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6 자기소개서

저는 사회학(사회사)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도시하층민의 생활사․일상사로 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된 관심은, 서울시의 행정기록과 서울에서 살아 온 (사료에 기록되지 않은) 도시민들의 구술과 생애사를 주된 자료로 삼아, 근·현대의 사회변동 속에서 도시 주민의 연결망과 개인의 생활세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석사과정에서는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과 로저 샤르티에(Roger Chartier) 등이 제기한 ‘출판·인쇄의 사회사’ 같은 것을 한국에서도 시도해볼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특히, 출판물의 생산과 유통의 각 과정의 사회적․정치적인 맥락을 밝히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관심에서 「1970년대의 전통적 생활세계와 생애사적 기록: ≪뿌리깊은 나무≫를 중심으로」(2015)라는 부족한 석사학위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군부정권의 전통문화 육성책과 다른 차원에서, 때로는 거기에 대항하면서,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1976/3-1980/8)가 전통사회의 마지막 모습들을 어떻게 포착했고 ‘외톨박이’들의 생애사적 기록을 기획·생산했는지, 그러한 시도가 어떤 생활사적․민중사적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박사과정에 진입해서는 ‘출판·인쇄의 사회사’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도시민의 일상생활 문제에 눈을 돌렸습니다. 조선후기와 식민지기의 출판은 전혀 다른 접근법을 필요로 하는 낯선 세계이고, 해방 이후의 인쇄․출판․유통의 역사도 기록으로 남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관련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복원할 수 있는 시기는 20여년에 불과합니다. 믿을 만한 통계도 없고, 현재와 같은 출판 제도나 관행이 도입된 연유를 알려줄 자료도 찾기 힘들었습니다. ‘월부 책장사’나 ‘헌책방’ 같은 제도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한계에 부딪혀, 저는 일단 도시민들의 ‘생계’와 ‘도시 변화’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방향을 재설정했습니다. 「뿌리깊은 나무」도 급격히 발전하는 도시와 도시민의 생활을 꽤나 촘촘하게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도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출판·인쇄의 사회사가들이 제시한 “Communication Circuit”은 일종의 책의 생애지도로, 책이 저자를 거쳐 편집자와 인쇄공, 제본공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망을 통해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진입해 비평가와 독자들에게 읽히며, 그들의 피드백이 다시금 저자에게 향한다는 생태계 내의 순환고리로도 읽힙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응용해서 도시와 도시민의 생태계를 그려내는 작업을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이며 현재적인 문제로 “가난한 도시민의 생계”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박사과정에 입학한 2015년 즈음, 빈곤층 노인들의 폐지수집 행위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빈곤한 도시민(특히 여성)은 어떤 노동을 통해 생존해왔는가”라는 질문을 들고, 여성노인의 노동의 역사와 현재의 노동행위를 탐색했습니다. 사회사(·역사사회학)와 구술사를 훈련받아왔기에 우선 공간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조사해보기로 했습니다. 폐지수집 노동을 하는 노인(들)을 길과 경로당, 벤치 등에서 만나 구술생애사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마침 서울연구원의 과제에 선정이 되어, 2년에 걸쳐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서울연구원, 2015: 책임연구자);「도시노인의 지역 내 자원의 흐름과 이용」(서울연구원, 2016: 책임연구자)이라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연이은 2년간의 작업은 폐지수집이라는 노동이 산업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구조를 밝힌 현재적 의미가 있습니다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40~50여년을 살아 온 개인(들)의 생애사를 수집하고, 각 개인이 인식하는 북아현동의 공간과 내부의 관계를 정리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부녀회, 반공단체를 거쳐 경로당에 이르는) 동네의 주민조직에서 일해 온 한 노인은 조직원을 대상으로 (인근 지역에서) 화장품과 옷을 떼어 팔다, 요즈음엔 야채를 떼어다 팔고 경로당 회원들과 함께 박스를 주워 생계를 유지합니다. 이 노인에게 북아현동이라는 지역은 마을이자 일터이지만, 자원축적은 이루어내지 못한 터전입니다. 또한 「고령화 시대에 대응하는 서울형 지역사회 전략」(서울연구원, 2017: 공동연구원) 조사에 참여하며 강동구 천호동 지역의 노인의 구술을 청취했는데, 노인의 일상생활권 조사라는 현재적 의미와 더불어 30~40여년 동안 한 동네에서 살아 온 개인(들)의 생애사를 수집하고, 1970-1980년대 새롭게 조성된 천호동 주택지와 개인들의 생애 변화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들만으로는 생계의 역사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도시 행정과 정책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1960년대 넝마주이의 생활과 정부의 관리(법)”(한국사회사학회, 2017/5/26 발표)와 “도시가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방법”(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도시락과 사회학”, 2018/5/14 발표)이라는 두 번의 발표를 통해, 도시하층민을 대상으로 하는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공통된 정책과 차이점 등을 어설프게나마 분석했습니다. 국가기록원과 서울특별시가 소장한 공공기록물(행정자료, 사진, 영상자료 등),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구축된 1차·2차 사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나 크리스쳔아카데미가 수집한 여러 민간 기증/기탁 기록물, 또 신문·잡지 기사, 소설과 르포르타쥬 같은 문학작품 등을 통한 여러 유형의 자료를 연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거기에 「‘유신’의 동원 전략에서 ‘강남화’의 구별짓기 전략으로: ‘88·86의 시대’와 한국형 도시미화운동의 출현」(한국연구재단, 2016-2018: 연구보조원) 과제에 참여하면서 ‘가난한 도시민’에게는 위협이었던 도시재개발과 도시미화운동의 역사와 정체를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2017년도 서울역사구술채록사업: 서울시정과 공무원들(예산·주택)」(서울역사편찬원, 2017: 면담책임자)을 통해 전직 공무원과의 구술 작업을 진행하며 얻은 노하우가 작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즉, 도시행정에 의한 공간재편과 행정력의 쓸모와 실체를 파악한 경험은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가진 역할의 위계와 차이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생들과 함께 하는 ‘형제복지원 연구팀’의 한 명으로 형제복지원과 관련된 행정문서와 구술녹취록을 분석하여 “무감각한 자들의 保導와 갇힌 자들의 비참: 형제복지원 시설 내 직업보도 행위를 중심으로”(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팀 주최 학술대회 「배제에서 포용으로: 형제복지원의 사회사와 소수자 과거청산의 과제」, 2018/11/19 발표)를 발표했습니다. 부산의 형제복지원의 기능 중 하나인 ‘직업보도소’가 부산이라는 도시의 행정기관과 산업(공장, 회사)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 노동을 빌미로 연결/연루된 도시-산업 네트워크를 재구축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타인의 생계와 연결망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해왔습니다만, 저 역시 생계를 위해 다양한 주체들과 서울의 역사를 토대로 여러 연결망을 만들며 협업을 해왔습니다. 문화예술기획자들의 소개로 “광희문 달빛로드 스토리 자원조사”(서울특별시 중구청, 2015: 공동연구원), 「2016 서울역 일대 인문사회분야 스토리텔링 및 장소마케팅 방안」(서울특별시, 2016: 연구보조원), “다산·약수 걸어서 예술路”(서울특별시 중구문화재단, 2017: 공동연구원)에 참여했습니다. 광희문(과 동대문), 서울역(과 남대문시장), 다산동과 약수동에 대한 역사적 자원을 발굴했고, 이를 토대로 “광희문 달빛로드”, “서울로 7017”, “다산·약수 걸어서 예술路”라는 시민을 위한 역사탐방로를 생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기록원(Seoul Metropolitan Archives, 2019 개원 예정)의 기록전문가와의 협업으로 여러 형태의 소장기록물과 수집기록물의 검색도구이자 온라인 콘텐츠로써의 ‘리서치가이드’(Research Guide, 2017)와 ‘시정기록과 시민기록의 맥락연계가이드’(2018)를 개발했습니다. 이 둘은 기록물을 수집·보존하고 시민들이 열람할 수 있게 하는 서울기록원의 목적을 반영한 것인데, 이용자가 특정 주제에 해당하는 소장기록물에 접근가능하게 하고 소장기록물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하는 온라인-검색도구입니다. 역사를 토대로 경로(徑路)를 만들고 안내서(案內書)의 형식을 만드는 일은 지식의 사회적 쓸모를 확인하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즉, 연구자로의 역할을 자각하는 기회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이렇게 도시민의 생계와 장치의 변화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진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를 생산해왔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사 연구자로 제도를 중심으로 한 사회사·역사사회학의 방법과 구술사를 통한 일상사·생활사의 방법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X에서의 작업을 통해 해방 후 서울의 행정·제도의 변천을 넘어, (대상자로 여겨져왔으며 기록하지/되지 않은) 서울(도)시민들의 일상생활의 변화를 파악하는 작업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말 그대로의 하루하루의 일상생활(daily routine)에서부터 특정한 사회적·정치적 변동기의 일상생활을 통해, 서울의 역사를 정치사·제도사뿐 아니라 생활사·일상사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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