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인의 자리 만들기

<녹색평론> 187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은 <녹색평론>을 확인해주세요. 책 읽으러 가기

”늙어감은 두려운 대상이 된 지 오래다. 늙어가는 신체를 통제하는 데서 시작한다. 주름을 줄이고, 체취와 하얗게 세는 머리는 가능한 한 감춰야 한다. 늙어감을 역행하며 시간을 멈추는 억지 행위를 자기권리, 자기계발이라고 믿는다. 시간의 흐름이 잠시나마 멈춰 선 외모를 만드는 건 지극히 사회적인 행위다. 반면에 사회적인 삶이 정리된 때쯤 외모 관리를 멈춘다. 이렇게 외모의 관리란 사회적인 활동을 지속하는지 알리는 신호다. 그러나 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상성에 갇힌 노인세대의 모습이기도 하다. 경제성정을 이루고 경제위기를 극복했던 노인들의 삶의 태도지만, 동시에 늙어감을 경계하는 처지가 묻어난다. 노인들의 엄격한 이분법은 늙어감을 받아들이는 일을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이기보단 자기자신을 스스로 사회의 잉여 처지에 놓았다.“

“그럼에도 많은 노인은 서로를 연결하며 살아간다. 여전히 상당수의 경로당이 북적이며, 종교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여전히 노인들은 사회적이다. 산업적인 변화와 재앙에서도 사회에 자기 삶을 연결할 줄 안다. 사람을 잊지 않는 것, 그들의 생존법이었다. 식민지기의 수치 속에 살아남았다는 것, 한국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그런데도 경제개발 일부로 기능했다는 것, (낯선) 성장한 사회 속에서 자식들을 키워냈다는 것, 그것을 기억하고 공유하며,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며, 변동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았다. 연결이 그들의 생존법이자 전략이었다. 그러나 노인의 생존법은 자기를 다른 세대로부터 고립시킨다. 사회는 자기 삶을 사는데 집중하는 사회가 됐다. 노인은 사회와 가족을 그리워하지만, 다른 세대는 사회와 가족의 빈 자리를 찾을 여유가 없다. 노인에게 남은 건 또래집단과의 관계, 혹은 국가가 주도하는 사회복지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미약한 가족과의 연결고리를 꼭 쥐며 살아간다. 마을과 가족이 작아진 사회에서 노인의 자리는 이렇게 쪼그라들었다.”

“노인의 시간을 살피자. 젊은이를 사회의 표준으로 삼아선 안 된다. 노인의 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과거처럼 ‘지식의 전수자’라거나 ‘보고’와 같은 박물관의 유물 같은 대우보다 필요한 건, 노인의 삶이 자본에 휘둘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최선의 사회는 시장이 아니다. 노인과 다른 세대는 같은 장소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표준화하고 시장 속 경쟁에 버려두는 것은 노인을 배제하고 소외하는 결과로 이어질 따름이다. 같은 장소에서 모두가 병렬적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같은 결과라도 서로 다른 시간과 행위여도 가능하다는 상상력을 발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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