운데 <광주사태보고서>(등록번호: 415992)는 ‘분노보다 슬픔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는데, 당시 수습위 대변인으로 계엄군과 협상을 한 김성용 신부가 작성한 일지다. 게다가 <광주사태의 진상>(등록번호: 102887>에는 “무등산은 알고있다”로도 알려진 김준태의 시 <아, 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원 출처: 「전남매일」 1980년 6월 1일자 1면)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일지와 함께 실려있으며, 1960년 6월 3일에 튀빙엔대학교 한인학생회의 결의문인 <우리의 결의>(등록번호: 522541)또한 살펴볼 수 있다.ᅠ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콘텐츠ᅠ
사료로 보는 5.18 민주화운동
http://contents.kdemo.or.kr/518/

– 관련된 읽을거리
김진경(2006), 『5.18 민중항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호재·임낙평(2007), 『윤상원 평전』, 풀빛.ᅠ
윤정모(2005), 『누나의 오월』, 산하
윤정모(2009), 『밤길』, 책세상.
최윤(1992),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문학과지성사.ᅠ
한강(2014), 『소년이 온다』, 창비.
“5.18 광주민주화운동 자료총서”
“5월문학총서” 시·소설·희곡·평론

  • 노래 하나
    5.18에 관한 노래라 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탁 튀어나온다. 1995년 ‘블랙홀’이라는 록밴드가 발표한 “마지막 일기”도 들어보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u48601-DEZM 

 

8.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 2: 안내서ᅠ

자료명: 공장 활동 안내서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063840

대학가에는 “ -활동”이란 말이 있다. 줄여서 “-활”이라고 앞 글자를 따 부르기도 한다. 지금에서야 “농촌활동” 정도가 남아있을 따름이지만. 한때는 “농촌계몽활동”, “농촌학생연대활동” 등으로 불렸다. 이 표현들을 단순히 넘어갈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해서는 <서울대저널> 67호의 “특집 – 농활, 역사 짚어보기”http://www.snujn.com/news/3012를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이전의 기록들은 이처럼 공장 현장으로 위장취업한 이들에 대하여 ‘학생출신 노동자’, 줄여서 “학출”이라 불렀다고 증언한다. 지식인-노동자로써 이상적인 노동자상을 향해 달렸던 그/녀들, 때로는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학출’로 자기호명하며, 타인들은 경계와 비아냥의 대상으로 “학출”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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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에서 1984년 발행한 <공장 활동 안내서>로, “학사단 연구자료”의 일종이다. “형제들(학생들)”의 “공장활동”이 “자기 훈련 프로그램으로 정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하에 “경험을 수집, 정리하여” 발간된 “자료집”이다(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1984), “연구 자료를 내면서”가운데). 공장활동을 “대단한(?) 각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학습과정이자 사회이전을 준비하는 과정”(앞의 자료: 5쪽)으로 이해하며, 학습하기 위한 매뉴얼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서론 – 공장활동의 의의와 과제 – 준비과정 – 본 활동 – 정리과정”이며, 부록으로 “공장활동 조사 보고서”, 취업 과정에서 필요한 “이력서”, “지역별 사업체 현황(경인지역 중심)”, “학습자료”, “산업재해”, “노동관계재법”과 자료로 “어느 3학년 남학생의 일기”와 “어느 여학생의 경우”를 담았다(앞의 자료: 25쪽).

“어느 여학생의 경우”의 일부를 살펴보자. 한 달에 불과한 ‘공활’이었으며, 위장취업한 지 하루 밖에 안된 시점이지만, 글쓴이는 일종의 두 적을 발견한다. 첫째 적은 자신이다. ‘노동자 되기’란 의식화만을 통해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소소한 것과 같지만 일종의 ‘변장’이 필요하다. 대학생의 ‘노동자 되기’가 시도되는 첫 날 아침은 노동자스러운 옷차림새를 두고 한참 고민하였을테다. “청바지를 입고 가장 후줄근한 중학교 때 입던 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지만, 금테안경이 영 이미지를 망치고 있었다.”(앞의 자료: 110쪽)는 고백은 하나의 증거라고 볼 수 있다. 글쓴이에게 금테안경은 신분이 노출될지 모르는 걱정거리이다. 하루가 지나 “내일은 헌안경을 껴야겠다. 안경 쓴 사람 2명. 별로 문제될 것 같지 않다.”는 주의사항을 적는다.

둘째 적은 전문대에 다니는 자신과 함께 취업한 “새로온 애들”이다. 그 날을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모월 1일, “새로 온 애들은 전문대에 다니는데 아는 사람이 있어서 방학 아르바이트로 왔다고 했다. 내 활동에 상당히 장애가 될 것 같았다. 그야말로 날라리, 미친 대학생으로, 여공에 대한 우월감으로, 대학에 대한 낭만적 묘사를 자랑스럽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동경심을 불러 일으키고 대화를 영 허튼 방향으로 몰고 갔다. 노동자 의식에 이러한 무분별한 자극이 미칠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애들이 상당한 반발심을 공유한 것 같으니 기회를 봐서 대판 싸운다든지 하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나 △△자와 험담을 하면서 상대적인 자기위치를 발견하도록 해봐야 겠다(앞의 자료: 112쪽).” 직접적으로 “대판 싸운다든”가, 간접적으로 다른 애들과 그녀들에 대한 “험담을 하면서” 여공들이 “상대적인 자기위치를 발견하도록” 하겠다는 전략을 마련한다(앞의 자료: 113쪽). 그러나 “성과, 드디어 그 신경 쓰이던 전문대생을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아침에는 지각을 하더니 점심 시간에 보니 영 일하기 싫은 것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물어보니, 사무직인 줄 알았더니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겨 그만둘까 망설이고 있단다. ‘대학생은 아르바이트 구할 곳이 얼마든지 있다던데 왜 거기서 고생해. 망설이면 그게 다 돈 나가는거야. 이제 잔업까지 해줬는데 미안할 것도 없잖아 잘 결정해’ 미안하게도 고맙다고 인사까지 한다(앞의 자료: 114쪽).” 이런 상황임에도 “반장이, 마치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내보낸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것(앞의 자료: 같은 쪽)” 상황을 목격한다.

이건 일기일까? 자료집의 앞에서는 일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살펴볼 수 있다. “일기는 자신의 사고의 변화와 현장과 노동자에 대한 관찰과 분석, 지나치기 쉬운 면들을 점검하고 반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개인의 나태함을 방지하고 의미있는 활동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앞의 자료: 같은 쪽)이다. 그리고 일기 쓰기를 필히 하게끔 지시한다. 본활동 프로그램 목록 내에 개인 일기 작성과 공동 일기 작성을 필히 해야한다 말한다. 일기는, 정리 과정에서 “자료 정리”를 위한 목적을 가진다. “각자가 매일 쓴 일기를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가감 첨삭하여 자료화하고, 부록에 있는 조사보고서를 최종적으로 검토보완 정리하여 팀의 활동 일지를 정리”하기 위해서다(앞의 자료: 30쪽). 다시 말하자면, 편집을 거쳐 자료화할 목적으로 만든 일기 형태의 계획서이자 보고서로 볼 수 있다.

– 오픈아카이브즈 내 사료 소개ᅠ
“일기로 보는 어느 여공의 꿈”
http://contents.kdemo.or.kr/nodong/htm/case03_01_1.jsp
구로동맹파업 – “노동운동, 정치투쟁의 장을 열다”
http://archives.kdemo.or.kr/RecordContentsView?pId=38
동일방직사건 – “똥을 먹고 살 순 없다”
http://archives.kdemo.or.kr/RecordContentsView?pId=33
YH 사건 – “여공들, 민주주의의 봄을 부르다”
http://archives.kdemo.or.kr/RecordContentsView?pId=6

– 관련된 읽을거리
공지영, 2006/1988, 「동트는 새벽」, 『인간에 대한 예의』, 창비.
김영하, 1992, 『무협 학생운동』, 아침.
김원, 2005, 『여공 1970 – 그녀들의 反역사』이매진.
신경숙, 1999/1995, 『외딴 방』, 문학동네.
신순애, 2015, 『열세살 여공의 삶』, 한겨레출판.
“심상정 – 여성 노동운동가”, 퍼슨웹 인터뷰(2000년 7월 1일).
http://www.personweb.com/articles/190
오하나, 2010, 『학출: 80년대 공장으로 간 대학생들』, 이매진.
유경순, 2011, 『나, 여성노동자』, 그린비.
______, 2015a,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 1: 학출활동가와 변혁운동』, 봄날의 박씨.
______, 2015b,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 2: 학출활동가의 삶 이야기』, 봄날의 박씨.
유하, 1989, 『무림일기』, 문학과지성사.

 

9.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 3: 일기 형태의 콩트(Conte)

자료명: 태우의 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072759

<<청년신문>> 61호(1988)에 실린 <태우의 일기>라는 제목의 꽁트다. 일기 형식을 빌려 당시 대통령 노태우를 비꼬는 글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처음에는 ‘태우’라는 놈이 누군지 몰라서, “오픈 아카이브에 ‘반장이 되었다’는 내용의 일기가 있다니!”라며 놀라기도 하였다. 그런데 읽어 보니, 정두니 대종이니 영일이니 하는 이름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정두(전두환)니 대종(고 김대중)이니 영일(고 김영삼)이니 하는 이름은 짐작하다시피 현대 한국의 정치인들이다.

게다가 일기를 쓴 날짜는 바로 ‘그날들’이다. 날씨 역시 하나의 상징이다. “1979년 12월 12일 맑음”, “1980년 5월 17일 비교적 맑음”, “1980년 5월 18일 화끈하게 맑음”, “1987년 6월 29일 하루종일 지겹게 비가 옴”, “1987년 12월 16일 몸살나게 맑음”, “1988년 12월 3일 흐림”(“태우의 일기”: 10-11쪽)이다. 실제 기상예보와는 상관없는, 일종의 노태우의 입장의 정치적 기상예보라고 해야하겠다. 1980년 5월 18일은 “화끈하게 맑음”이다. 군부정권의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에 이어 5.18 광주화 민주화운동이 발생했다. “화려한 소풍”은 “화려한 휴가”를 빗댄 말이며, “꼬마들이” “대들기도 했고 몇놈은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정두를 비롯한 우리를 당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 교실에는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감돌게 되었다.” 그러다 1987년 6월 29일은 “하루종일 지겹게 비가” 왔다. 그렇게 멋있어 보이던 정두가 요즘은 호되게 당하“자, ”나는 오늘 ‘앞으로는 학급을 보다 민주적으로 운영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노태우의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의 사면과 복권“을 골자로 한 ”6.29“선언을 가리킨다.

이 자료 역시 앞선 자료와 함께 일기로 보기 어렵다. 당시 유행한 단편 소설보다도 짧은, 유머러스하고 풍자적 성격을 가진 꽁트(프랑스어 Conte)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왜 일기의 형식을 택했을까? 앞서 ‘나만의 일기’ 세 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기란 연대기적으로 작성되며, 사건을 기록하며 이에 대한 느낀 바를 적고, 유일하게 비밀이 허용되는 지극히 사적인 글쓰기다. 쉽게 말하자면 노태우의 속마음을 표현할 의도에 있어서 일기만큼 적절한 형식이 또 있을까? 노태우의 전력(前歷)을 이처럼 쉽게 표현한 글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입과 입을 넘나들며 대통령이 된 노태우의 전력을 쉽게 비판을 야기할 역할을 했음직하다.

 

10.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 4: 공동의 그리움, 공동문집. 

자료명: 2학년 8반 못 다쓴 조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030013

이 자료는 일기라기보다 공동 문집에 해당할 것이다. 이 일기는 1991년에 간행되었지만, 쓰여진 시기는 1989년으로 보인다. 이 일기를 읽다보면 한 단체가 떠오른다. 시기를 보더라도 그럴 것이다. 이 때는 한국 사회에서 법에 의해 정당한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로 돌아가버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줄여서 전교조라 부르겠음)의 창립시기다. 전교조는 1989년 5월 28일에 창립되었으나, 3달이 안된 8월 18일까지 962명, 불과 반년이 조금 넘은 12월 26일까지 조합원으로 가입한 교사 가운데 1515명이 파면되거나 해직되었다(동아일보, 12월 26일자 기사 참조). 이 과정은 같은 해 7월 12일 문교부에서 각 시와 도의 교육위원회에 전교조 가입 교사들에 대한 징계에 대해 8월 5일을 ‘마감일’로 못박아 이날까지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에 징계를 마무리하라고 지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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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는 당시 강릉 동명중학교에 재직하다 8월 쯤 강제해직된 교사이자 전교조 조합원인 박희영이다. 일기는 6월 9일부터 시작되어 7월 중순이 되어 잠시 뜸해졌다. 뜸해진 이 시기, 학생들의 공동일기에는 교사에 대한 걱정이 그득하다. 7월 15일 토요일의 일기는 “11시경 민방위훈련으로 우리는 운동장 한쪽으로 갔다. 모든 학생들은 얌전히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몇몇 선생님들이 눈에 뛰었다. 남자 선생님은 김○○ 선생님 밖에 보이질 않았고 여선생들 과학, 사회,영어, 음악 선생님 그리고 이× 선생님이 좀 얄미워 보였다. 같은 처녀로 와서 말동무가 되어 주거나 등등 하면 어디가 덧나나. 전국 교직원 노조 선생님들이 5106명이라고 얼핏들었는데 우리 학교에는 왜 우리 선생님밖엔 없을까?”

그리고 일기는 한참을 멈췄다. 8월 25일이 되어서야 다시 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일기는 또 다시 멈췄다. 2학기가 시작되자 교사들이 새로이 학교에 채용되었다는 내용의 일기가 적혔고, 이 드문드문한 일기는 9월 10일자로 끝난다. “오늘은 일요일, 나는 지금 FM을 들으며 일기를 쓰고 있다. 지금의 내 심정은 무척 우울하다. 왜냐하면 라디오의 슬픈 음악이 갑자기 우리 담임 선생님을 생각 나게 했다.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 이별 인사를 하시러 오시던 날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께서 다시 돌아오신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좋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 이별인사를 하기위해 오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선생님께선 옳지 않은 것을 보면 옳지못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와 자부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우셨다. 그리고는 이 눈물을 다시는 흘리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많이 울었지만 그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금 울고 싶어 지는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목이 터져라 외쳐 보고 싶다. 선 생 님! 다시 옛날로 돌아 갈 수 없을까 옛날이 그리워 진다. 나의 진정한, 교과서 만을 읽어주시는 선생님이 아닌 진짜 선생님 선생님 !” 이 일기는 작성된지 2년이 넘어서야 간행된다.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 3: 일기 형태의 콩트(Conte)”와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 4: 공동의 그리움, 공동문집”는 유사하다. 일기(형태)의 쓸모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진심’ 혹은 ‘진정성’을 내포한다고 여겨지는데서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질문이 멈춰서는 안된다. 더 넓게 보면, “남에게 보여주는 일기2: 안내서”까지도 공동(共同)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실천적 성격을 가진 도구로 변모할 수 있는 형식이다. 어떤 감동에서 멈출 게 아니라, 연구자에게 미지(未知)의 영역인 일기의 이러한 실천적이거나 도구적 쓸모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 오픈아카이브즈 내 사료 소개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http://archives.kdemo.or.kr/Collection?yy=1980&evtNo=10000093

– 관련된 읽을거리
윤지형, 2009, 『교사를 위한 변명 – 전교조 그 스무 해의 비망록』, 우리교육.
정진상, 2006, 『교사의 사회의식과 전교조』, 한울아카데미.
<실록 민주화운동 – 94. 전교조 출범>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503161632591&code=210010&s_code=af001)

 

11. 나가면서

오픈아카이브즈는 민주화를 재고하고 반성하며 더 나은 전략을 이끌어내는 연구자들과, 보통의 민중의 생활 흔적들을 재료로 올려놓고 일상생활의 역사에 도전하는 연구자들의 공동작업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허우적대는 연구자지망생에게 오픈 아카이브즈에서 공유하는 자료들(과 만들어 낸 콘텐츠들)은 해방 후 민주화의 과정을 세세히 살펴볼 수 있는 배울거리들이다. 정치사·사건사의 사료가 가지런히 정리된 역사박물관이자, 지식사회학·매체사·기록학의 접근으로도 살펴볼 자료가 널린 고물상이기도 하다(?). “사료가 남아있지 않다면 역사가는 역사를 쓸 수 없다(곽차섭, 2014, 「역사가, 사료, 해석: 위서(僞書)를 통해 본 몇 가지 생각」, 『역사와 경계』 93.: 283)”는 말을 떠올려본다. 문자 그대로, 사료의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사가, 각 개인인 역사가가 정치한 해석을 위하여 사료를 바라보는 방법을 가다듬으라 청한다는 것이라 곡해(曲解)하여 이해한다. ‘객관적이라는 자료’가 만들어 낸 역사가의 세계, 그 너머에서 두텁게 묘사하는 쓸모를 갈고 닦는 자들의 자리가 마련되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다. 마지막으로 화성에서 온 데이빗 보위와 상상물의 운명을 밝혀낸 베네딕트 앤더슨의 평안을 빈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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