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기술로서의 인프라
: ‘위생적 시민권’의 형성과 불평등의 정치
도시, 가난/불평등, 쓰레기에 관한 연구를 정리하기 위해 ‘인프라’ 연구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하는 중입니다. 이를 위해 ‘도덕적 기술로서의 인프라(Infrastructure as Moral Technology)’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이를 기초로 만들어지는 ‘위생적 시민권(Hygienic Citizenship)’에서의 불평등을 발견하는 연구를 기획했고, 운좋게 한국연구재단 신진연구자지원사업에 선정됐습니다. 이를 기초로 다양한 조사와 연구논문, 그리고 출판을 시도하려 합니다.
- 2026년 신진연구자지원사업(인문사회) 선정
- 연구 기간: 2026/6-2029/5 (3년, 2026/6-2027/2, 2027/3-2028/2, 2028/3-2029/2, 2029/3-2029/5)
- 주요 키워드: 도덕적 기술, 위생적 시민권, 위생-인프라, 상품화, 공적 표준, 일회용성, 폐기물 전가, 공간적 불평등, 인프라의 역전
연구 계획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연구 목표
2018년 이후 전국에서 발견된 493개의 쓰레기산은 한국 사회의 위생-인프라가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지를 가시화했다. 누군가의 청결함이 타인의 오염을 전제로 한다는 이 구조는, 위생-인프라가 단순한 물리적 설비가 아니라 청결한 공간과 오염된 공간, 위생적 시민과 그렇지 못한 존재를 구획하는 ‘도덕적 기술(Moral Technology)’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한국 사회에서 위생-인프라가 공공재에서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 ‘도덕적 기술’의 관점에서 규명하고, 이것이 ‘위생적 시민권(Hygienic Citizenship)’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계급적 불평등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밝히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 연구의 핵심은 위생-인프라가 ‘상품화’되는 과정이 단일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이중의 경로를 통해 진행되었음을 입증하는 데 있다.
먼저, 수돗물의 경우, 1990년대 초 상수도 보급률이 80%를 넘어서며 보편적 인프라로 자리잡아가던 시점에 1991년 낙동강 페놀 사태를 계기로 국가의 수질 표준과 시민의 감각적 경험이 충돌하며 공적 신뢰가 붕괴했고, 생수와 정수기라는 사적 대안이 부상했다(경로 1: 공적 표준의 실패). 다음으로, 일회용 생리대의 경우, 자본이 ‘편리함’이라는 새로운 위생 규범을 창출하며 빨래 노동을 ‘불편함’으로 재정의하고 청결을 개인의 소비 의무로 전환시켰다(경로 2: 자본의 규범 창출). 이 두 경로는 서로 다른 동력으로 추동되지만, ‘일회용성(disposability)’이라는 공통된 물질적 귀결을 생산한다. 즉, 생수의 PET용기, 일회용 생리대 등은 상품(혹은 포장재)에서 대량의 폐기물로 그 역할이 전환되는데, 이때 이 폐기물은 특정한 공간과 신체에 차등적으로 전가된다. 구체적으로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이후 확립된 폐기물 처리 체계를 검토하면, 대도시 중산층의 청결함은 주변부 지역의 환경 오염과 선별장 노동자의 위험한 노동을 전제로 성립한다.
방법론적으로 본 연구는 Star(1999)의 ‘인식론적 고장’의 순간을 포착하여 ‘인프라의 역전(Infrastructural Inversion)’에 기반한 다층적 계보학을 채택한다. 총 3년의 연구기간 동안 1차 년도에는 상수도의 보급과 수질 관련 표준의 형성, 페놀 사태 이후 소비자의 사적 대안 선택 과정을 문헌 및 담론 분석과 DB구축 및 분석을 기반으로 감각적 신뢰 균열을 분석하며, 2차 년도에는 생리대 시장에서 기업의 전략과 소비자의 선택을 광고에서 ‘재현’된 의도를 분석하고, 경제기획원, 통계청, 기업 등에서 파악하는 생산량·판매량 등의 데이터를 통해 시장의 형성과 위계화를 계량적으로 입증할 예정이다. 이러한 두 가지 경로가 만들어 낸 귀결이 ‘성장’이 아니라 ‘대량의 폐기물 처리’라는 지점은 본 연구가 기존 인프라 연구와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이를 위해 3차 년도에는 199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 일회용 상품의 폐기물처리 양상과 처리 과정에서의 폐기물 이동 등에 관한 수치와 현황을 계량적으로 수집분석하며, 폐기물 처리장 안팎에서 발생하는 공간적·신체적 불평등을 분석하기 위해 구술사 및 참여관찰을 수행한다. 궁극적으로 이 연구는 기존의 ‘인프라적 시민권’ 개념을 보편적 접속 내부의 질적 차등화를 포착하는 ‘위생적 시민권’으로 확장하며,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서구 STS의 단선적 상품화 모델로는 포착할 수 없는, ‘접속 이후(post-access)’의 불평등 구조를 이론화한다.
2. 기대 효과
이 연구는 학문적 차원에서 인프라사회학의 이론적 지평을 확장하고, 사회적 차원에서 환경 정의와 돌봄의 인프라를 위한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다.
먼저 학문적 기여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도덕적 기술’ 개념을 통해 인프라 연구의 분석 단위를 전환한다. 기존의 인프라 연구가 네트워크로의 연결 여부, 즉 ‘접속 혹은 배제’에 집중했다면, 이 연구는 보편적 접속이 달성된 이후 그 내부에서 발생하는 질적 차등화에 주목한다. Graham & Marvin(2001)의 단선적인 상품화 모델이 신자유주의적 민영화라는 단일한 경로를 상정하는 반면, 이 연구는 공적 표준의 균열(경로 1)과 자본의 규범 창출(경로 2)라는 이중 경로를 실증함으로써 상품화의 복수적인 동력과 그 수렴 과정을 규명한다. 이는 인프라가 시민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도덕적이며 계급적인 경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며, 기존 서구 STS의 지배적인 담론을 넘어서는 ‘접속 이후’ 단계의 인프라 분석 모델을 제안하는 것이다.
둘째, ‘위생적 시민권’ 개념을 제안하며 현대 불평등 연구의 영역을 확장한다. Lemanski(2019)의 ‘인프라적 시민권’이 물리적 연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연결의 유무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 연구의 ‘위생적 시민권’은 ‘접속 이후’에도 개인의 구매력에 따라 ‘안전하고 깨끗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가 차등적으로 배분되는 과정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소득이나 자산 중심의 전통적인 불평등 지표를 넘어, 인프라에 대한 의존 방식, ‘오염’의 전가 경로, ‘위험’에 대한 노출 정도를 불평등의 새로운 척도로 제안한다.
셋째,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 경험을 통해 동아시아 인프라 연구에 고유한 기여를 한다. 서구에서 공공 인프라의 구축, 보편화, 신자유주의적 해체가 몇 백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 반면, 한국에서는 불과 30~40년 안에 국가 주도의 인프라 확장과 자본에 의한 상품화가 중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 인프라의 압축적 형성은 ‘도덕적 기술’의 ‘이중 경로’가 특히 선명하게 관찰되는 조건을 만들었으며,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압축 성장 국가들과의 비교 연구로 확장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다음으로 사회적 기여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위생의 책임을 개인의 소비 능력이나 자기 관리의 영역으로 환원하는 상품화 경향에 맞서, 위생 서비스를 시장의 상품이 아닌 기본권의 필수 조건으로 재규정하는 학술적 근거를 마련한다. 수돗물 악취 사태나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에서 드러났듯, 개별적 소비를 통한 사적 해결은 구조적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 연구는 인프라 공급의 공적 표준을 복원하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학술적 논거를 제공한다.
둘째, 생산-소비-폐기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한다. 대도시 소비자의 청결함이 매립지 주민의 환경 위험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종의 데이터와 구술사로 입증함으로써, 수도권 매립지 종료와 같은 첨예한 사회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숙의적 자원을 제공한다. 나아가 버틀러(2021)의 ‘근원적 취약성’ 개념에 기초하여, 인프라를 ‘우월한 시민’의 배타적 특권이 아니라 ‘모든 취약한 신체들의 연결망’으로 재정의할 때, 서로 다른 신체들이 공존할 수 있는 환경 정의의 실천적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의 상수도 보급률은 99%, 생리대 이용률은 사실상 100%에 달한다. 인프라에 대한 접속 자체는 더 이상 쟁점이 아니다. 그러나 2017년 ‘깔창 생리대’와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 2018년 이후 전국에서 발견된 쓰레기산은 보편적으로 확산된 위생-인프라 내부에 심각한 불평등이 작동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연구는 이 불평등의 기원을 추적한다.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위생-인프라가 공공재에서 상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도덕적 기술(Moral Technology)’의 관점에서 규명하고, 이것이 ‘위생적 시민권(Hygienic Citizenship)’이라는 계급적 불평등을 생산하는 구조를 밝힌다.
3. 연구 요약
이 연구가 주목하는 두 경로[공적 표준의 실패(경로 1: 수돗물)와 자본의 규범 창출(경로 2: 생리대)]는 서로 다른 동력에 의해 추동되지만, ‘일회용성(disposability)’이라는 공통된 물질적 귀결을 생산한다. 대도시 중산층의 청결함은 주변부 지역의 환경 오염과 선별장 노동자의 위험한 노동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다. ‘위생적 시민’이란 자신의 공간에서 오물을 분리할 수 있는 권력이자, 그 대가를 타자의 공간에 전가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이다.
방법론적으로 이 연구는 Star(1999)의 ‘인프라의 역전(Infrastructural Inversion)’에 기반한 다층적 계보학을 채택한다. 페놀 사태(1991), 생리대 파동(2017), 쓰레기 대란(2018)을 위생-인프라의 ‘인식론적 고장(breakdown)’이 가시화되는 순간으로 포착하고, 이 세 사건을 축으로 상품화의 두 경로가 분기하고 수렴하는 구조를 재구성한다.
1차 년도는 1978년 환경보전법 제정부터 1991년 페놀 사태까지 수질 표준의 형성·균열·붕괴 과정을 추적한다. 국가기록원·국회도서관의 정부 행정 문서와 규제 관련 기록 뿐만 아니라 전국경제인연합의 내부 자료를 수집하고, 법적 기준치와 실제 측정 데이터를 망라한 ‘수질 표준 시계열 DB’를 구축하여 표준의 불안정성을 실증한다.
2차 년도는 1971년 최초의 일회용 생리대 출시부터 1990년대 시장 확장까지, 자본이 ‘편리함’이라는 규범을 창출하며 시장을 형성한 과정을 추적한다. 관련 기업의 사보, 경제통계, 광고 자료를 수집하여 ‘생리대 시장 시계열 DB’를 구축하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등 사회경제 지표와의 교차 분석을 통해 생리대가 기호품에서 필수재로 전환되는 과정을 정량적으로 입증한다.
3차 년도는 두 경로의 수렴점인 폐기물에 초점을 맞추어, 환경부·통계청의 폐기물 발생·처리 현황 데이터를 기반으로 ‘폐기물 이동 및 공간 불평등 DB’를 구축하고, 매립지 주민 및 선별장 노동자 대상 구술사와 참여관찰을 수행하여 정량 데이터에서 소거된 악취, 소음, 낙인의 경험을 기록한다.
이를 통해 이 연구는 Lemanski(2019)의 ‘인프라적 시민권’을 ‘위생적 시민권’으로 확장한다. 과거의 위생적 시민권이 국가 규율에 대한 순응을 통해 획득되었다면, 오늘날의 위생적 시민권은 시장에서의 구매력을 통해 증명된다. 더 나아가 이 연구는 ‘접속 이후’에 발생하는 질적 차등화를 이론화하며, 30~40년 안에 인프라의 구축·보편화·상품화가 중첩적으로 전개된 한국의 경험이 인프라 불평등 연구의 새로운 준거점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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