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윤영자는 사투리를 쓰는가, 표준어를 쓰지 않는가”에 대하여

    제가 만나 온 노인층 가운데서 여성노인들은 사투리(고향말)를 교정하지 않는 분들이 꽤 계셨어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싶었는데, 주변의 젊은 또래들을 보다 깨달았죠. 방법을 찾았어요. 지금의 젊은 세대는 서울로 이주하면 사투리(고향말)를 교정하길 원하고 노력하죠. 비서울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쉬운 사회구조니까요. “그래야만” 이익이라 말하곤 하는데, 제게는 서울로 대변되는 “정상성”을 획득하는 행위로 보였어요. 표준어를 ‘스펙’으로 여기니까요. (남성노인들은 그래선지 서울말로 전환을 많이 합니다. 서울 중심-남성 중심의 사유체계인 것 같아요. 이런 표준어 구사의 문제 역시 누군가 연구를 해주면 좋겠네요…)

    여성노인은 다른 걸로 여겨집니다. 여성노인은 왜 이 문법을 따르지 않을지 고민해봤어요. 여성들은 사투리를 써야지 (타지에서) 관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성과는, 지금의 청년세대와는 다르죠. 과거 여성 노인들은 지역 출신인 걸 티를 내야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가족 혹은 친구을 통해 지역사회에 안착 할 수 있었고, 생활을 위해 그녀들과 꾸준히 관계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죠. 즉, 그녀들은 말을 통해 관계를 만든다고 봤어요.사투리를 쓰는 일 역시 그들의 생존전략입니다. (여성노인들 나름의 생존술입니다.) 그리고 동향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명확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남성들은, 특히 강원도나 전라도 출신은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감춥니다. 현재의 젊은 이들과 비슷하죠. 일할 때의 말과 가족/친구와의 말이 다르죠.) 또 여성노인은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갇혀 가족을 지탱하는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측면 역시 영향을 미쳤을 거란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화납니다…) 불특정한 다수를 만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가족에 고립된 상황에 처했고 사회서의 언어 교정의 필요 역시 적은 편이었다고 말이죠.

    이런 이유로 여성노인들이 사투리를 고치지 않았다고 여겼습니다. 이게 제가 이 책에서 사투리를 쓴 이유입니다. 여성노인에게 ‘사투리’란 관계를 만드는 말이고, 이 관계가 힘든 지금을 살게끔 한다고 생각한 거죠.

    . . .

소준철 혹은 날아. 연구자이며 작가.

단행본으로 <가난의 문법>(2020)을 썼고, 학술논문으로 “정부의 ‘자활정책’과 형제복지원 내 사업의 변화”(2020) “청계천에서 난지도로 – 공간정보의 생산과 도시하층민 이동의 관계에 대하여>(2023)”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