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구술사학회 2026년 전기학술대회 “성찰하는 구술사”

기획 의도

그동안 한국의 구술사 연구는 공식 역사의 공백을 메우거나 지역사·여성사·현대사 연구를 보완하고 비판하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이번 전기학술대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술사가 국가, 시민권, 정상성의 경계를 횡단하며 그 안과 밖을 성찰하는 실천으로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경계는 안과 밖을 가르지만, 생애는 그 경계를 넘나든다.

이번 학술대회는 국가가 그어놓은 기억의 경계를 횡단하는 구술에서 출발하여, 제도가 지운 존재들의 목소리와 정상성 바깥에 놓인 몸들의 감각적 증언에 주목한다. 이는 비정상성을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주를 규정하는 정상성의 폭력성을 드러내고, 그 틈새에서 피어난 전유와 저항의 전술을 포착하려는 노력이다. 또한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을 잇는 작업을 통해, 거대 서사에 가려진 개인의 존엄을 복원하고 구술사 연구를 통한 비판적 한국학의 외연을 실천적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에 본 학술대회 개최의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 단위의 기억틀을 넘어서는 구술사를 모색해야 한다. 제주4·3에 대한 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사건의 경험은 일국의 영토를 넘어서며,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 재일 디아스포라, 미군부대 한인 노동자 등 다양한 경계와 이동의 궤적 위에 선 이들이 있다. 국가와 시민이 조응하며 논해졌던 ‘불온’과 ‘정상’의 구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공식 서사의 자장 바깥에서 수행되는 구술의 의미를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둘째, 다양한 사회집단의 생애와 취약성에 주목해야 한다. 퀴어 장애인, 미등록 이주청소년, 이주노동자, 피난민 등은 국가의 공식 기록과 제도 경계에서 살아온 이들로서, 이들의 생애는 시민권을 되묻고 정상성 비판이 실제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균열하는지를 드러내는 현장이다. 구술사는 이처럼 말할 수 없고 드러나지 않는 존재를 사회적·정치적 서사로 재구성하는 방법론적 통로이다.

셋째, 구술사 방법론의 확장과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20년간 누가 무엇을 왜 기록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구축되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듣고 어떻게 재현하는가를 구체화해야 한다. 가족 등 집단적 경험의 재구성, ‘몸’에 새겨진 감각적 기억의 포착, 구술자의 다중적 위치성, 국가 간 비교 가능성 등의 문제를 통해 구술의 영역을 텍스트 너머로 확장해야 하며, 이번 학술대회는 이러한 방법론적 실험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이다. 

마지막으로, 세대와 분과를 가로지르는 연구자 간 교류의 장이 필요하다. 이번 학술대회는 다양한 세대와 위치의 연구자가 구술사라는 공통의 방법론을 매개로 모이며, 한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 베트남 등 연구의 지리적·학문적 범위 또한 넓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구술사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의 교류는 한국학의 다음 세대를 위한 토양을 만드는 일이다.

구성

◦ “[특별 세션] 제주4·3사건의 국가적 기억과 횡단하는 구술사”는 제주 4.3에 대한 인식을 국가 단위에 가두지 않고 이동과 횡단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피난민 1.5세대, 월북자 가족의 생애사, 오사카/오키나와에서의 연구를 통해 공식 서사의 자장 안팎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 “[기획 세션 1]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국가의 공식 기록과 제도 사이에서 비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의 생애에 주목한다. 미군기지 내 한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노동, 미등록 이주 아동의 ‘세대화된 불법성’을 구술생애사를 통해 재구성한다. 

◦ “[기획 세션 2] 정상성 바깥의 낀 존재들”은 젠더·섹슈얼리티·신체의 정상성 규범이 생애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균열하는지를 탐색한다. 퀴어 장애인의 교차적 배제 경험과,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현장의 경계 안팎에서 마주하는 위치성과 침묵의 문제를 다룬다.

◦ “[자유 세션 1] 경계를 넘나드는 몸과 일상”은 제도적 경계를 가로지르는 이주와 이동의 경험을 다룬다.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의 주체성을 구성하는 권력-지식 체계로 작동하는 양상과, 제주살이 경험자들이 로컬과 관광객 사이에서 전유하는 새로운 일상의 실천을 살핀다.

◦ “[자유 세션 2] 새겨진 감각의 증언”은 구술의 영역을 텍스트 너머로 확장하는 방법론적 실험을 공유한다. 한국과 독일의 4세대 비교 생애사 인터뷰를 통한 개인화의 변증법, 그리고 국가폭력 피해자의 몸에 각인된 감각 기억과 비언어적 발화 전략을 다룬다.

기대 효과

기대효과

◦ 한국학의 이론적 심화: 구술사의 성찰성과 횡단성을 이론적으로 정교화함으로써, 한국학이 일국사적 틀에 고이지 않고 국가 간 비교와 디아스포라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의 관점을 내재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한국학이 지역학의 경계를 넘어 인문사회과학의 이론적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 구술사 연구의 심화와 외연 확장: 이번 학술대회는 구술사를 공식 역사의 보완이나 대체가 아니라 국가·시민권·정상성이라는 경계 자체를 비판적으로 묻는 실천으로 재정립하며, 제도 바깥에 놓인 비가시적 존재의 생애를 학술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옴으로써, 구술사가 가진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서사로 재구성하는 방법론적 가능성을 주장한다.

◦ 새로운 구술 주체의 등장과 방법론적 갱신의 요구: 구술사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 ‘프로그램’으로 대중화되거나 인터뷰 구성 기법으로 축소되는 한편, 구술사 연구가 흥미로운 대상의 발굴에 머무르지 않고 구술자의 존재를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또한 정상성의 재편, 디아스포라의 확산, 교차적 배제의 심화 등 사회변동에 따라 새로운 구술의 주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의 경험을 포착하기 위해 기존의 방법론적 틀 역시 갱신되어야 한다.

◦  구술사 방법론의 구체적 혁신: 이번 학술대회는 당사자 부재의 공백을 메우는 가족 생애사, 신체에 각인된 감각적 기억과 비언어적 발화를 다루는 ‘몸증언’, 구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침묵과 누락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구술자와 연구자의 위치성을 성찰함으로써, 기존 구술사 방법론이 충분히 다루지 못한 영역을 발굴하고 새로운 학문적 의제를 제안한다.

◦ 세대 간·분과 간 연구네트워크의 구축 및 학술 성과의 지속적 확산: 이번 학술대회에는 국내 다수 대학 및 연구기관의 교수, 석·박사과정, 박사수료 연구자와 독일 등 국외 연구자가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비교문학, 사회복지학, 역사학, 여성학, 도시계획학, 문화연구 등 여러 분과에서 참여한다. 이는 구술사를 매개로 한 세대 간 교류와 학제적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발표 논문을 토대로 『구술사연구』 특집호 기획 및 단행본 출판을 추진하여, 학술대회의 성과가 일회적 발표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유·확산될 수 있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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