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선언과 계산을 넘어: 시민권의 재구성과 사회적 인프라

  • 이 글은 8월 28일 “모두의 권리: 기본소득과 인권” 포럼에서 발표된 오준호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의 “모두의 권리, 기본소득 & 인권기본소득은 21세기 인권 선언이다“에 대한 토론문입니다.

소준철
도시사회학·도시사 연구자
전남대학교 역사문화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

하늘을 난다고 우리는 자유로워졌나

섣부른 말이지만, 기본소득은 선언에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하는 운명적 과제다. 기본소득을 생각하다가 문득 인간이 어떻게 하늘을 날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됐다. (서울과 광주를 고속철도 안에서 글쓰다가 본 하늘 덕분이라는 건 비밀이다.) 푸른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은 아마도 하늘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향한 호기심과 인간의 이동 범위를 넓히고, 더 빠르고 효율적인 이동 수단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푸른 하늘을 난다는 건, (호기심 어린) 인간의 욕망과 사회·기술적인 방법/과정, 정치·경제적인 권력과 지식의 문제가 더해진 복합적인 일이었다. 예컨대, 내가 날아야 할 선명한 푸른 하늘을 고르는 일, 직간접적으로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일, 그 하늘에 도달하기 위한 비행기를 만드는 일, 바람과 비와 구름을 극복하는 방법,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일, 이로 인해 만들어지는 돈과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사용하거나 분배는 일 따위가 이어질 것이다. 

가난과 빈곤을 연구한다지만 실은 발전과 소외 안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관계와 행위를 고민하는 연구자로서, 나는 (특히 생존의 안정성을 위한) 기본소득이라는 지향을 인정하고 요구(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속내를 다 드러낸 건 아녔다. 나는 기본소득이 가진 이상적 목표, 그러니까 “생계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완전한 자유의 실현”이란 목표에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하늘을 날고 정복하면 인간의 이동이 자유로와진다고 말했던 뭇사람들의 욕망 정도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국가의 지원금/보조금이 늘어나면, 주거비 등의 상품 가격이 올라가는 현재의 잔혹한 시장에서 기본소득담론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고민도 든다.) 그래선지 기본소득을 어떻게 도입할지, 어떻게 시장을 개조할지, 그러니까 방법과 권력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는 잘 모르겠다. 또 기본소득이 만들어낼 현실이 우리의 기대와 다르면 어쩌나 싶어 두려울 때도 있다. 기본소득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본소득을 바라는 연구자로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이상이 현실의 몇몇 조건(혹은 모순)과 부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논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토론을 시작하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현재 논의의 지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시민권의 재구성’과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라는 두 가지 새로운 경로를 말하고자 한다. 

‘대개조’인가 ‘부분 개량’인가 

기본소득의 특성은 잘 알려졌듯이 “보편성”, “개별성”, “무조건성”이다. 과도기적으로 특정집단에게 줄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무조건”적인 권리로 기능해야 한다. 이건 한 사회가 자연에서 얻은 천연자원, 지식문화 자원 등 커먼즈에 대한 권리와 연결된다. 즉, 커먼즈를 생산·관리하며 만들어진 수익을 공동이 다시금 나눠 갖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생산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야기된 측면이 있다. 인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경제 체제에 대한 반성이자 정치적 해법이며, 새로운 경제구조의 구축에 대한 촉구다. 철학적 인간학에 의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정치경제학적 비판 과정에서 그 현실태로서 기본소득이 등장한 셈이다. 

기본소득의 방향은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기본소득이 어디까지 나아갈지와 연결된다. 예컨대 기본소득이 사회구조를 ‘대-개조’할 건지, 체제의 ‘부분 개량’에 그칠 건지, 우리는 더욱 예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이런 태도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사이 공익성을 기초로 등장한 시민사회단체와 국가의 정책적 연대와 그 결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모두 기억하겠지만, 1980년대 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1989-)의 ‘금융실명제 운동’, 참여연대(1994-)의 ‘소액주주운동’, 국민건강권확보를위한범국민연대(건강연대, 1994-)의 ‘통합주의 의료보험제도 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참여연대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제정)추진 연대회의가 주장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운동도 더해야 한다!) 이 움직임은 대한민국의 현재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기틀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금융실명제’, ‘소액주주운동’, ‘의료보험제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은 담론의 정책화의 어떤 경로를 만들었고,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이 운동들은 ‘정의’와 ‘실질적 과정(비용)’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집중하면서, 긍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보다는 부분적 개량에 머물렀다는 한계를 남겼다. 짧은 토론문에서 다 담지는 못 하지만, 담론의 현실화 과정은 “정의”와 “(실질적) 과정 (혹은 비용)”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걸 고민해야 한다. 이런 구도는 기본소득논의에서도 유사한 게 아닐까. 

여기서 발표자의 “기본소득은 인권이다”라는 주장은 고결하다. 그 효과와 가능성의 제기는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변화와 사회적 관계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경로를 제시하는 건 아니다. 물론 2021년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작성한 『기본소득 도입의 조건과 과제』는 재분배 효과와 재정 추계에 집중하는 여러 연구를 보완해서 살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사회를 복잡한 엑셀시트로 축소하고, 개인을 수동적 수혜자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즉, 기본소득 논의는 ‘인권’이라는 당위적 선언과 국가-국민의 수직적 관계 속에서 투입-산출 효율성만을 따지는 정책적 접근이 중첩되는 지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기서 더 필요한 건 무얼까?  개인의 생애경로와 공동체의 운명에 어떠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지 더욱 면밀히 탐색해야 한다. 따져보면 “얼마나 정의로운가”에 대한 논의와 “얼마나 비용이 들며, 기대효과가 무언지”로 나뉜 사정에서 마치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선언)과 연료가 얼마나 드는지(계산)를 넘어, 어떤 비행기(방법론)를 누가 만들고 어떤 항로(사회적 조건)를 개척할지에 대한 사회적 구성적 논의로 이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바라는 기본소득이 ‘혁명적인 대안’인지 ‘현실적인 보완재’인지에 결정되는 건 아닐까. 결국 설계자와 설계방법, 그리고 주어진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재화를 넘어 ‘인프라’로: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 제어할 것인가

기본소득이 민주주의와 인권으로 직접 연결된다는 구상을 어떻게 현실태로 바꿀 수 있을까. 발표자의 주장대로, 기본소득은 능동적 수혜자를 넘어, 시민들이 공동체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능동적 주체를 생산하는 물적 기반이 된다. 이는 민주주의적 참여를 넘어, 마을공동체, 돌봄, 문화예술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여로 이어지며, 시민권의 재구성의 기초가 될 것이다. 

한 가지 우려는 기본소득이 단순히 ‘돈’의 투입으로 얻는 ‘시민성’이라는 평면적 구조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시행되는 청년 배당,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정책들은 과도기적 성격을 띠지만, 이러한 평면적 이해를 강화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이익을 공유하는 햇빛·바람연금, 농어촌 주민에게 지급하는 농어촌 주민수당, 학생 교육 활동을 지원하는 교육수당” 등으로 확대됐다. 발표자는 말한다. “낮은 금액의 ‘변형된 기본소득’”은 돈의 투입과 시민성/기회로 단순화되기 쉽다. 우리는 담론과 정책화 사이에, 여러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인가’와 ‘공동의 자산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인가’를 물으며 시민권을 재정립해야 한다. 또한, 기본소득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현금 혹은 지역화폐) 지급하고, 모인 자원은 어떻게 사회로 환류시킬 것인지 등 구체적인 과정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또한 이는 필연적으로 “우리공동체의 공동자산이 무엇이며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이어져야 한다. (시민권과) 커먼즈의 재구성이 선행되어야만 기본소득이 “하향식 분배 정책”이 아닌 (멋대로 적자면) “상향식 사회 재구성 프로젝트”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회적 활동이 어떤 흐름(flow)을 만들어낼지 실험하며 분석하고, 비판을 통해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필요한 인프라가 무언지 살펴야 한다. (라이트 형제의 동력비행선 이후, 항공사업자 뿐만 아니라 우리는 공항 인프라스트럭쳐, 항공법과 같은 광범위한 인프라를 구축해가는 사정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기본소득의 도입 이전에, 기본소득담론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가 무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 인프라에 어떤 긍정적인 성격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저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선언과 계산 사이에서, 우리는 기본소득을 통해 사람과 상품, 자본, 생각 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디로 이동하는지에 대해 더 상상해야 한다. 

글을 닫으며

나는 기본소득은 시민권과 커먼즈의 재형성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이 고통과 빈곤 속에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만으로 그 변화가 온전히 가능할지는 쉽게 단언할 수 없다. 더 나아가, 기본소득담론은 ‘분배’의 당위와 적당함이 아니라 우리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묻는데서 시작해야 함. 시민권과 커먼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야말로, 선언을 넘어 기본소득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첫걸음이 되리라 생각한다. 

본 글은 기본소득 논의를 ‘선언’과 ‘계산’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단순화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구성적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어설픈 문제제기를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은 자유로운 개인들이 참여를 통해 커먼즈를 형성, 유지, 발전시키고, 사회적 인프라를 통해 서로 연결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기본소득 담론을 견고하게 구축하고, 현실적인 재정 모델을 설계하며,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를 실험하고 재구축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