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의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아래 자료에 대한 요약과 정리 (2015년 3월 5일 작성)

박재환(1994/2010),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 『일상생활의 사회학』, 한울아카데미: 21-43.
___(2008), 「일상생활의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일상생활의 사회학적 이해』, 도서출판 한울: 23-46.

1. 일상생활 사회학의 의미

일상생활(日常生活)이란 말은 낯선 언어가 아니다. 예를 들어 “조종사 야구단, 실버 축구단, 일상생활에 ‘활력 비타민’”이나 “라식/라섹 수술 후 빠르게 일상생활 복귀할 순 없을까?”나 “에미 로섬, 편안한 일상생활 모습 포착돼 ‘눈길’”와 같은 신문 기사의 헤드라인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사전적인 의미인 “평상시(平常時)의 생활”이나 “매일 되풀이 되는 삶, 그것이 일상(박재환, 1994: 24)”이다.

일상생활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매일의 생활이다. 갖가지 활동을 하며 산다지만 날마다 다른 것은 아니라서 반복되는 경우도 많다. 되풀이되는 탓에 당연하고 자연스럽지만, 신비롭기는커녕 진부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마치 “별 일 없지?”라는 물음과 “응, 별 일 없어”라는 답은 일상생활에 대한 대표적인 문답이라고 생각한다. 별 일 없이 지속되는 일상은 대개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일상보다 심오한 것은 없다. 그것은 실존이며, 이론적으로 기재되지 않은 적나라한 ‘삶’이다. 무엇보다 변화의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그 어떤 것보다 바꾸기가 힘든 것이다(박재환, 위의 글: 25). 더 나아가 반복적, 진부함, 하찮음, 사소함과 같은 일상성은 개인의 생활 뿐 아니라, 특별한 ‘사건’을 치루는 중이 아닌 시/공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일상생활은 최근에 생긴 말은 아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http://newslibrary.naver.com)에서 “일상생활”을 검색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점인) 1920년부터 종점인 1999년까지 18,273건의 기사가 추출된다. 더 앞선 시점인 황성신문(皇城新聞)의 1905년 기사에서도 “일상생활(日常生活)”이란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일상생활나 일상이란 단어를 사용했을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앞서 말한 일상성의 특징들은 근대를 거치며 가장 예각(銳角)적으로 보인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분리함으로 일터와 숙소,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이 엄격하게 나누는 방식으로 발달해 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과 문화의 소외가 노골화되며 등장하기 때문이다.

2. 일상생활의 사회학의 성립 배경

현재의 여러 위기에 대해 사회이론들은 자신의 무력함과 무능함을 보여준다. ①개발과 환경오염 및 생태계 파괴, ② 과학과 기술의 발달과 전통적 가치관의 갈등, ③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에서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와 사회변혁운동의 변화, ④ 근대 서구의 도구적 합리성에 내재된 한계와 위기의 인식과 환멸감을 현대의 우리가 마주한 위기로 염두에 둘 수 있다(박재환, 위의 글: 30-38).

사회가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실체(박재환, 2008: 39)로 등장하는 곳에서 사회학이 등장했다. 즉, 사회학은 위에서 본 위기들의 본격적인 시발점인 근대 서구의 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새롭게 부상한 시민사회’를 바탕으로 성립됐다. 사회학은 ‘사회’라는 구체적인 실체와 이로 인한 변화에 대한 실천적인 의문과 과학적 탐색이 원동력이 되었고, 대부분의 사회학 연구자들은 “사회현상은 주관적·선험적으로 평가될 것이 아니고 자연현상을 다룰 때처럼 가치중립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명제를 원칙으로 삼았다(박재환, 위의 글: 39-41).

사회학의 실천전략은 진보와 진화의 틀 속에서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감추어진 법칙을 밝혀내서, 언제나 이전단계보다 ‘발전’된 새로운 단계로 이행한다는 것이었다. 꽁뜨(Comte)의 3단계설이나 맑스(Marx)의 유물사관은 대표적인 낙관적·직선적인 (역사적) 진보관이며, 주된 사회이론이었다(박재환, 1994: 21-22).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을 겪으며 이런 믿음에 대한 회의와 대안 찾기가 시도됐다. ‘직선적인 시간’의 구조가 약속한 발전과 내일에 대한 믿음보다도, (마페졸리의 말처럼) “표면적인 변화 아래에 변화하지 않는 대중적 태도들이 있으며… 가치관, 가정생활 등… 한마디로 처세술 및 사는 방식에 대관한 모든 것들이 놀랄 정도로 변화하지 않는다”는 지적처럼 영원히 되돌아가는 ‘주기적인 시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졌다(박재환, 위의 글: 23에서 재인용).

“…우리 시대는 사실보다는 이미지를, 원본보다는 사본을, 실재보다는 표상을, 존재보다는 형상을 더 좋아한다. …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성스러운 것은 환상일 뿐이며, 범속한 것 그것이 진실이다.”

포이어바흐의 말처럼,

‘일상생활의 사회학’은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탐색(박재환, 위의 글: 24)”을 말한다. 현실을 입체적으로 포착하기 위하여 설정한 각종 설명방식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동안 놓쳐버린, 실태 그 자체에 대한 새로운 발견일 뿐이다(위의 글: 23).

3. 일상생활 사회학의 연구 대상

일상생활의 사회학의 연구 대상은 광의적으로 일상생활과 관련한 사회현상 전체로 볼 수 있다(박재환, 2008: 27).  특히,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존재한다. 첫째, 클로드 자보(1980)는 ① 24시간의 배분(예, 국민생활시간 조사), ② 일상의 의식화와 상호작용의 의례(민속방법론, 비언어적 요소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연구), ③ 미시적 사회학에서 거시적 사회학으로의 확대(르페브르의 현실극복을 위한 일상 연구, ‘일차원적 인간’이 현대 사회의 진면목이라는 마르쿠제), ④ 사회학적 개념으로서의 불안에 대한 고찰(일상의 두드러진 특정한 성격과 인간 존재의 내면적 반성, 문학적 작품의 분석)로 나눈다.

박재환은 일상생활의 사회학에 있어 주요한 논자로 앙리 르페브르와 미셸 마페졸리를 들며, 이 둘을 대립적인 입장으로 이해한다. 르페브르는 맑시즘을 기반으로 한 일상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 반면, 마페졸리는 어떠한 이데올로기적 전제도 받아들이지 않고 대중들의 삶의 모습과 자체의 동력과 지혜, 위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들에 대해 모색한다고 간략히 설명할 수 있다.

일상에 대한 연구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포괄적으로 파악한다고 볼 때, 르페브르는 현대인들의 구체적인 일상이 현대의 기술문명과 소비적 특성에 의해서 끊임없이 소외되고 불만의 상태에 빠져있다고 포착한다(박재환, 1994: 31). 즉, 사회의 기술발전의 단계나 전체 구조는 개인의 구체적 삶을 제약한다. 인간이 가진 욕구 자체도 사회 전체적 수준에서 창출되고 조정된다. 르페브르(1961)는 “사회 전체의 인식 없이는 일상성에 대한 인식은 없다. 일상성과 사회 전체의 비판이 없이는, 그리고 그들 상호간의 비판이 없이는 일상생활에 대한 인식도, 사회에 대한 인식도, 그리고 사회 전체 속에서의 일상생활의 상황에 대한 인식도 할 수 없는 것(박재환, 위의 글: 32에서 재인용)” 그렇기에 르페브르에게 현대 사회의 일상생활은 (극단적으로 볼 때) 노동과 가정생활과 여가의 세 가지로 파악하며, 이 일상들은 “언제나 극복되어야 할 상태로 파악”된다(박재환, 위의 글: 34).

반면에 마페졸리는 주기적인 시간과 대중, 지적 상대주의에 대한 논의를 강조한다.  “사실 생산 이데올로기 등등 우리가 지배적이고 대단한 형태로 불렀던 것은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은 파괴당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비현실적이고 무의미한 것, 이러한 일상생활과 그 속의 자질구레하고 다양한 의례들, 이 모든 것은 언제나 그리고 늘 새롭게 전적인 파괴를 모면하게 되는 것이다.” 마페졸리는 직선적인 시간을 토대로 만들어진 거대한 이론과 역사관보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생활이나 의식으로 “현재까지” 남은 것들을 마주하려고 한다. 대중에 대한 관점에서는 르페브르를 비롯한 “소외의 ‘이론’”이 순진하고도 교의적이었으며, 민중은 이 ‘이론’에 대항해서 “타협할 줄도 알았고…, 교묘한 술책을 쓸 줄도 알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대중은 언제나 선하거나, 선한 가능성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굴절된 존재이며, 소외와도 타협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풍부하고 촘촘한 일상의 구체적 특성은 도식적인 실증주의와는 맞지가 않는다. 일상의 구체성이 논증되는 활동이나 상황들은 그러한 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하려는 어떤 인간관계나 종국적인 목적론으로는 전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일상생활의 사회학’은 한계이자 가능성을 가진다. 베버의 입장대로 “현실태의 총체적 파악은 언제나 불충분할 수 밖에 없다”지만,  일상생활의 사회학은 마페졸리의 주장과는 달리 뚜렷한 연구의 방법을 채택하고 있지는 못하다. “현실과 이론”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어떤 학적 실천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질문은 당분간 여전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박재환(2008)은 일상생활의 사회학이 대상으로 삼을만한 주제들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① 일상생활에 관한 인식론적·철학적 탐색, ②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방법론, ③일상생활에서 역사와 공간, ④ 일상생활의 세계: 우리 세계, 그들 세계, ⑤ 24시간의 배분, ⑥ 일상에서의 일과 여가, ⑦ 일상생활의 연출과 전략: 말, 몸, 음식, 옷, ⑧ 사회적 교제와 커뮤니케이션, ⑨ 일상과 의례, ⑩ 일상과 사건: 만남, 전기(轉機), 재난, ⑪ 일상생활에서의 단절과 탈주: 술, 중독, 축제, 죽음, ⑫ 일상과 꿈: 점, 종교, ⑬ 일상생활과 사회변동 (박재환, 2008: 29-30)

사실 일상생활의 사회학은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 현실’(박재환, 위의 글: 10)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에 일상생활의 사회학에 대한 시도를 도시민속학에 대한 탐구를 통해 나름의 방법을 탐색할 수 있다. 신지은(2014)은 도시민속학은 일상적 차원에서의 총체적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상생활의 사회학과 연구의 목적과 대상에 있어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고 본다. 더욱이 일상생활의 연구 방법론에서 종종 활용되는 민족지, 미시사 등의 관찰 조사 방법을 통해 도시의 문화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론적인 문제제기나 설명은 이상일(1971)같은 연구자로부터 제기됐지만, 실질적인 도시에서의 일상에 관한 연구는 김명자(1982)의 연구부터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송파지역을 조사하면서 송파지역 마을의 역사와 현황, 생업과 문화적 배경 그리고 계절적인 세시풍속에 이르는 다양한 민속자료를 수집했다. 가령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공간의 일상과 일상에서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도다. 박환영(2003)은 새 차를 살 때마다 벌어지는 차 고사(告祀)와 산에 있는 약수터나 산 정상에서 정기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산신제(山神祭)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4. 마무리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추리와 분석의 과학 역시 오랫동안 끈기 있게 연구해야만 익힐 수 있으며, 제아무리 평생을 노력한다해도 완벽한 경지에 이를 수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어려운 도덕적·정신적 측면에서의 접근 이전에, 우선 훨씬 기초적인 과제를 터득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 한 번 훑어보고 상대방의 이력을 알아내거나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 훈련은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관찰력을 연마할 수 있게 하며 관찰자로 하여금 어디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상대방의 손톱, 코트 소매, 신발, 바지의 무릎 주위, 엄지와 검지의 굳은 정도, 표정 그리고 셔츠의 소맷부리 등을 살펴보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뻔히 드러난다. 실력이 좋은 관찰자는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고도 뭔가를 알아내지 못하는 상황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도일, 2009: 34).”

일상생활의 사회학은 “이미 존재하는 실체를 새삼스럽게 부각시키는 데 목적(박재환, 1994: 21)”을 두고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 사회학 연구자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가 미시적이고 주관적이기에 거시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를 갖지 못한다는 비판을 마주하기 쉽다. “대단히 사소한 디테일과 쓰레기, 퇴짜 맞고 비루한 사물들과 같은, 우리가 보통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대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찰(신지은, 2014: 179)”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쓰레기나 잔재, 무의미해 보이는 파편들을 관찰하고 그 대상들을 기호화하는 (학적인) 활동은 간단한 (표피에 대한) 질문을 한다거나 기록을 계량화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말리노브스키(Bronislaw Malinowski)의 언어를 빌리자면  “the imponderabilia of actual life”이며, ”실생활에서 계량화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일상생활을 연구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신지은, 위의 글: 180 참조). 그 의미를 ”왜곡되는 구체적 삶에 대한 관심“ 정도로나 이야기할 수 있지만, “고여 있는 물 속에서 어떻게 해일같은 ‘사건’이 일어나는가”를 밝히는 것처럼 보다 “총체적인” 설명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의 잊힌 인생처럼, 쓰레기를 수집하다 보면 많은 잊힌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세계의 모든 버려진 것들은 주인의 삶 가운데서 어느 날 문득 튀어나와 그 삶의 속도와 패턴에 대해 말해주곤 한다. … 지금은 버려진 이 물건들은 사람들의 삶 안에서 매일 어떤 순간을 함께해 왔을까?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학사학위증명서, 결혼증서, 성과에 대한 상, 가족사진과 앨범, 스포츠 트로피, 아기용품, 학교 정보지 등 누군가의 다양한 과거가 불쑥 나타나 개인 혹은 가족의 역사가 펼쳐질 때 나는 때때로 당황스럽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쓰레기에서 삶의 편린이 발견될 때, 여전히 물건에 깃든 사람들이 마음이 세밀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페럴, 2013: 159; 신지은, 위의 글: 195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박재환, 1994(2010), 「일상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조명」, 『일상생활의 사회학』, 한울아카데미: 21-43.
______, 2008, 「일상생활의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일상생활의 사회학적 이해』, 도서출판 한울: 23-46.
신지은, 2014, 「셜록 홈즈의 관찰과 추리의 기술: 일상생활 사회학의 연구방법에 대하여」, 『문화와 사회』17: 165-206.
김덕영, 2002, 「국가, 문화, 사회: 공동체 유형과 사회학 이론 – 독일의 경우」, 『사회와이론』1, 한국이론사회학회: 79-125.

더 읽으면 좋을 책
페럴, 제프, 2013,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시대의 창.

1) 2015년 3월 3일 『동아일보』 기사.
2) 2015년 2월 28일 『헤럴드경제』 기사.
3) 2015년 3월 2일 『MBN』 기사.
4) “일상”과 “사건”의 관계. 사건은 일상의 개념과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건은 일상을 바탕으로 한다. 일상과 사건은 대립항이거나 상반된 것은 아니다. “사건은 일상 속에 싹 트고 있던 것(박재환, 2008: 27)”이다. 이 둘은 단순한 인과관계로 얽힌 것이 아니라 상호 교섭하고 침투하며 개인과 사회를 추동한다.
5) 1905년 10월 25일자 『황성신문』의 2면 1단 기사로, 제목은 「經濟界之危險」이다.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嗚乎라 經濟界之危險이 迫矣라 韓國之民이 迨其無噍類乎져 人生이 非禽獸라 不得不 有冬裘夏葛之被服하며 不得不 有朝飯夕飧之飮食며 不得不 有居處行動며 不得不 有疾病宴樂하야 凡日常生活上의 需用諸品을 不得不有 然後에 能保其生命니 然則 其需用諸品을 不可出自手中而用之오”(출처: http://gonews.kinds.or.kr/OLD_NEWS_IMG3/HSS/HSS19051025u00_02.pdf) : ‘미디어가온’의 고신문 검색서비스에서 “일상생활”을 검색하니 『황성신문』 3개의 기사에서 검색된다. 『한성순보』에서도 3건이 검색되지만 번역본에서 “일상생활”이 검색될 뿐, 원문에서 “일상생활”을 찾을 수 없다. 현 수준의 웹DB가 제공하는 원문들 가운데서 『황성신문』에 실린 “일상생활(日常生活)”이 가장 오래된 기사라고 볼 수 있다.
6) 그룹 N.EX.T의 「도시인」(1992)은 아마 현대 도시에서의 삶을 되묻는 노래로써,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10여년이 지난 후에 등장한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2008)나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2010)과 같은 노래 등 역시 청년층의 일상적인 삶에 대한 노래로 볼 수 있다. 현 시점에서 사실 (어느 정도 완료된 상태라 그런지) 도시화의 문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게 현실이다. 달빛요정만루홈런의 노래 다수도 필청하길.
7) L. Feurbach, L’essence eu christianisme, Paris: Maspero, 1968: 108; 박재환, 1994: 23에서 재인용.
8) 박재환은 클로드 자보의 분류에다 “일상생활에 대한 인식론적 고찰”이라는 영역을 더한다(박재환, 1994: 27-30).
9) 일상생활과 사건, 혹은 사회 구조와의 문제는 노래하는 김목인의 「씬」이란 곡의 가사에서도 고민해볼 수 있다.
“씬(Scene), 너로부터 모든 고민이 시작되지. 너를 생각하면 바로 옆 뮤지션의 연주가 아름답질 않고 질투나기 시작하지. 씬, 너에게 인정받으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지. 너는 아주 작지만 너로부터의 인정은 길가의 수많은 사람들의 인정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이니까. 씬, 그래서 너는 가끔 세상의 전부인 듯 보이지. 만일 어딜 가서 나와 비슷한 연주자가 있다면 가서 반갑게 악수를 청했을 거야. 지금처럼 못들은 척 하질 않고. 씬, 너로부터 모든 고민이 시작되지. 너는 이미 충분한 작업에 군더더길 붙이게 하지. 너만 아니었다면 좀 더 모든 게 뚜렷하게 보일 텐데. 씬, 내가 너에 대한 노래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넌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조용히 목소리를 낮춘 채, 모든 걸 음악의 문제로 돌려둔 채 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지.”
이 가사에서 씬(Scene)이란 대중음악산업에서 평론가 혹은 뮤지션들 일군의 그룹을 공간화시킨 표현이다. 비단 사람 뿐 아니라 작품과 평론 등을 포함한 것으로, 부르디외의 ‘장’(field)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독특한 개념이다.
“씬”은 “존재하지 않는 듯 조용히 목소리를 낯춘 채” “뒤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씬”은 모든 것이 “음악의 문제”라며, 굳건한 규칙을 생산하며 관장하는 존재다.
10) 전기(轉機)란 “상황이나 형세가 전환되는 기회나 시비”를 의미한다.
11) 도시민속학의 연구동향에 대해서는 박환영(2008)의 「한국의 도시민속학 연구동향」(국립민속박물관)을 참조하길 바란다.
12) 신지은의 이런 지적은 “민속은 ‘현실’이며, 당대 삶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것을 체계화 시키는 것이 민속학의 한 분야(국립민속박물관, 2008: 260-261 재인용)”라며 제기된 도시민속학과 도시민속학의 연구대상인 “주택 연구, 주거와 가계 연구, 도구 연구, 그림(영상, 필름, 삽화, 벽화, 무늬…)연구, 의상 연구, 노동 연구, 식생활 연구, 가족 연구, 민간의료, 신앙, 독자와 독서 연구, 박물관 연구” 등이 일상생활의 사회학의 연구대상과 상당부분 겹친다(신지은, 위의 글: 172; 이정재, 2005: 164-165 재인용)는 점을 근거로 한다.
13) 김명자(1982), 「송파의 세시풍속」, 『한국민속학』15, 한국민속학회.

WordPress.com 제공.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