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도시』94호(2018 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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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종소리울린다삼천만일어서라 / 썩은것때묻은것샅샅이불살라서 / 바르고새로운것하나하나고쳐가는 / 슬기로운사자들의엄숙한얼굴위에 / 아밝아오는희망의아침 / 동포여뭉쳐라 / 혁명의이념아래아밝아오는희망의아침 / 동포여뭉쳐라 / 혁명의이념아래” – <재건의노래>
1969년, 소설가 이호철은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서울은 현대도시의 외모를 갖추면서 사실은 공포의 지대로 급속히 변모하고 있는 인상”이라며 “외양은 현대화하여가고 내실은 엄청나게 퇴폐화하여가는” 건 아닌지 중얼거린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1960년대는 “재건”을 통한 “사회만들기”라는 과제를 내놓았다. 예컨대 1961년 12월 5일의 「대한뉴스」343호에 담긴 이 “재건의 노래”의 가사는 상징적이다. “썩은 것과 때 묻은 것”을 불사르고 “바르고 새로운 것”을 고쳐나가자고 말한다. 이 “현대화”와 “퇴폐화”라는 이항대립은 1960년 4.19에 시작되어 이후에 지속되었으며, 서울이란 도시가 하나의 스펙타클(spectacle)로 지속하게 한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서울로 몰려들었다. 이농민들은 대부분 도시빈민의 처지로 국유지의 판자집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에 전쟁이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아 길거리에서 고아들이 자라났다. 이들은 동냥뿐만 아니라 구두닦이, 넝마주이, 신문팔이, 지게꾼 등의 일이나 일용직으로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생계를 이어갔다. 정부는 이들을 두고 때에 따라 영세민이라 부르고, 거주지가 불분명하다며 부랑인이나 거지라 불렀다. 학계는 도시빈민이라 불렀고, 언론에서는 어떤 사건이 터지면 도시빈민의 소행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들을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우범자로 치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즉, 무허가/불법인 공간과 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도시빈민은 도시의 퇴폐의 상징이자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였다. 당시의 언론이나 학계에서 거지들의 정체를 밝히는 보도와 연구가 발표된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와 경찰의 대책이 나온다. 그들은 당시의 ‘사회문제’였고, 도시의 현대화를 더디게 하는 원인이었다.
도시빈민들은 우범자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형편이고,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들 개인의 과오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도시사회에서 배제된 결과로, 직업을 갖지 못한 체 지하세계를 떠돌게 한 사회의 구조적 결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도시빈민의 생활을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1960년대부터 도시빈민들은 개발과 재개발과 도시 ‘미화’의 과정에서 자신의 신체를 차출당하거나 생활과 공간을 침탈당한다. 분명 도시의 일원이지만, 삶을 인정받지 못한 구성원이며, 규칙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살아 온 사람들이라는 데서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는 궂긴 생활을 했으나 근근이 버텨온 그들의 삶은 무의미하지 않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발전의 이면을 파악할 수 있고, 지금껏 풀지 못한 도시이면의 경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만의 언어, 거지말
도시에서 거지들은 적잖은 존재였다. 그들은 대개 자신의 노동력 외에는 그 어떤 자본도 가지지 못했다. 거주지와 작업장과 단속을 피하기 위한 소통이 필요하기에 공동생활을 했다. 이들은 일종의 조직체로 움직였는데, 1960년 서울 시경의 발표에 따르면 약 1,000여명의 부랑아들이 조직으로 움직였다 한다. 20세 전후의 두목을 가리키는 ‘조마리’가 약 70명이었다. 이 조마리 한 명은 ‘넝마주이’ 열 명을 데리고 있으니, 넝마주이의 수는 한 700여명 정도라 파악한다. 게다가 구걸을 해서 밥을 얻어 오는 ‘걸통’이 300여명 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수로) 도시를 떠도는 거지들의 독특한 언어습관은 여럿의 관심을 끌었다.
이숭녕(1908-1994)은 은어란 “언어사회학에 가장 좋은 연구과제이며, 또한 언어지리학적인 과제”라 말한다. 국립국어원의 설명처럼 은어(jargon)란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이다. 사회구조의 변화에 연이어 언어가 변했다는 말로, 새로운 집단이 생겨났거나 기존의 집단에 변화가 일어난 결과로 이해한다. 즉, 거지들에게 은어란 도시에서 살기 위한 약속이자 도구의 흔적이다.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질구레한 싸움 속에서 일상을 만들어갔다. 시경의 발표에서처럼 조직생활을 형성하고 (내부)규칙을 만들며 유지하지만. 실질적인 폭력의 위험을 피해야 하는 일 역시 중요했다. 경찰이 파악한대로 ‘조마리’나 ‘걸통’과 같은 은어를 사용하는게 다반사였다. 여기에는 ‘나와바리’ 침범이나 조직 단위의 ‘복수’로 인한 폭력 사건에 대처하고, 경찰의 단속을 피하는 일은 무척 중요한 일이었을 테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들만 알아볼 수 있는 은어를 사용했다.
까발려진 암호와 시커먼 과거
1958년, 서정범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뒷골목 그룹‘의 은어문자(隱語文子)에 대해 조사했다. 셜록 홈즈의 『춤추는 사람 인형』(The Adventure of the Dancing Men)에 나오는 ‘춤추는 남자 암호(Dancing Men Code)’란 문자를 치환한 암호였지만, 서정범이 조사한 은어문자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상형문자와도 같다. 이 “은어문자는 오직 뒷골목 그룹에서만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다는 판단에서 조사됐다. 그들 상당수는 낮은 학력의 문맹자가 많았을 가능성 역시 높고, ‘나와바리’ 내부를 혼자 이동해야 하는 처지다 보니, ‘구어’로 이루어진 은어뿐만 아니라, 또 다른 ‘문자’로 이루어진 은어 역시 필요했을 것이다.

[그림 1] 그룹관계를 가리키는 은어문자
무엇보다 “그룹 관계”항목을 가리키는 표([그림1])가 흥미롭다. 넝마주이뿐만 아니라, 같은 문자를 공유하는 ’뒷골목 그룹‘ 혹은 하층민의 기록이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1) 딸딸이 | 자전차전문절취자(自傳車專門竊取者, 자전거도둑), (2) 시라이꾼 | 종이줍는 자 (넝마주이), (3) 장물애비 | 절취품매매소개자(竊取品賣買紹介者, 장물아비), (4) 감투재비꾼(帽子專門竊取者) | (모자를 전문으로 훔치는 사람), (5) 꼬재비 | 소매치기, (6) 뚜룩 | 도적(盜賊), (7) 짚신 | 정식 똘만이(部下, 부하), (8) 로마이 짚신 | 말쑥한 똘만이, (9) 삥재비 | 소매치기, (10) 왕초 | 두목(頭目), (11) 똘만이 | 부하(部下), (12) 야간치안국장(夜間治安局長) | 두목, (13) 강짜(强盜), (14) 양아치 | 걸인(乞人), (15) 구름 | 족보 (族譜) , (16) 얌생이 | 몰래 훔치는 그룹”이다. 앞의 열한 개는 글을 몰라도 읽을 수 있게끔 상형(象形)한 문자들이고, 뒤의 다섯 개는 한글이나 한자의 변형으로 보인다.
이 그림문자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예를 살펴보자[그림2]. 말 그대로 일종의 전문(轉聞)과 같다. 독해법은 입말(口語)의 순서대로 그림을 읽는 것이다.

(三)문장은 “시골에서 갖 올라온 처녀(시골에서 갓 올라온 여성), 1, 낚다, Pander(포주), 오라”의 의미를 가진 다섯 문자로 이루어졌고, “시골에서 갖 올라온 처녀를 한 명(을) 꾀어서 Pander(포주)에게 데려다 주라”라는 의미다. 거지들의 그림문자는 이문열의 소설 『변경』에 나온 것처럼, ‘빠리꾼’(유인책)이 여성을 꾀어 성매매 산업에 밀어넣는 과정을 보여준다. 짐작할 법한 이야기지만, 거지들 가운데 몇몇은 빠리꾼(유인책)으로 성매매 산업에 연계돼 있다. 당시 이농한 여성이 직업을 갖기란 무척 어려웠고, 서울역은 (자의 혹은 타의로) 성매매 산업에 진입하는 입문처였다. 흔히 서울역 앞에 상경하는 여성들에게 포주들이 접근해 와 ‘좋은 일자리를 취직시켜주겠다’며 낚아채 윤락의 수렁에 빠뜨렸다지만, 거지들 중 일부가 ‘빠리꾼’으로 활동했다. 이렇게 포주에게 간 여성들의 삶 역시 기구하다. 성매매 산업에는 ‘염쟁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었는데, (빠리꾼의 꾐에 빠져서) 서울역에서 양동으로 온 여성들을 성폭행해 탈출할 생각을 아예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 당대의 순결에 기인한 정조관념으로 인해, 성폭행 당한 여성은 이렇게 성매매 산업에 진입했다. 어쨌거나 거지들 가운데 몇몇은 ‘빠리꾼’ 역할을 했으며, 이들이 살기 위한 일로 인해 어떤 여성들은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 빠졌다.

(二)문장은 명령을 가리킨다. “내일, 똘만이, 7, 국도시장, 오다”를 가리키는 다섯 문자다. 의미를 살피면, “내일 똘만이 7명을 국도시장으로 보내라”는 말이 된다. 대화가 허용되지 않는 감옥에서 통용된 은어에 대한 연구를 참조해 보자. 가령 식민지기 서대문형무소와 함흥형무소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은어를 예로 들자면, 이들은 ‘미리 암호화된 통신문’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이를 ‘통방(通房)’이라 하는데, 미리 암호화된 단어를 지정해서 암구호로 사용하거나, 모스부호처럼 벽을 두드려 숫자에 따라 단어를 조합한다. 그러나 이는 형무소 내부에서 “방을 달리하는 수감자들 사이에서 서로 정보교환”을 하기 위해 사용했고, “수감자들 사이에 매우 보편화”되어있었다고 말한다. 물론 거지들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도시를 (수감자에 비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지금과 달리 공중전화를 이용하기도 힘든 형편이니, 그들은 담벼락이나 약속한 공간을 이용해, 경찰의 ‘단속’과 다른 조직과의 ‘싸움’ 등을 피하며, 조직의 의사소통을 위해 그림문자를 사용했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가 발표될 시점, 이 그림문자는 무용해졌을지 모른다.
나오며: 궂긴 도시생활
앞서 본대로 거지들 가운데에는 성매매 산업이나 깡패들과 연계되어 살아온 자들이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주장이나 도시를 퇴폐하게 하는 거지들을 일소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의견을 내기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거지들을 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목적의 교화책이 이어졌으며, ‘거지’라는 말이 사회적 낙인으로 확산되었다. 거지(와 깡패)를 일소(一掃)하겠다는 정책이 등장하고, 저들 가운데 몇몇은 시책에 따라 각 지방정부의 ‘재건대’로 동원되고, 중앙정부의 ‘개척단’에 동원된다. 또한 어떤 이들은 길에서 붙들려 국가 혹은 민간이 운영하는 여러 사회복지시설에 강제 입소하게 된다. 그들은 도시 한복판에 사는 변방의 존재가 되었고, 사회에 출입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같이 거지에 대한 사회의 낙인은 도시의 현대화 혹은 위생(명랑화)을 명분으로 한 폭력의 단초가 됐으며, 사회가 문제로 삼은 집단이 확장되는 계기였다. 그들을 정리하면 될 줄 나아질 거라 믿었겠지만, 이후에 전개된 사건들을 염두에 두면 ‘미화’의 대상은 거지에서 시민들로 향했다. 형제복지원이나 삼청교육대의 사건에서 잘 알려진 것처럼 권력이 마구잡이로 ‘거지’ 혹은 ‘부랑아’라는 낙인을 붙이는 일이 발생한 일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일소하겠다! 일망타진하겠다!’는 권력의 선언은 (거지들의 자질구레한 모든 전략을 무너트렸고) 거지뿐만 아니라 일반인까지 ‘일소’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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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협, 2012,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