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대전 엑스포와 재활용에 관한 한 발표에 대한 토론

2025/11/29 한국과학기술학회 금현아의 발표 “버려진 것에서 유용한 것으로: 1993 대전엑스포를 통한 재활용-인프라의 형성“에 대한 토론문

  • 얼른 책을 써야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자리였음.

발표 잘 들었습니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재활용’이라는 구체적인 물질과 기술의 관점에서 재조명한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부제’에 머물렀던 재활용 이슈를 전면으로 끌어내어, 당시 한국 사회가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는지 추적한 시도는 기술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연구가 ‘박람회’라는 특수한 공간이 어떻게 ‘인프라’라는 실제적 체계를 매개하거나 혹은 왜곡하는지, 그 기술사회학적 역학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1. 먼저 제목부터 고민해봅시다. 제목은 “버려진 것에서 유용한 것으로: 1993 대전엑스포를 통한 재활용-인프라의 형성”입니다. 제목을 보면 “대전엑스포”에서 “재활용-인프라”가 형성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실제로 그럴까요? 먼저 엑스포 ‘인프라 형성’ 과정에서 어떤 상태의 전시장이었나요?

– 독자로서 저는 이 연구의 제목을 두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대전엑스포의 특수한 역할을 조망하는 연구인가. 인프라 구축의 일반론을 구축하려는 속셈인가. 그런데 ‘엑스포’는 (물질문화의 반영과 사회적/과학적 상상이 발현되는) 거대한 ‘전시 컴플렉스’아닌지, ‘(재활용-)인프라의 형성’에 있어 엑스포는 인프라를 가시화시키는 다소 낯선 장소/계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이때 ‘재활용-인프라의 형성’이 가당한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란을 주는 제목이 아닌지요?

2. [의미]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재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수전 스트레서는 전통적인 폐기물과 유행 등에 있어서의 폐기물, 생산자에 의한 일회용품(계획적 구식화) 등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 이 한국자원재생공사, 혹은 엑스포는 어떤 변화로 이끌어졌는지, 또 이때 어떤 이들의 ‘해석적 유연성’이 개입하는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인프라스트럭쳐 연구의 Star등의 작업에 근거할 때 ‘분류 체계’의 생산 등을 제시할 수 있는지도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자원재생공사는 넝마주이-고물상에서 공적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전환의 시작점이라는 데서 부정할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3. [행위자로서의 한국자원재생공사] 6쪽에서 엑스포와 인프라 형성에 관한 고민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1980년 환경청 산하 한국자원재생공사(1980-2004, 한국환경자원공사 2004-2010)가 등장합니다. 이때 고민이 됩니다. 한국자원공사는 그럼 무얼하는 곳인가 생각해보면, 2010년 한국환경자원공사와 환경관리공단이 합쳐져 현재의 한국환경공단(2010-현재)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대개 사업장폐기물, 음식점쓰레기, 수출입폐기물, 가축분뇨, 의료폐기물, 수탁처리폐수 등의 폐기물 관련 시스템과 통계 구축, 자원순환 관련 제도(폐기물부담금, 생산자책임재활용, 분리배출표시, 자원순환보증금, 포장재재질구조평가, 재생원료 사용비율 표시, 재활용시장 관리) 등을 운영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과거 자원순환 및 폐기물 관련 제도와 정책이 지금처럼 고도화되기 전이었던 1980년대 초에는 자원재생공사가 직접 폐기물을 수집/운반/처리/처분했고, 1994년 4월부터 분리수거 도입을 통해 자치단체의 생활폐기물 청소체계가 수거하며, 재활용품은 자치단체장 책임하에 수집/운반하며, 자원재생공사가 자치구에서 재활용품을 인수(사실상 구입)하여 선별, 파쇄, 압축 등 중간처리 혹은 가공 후 배출하여 재생업체에 공급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재활용품 비축기지 등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이후 (정도로 생각되는데) 대형 폐기물 재생처리 농출폐비닐, 재생처리 농약빈병수집.재생산업자원등 정부의 환경보전사업을 하고 있으며 사업계획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 하고 있습니다. 발표로 다시 돌아와서, 이렇다면 발표자가 왜 1993년 대전 엑스포, 그리고 여기에 한국자원재생공사에 주목하는지 짐작은 됩니다. 즉, 1992년 제1회 국제 재생산업박람회 이후 1994년 분리수거 도입 이전인 대전 엑스포가 일종의 (최종)발표회 혹은 쇼케이스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아녔을까요. 어떤 행사가 진행되었는지 보다, 계획의 변천을 보고 싶어지는 대목이었습니다(8쪽).

– [인프라 연구에서의 흐름] 1993년 대전엑스포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물리적 ‘인프라’를 만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자원으로 부르고 무엇을 쓰레기로 버릴지 결정하는 ‘분류의 기준’을 전시한 사건이 아니었을까요? 발표자의 연구가 단순한 박람회 기록을 넘어, 자원재생공사라는 행위자가 어떻게 비공식적인 것을 공식적인 것으로, 더러운 것을 관리 가능한 것으로 ‘재정의’ 했는지 밝히는 ‘한국적 기술정치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4. [얽혀있는 행위자들] 그나마 주목할 만한 건, 7쪽 다양한 행위자와 각자의 ‘목적’ 간 차이 아닐까요. 그러나 유추일 뿐이라 아쉽습니다. 중앙정부(아마도 대통령/비서실 등), 상공부, 동력자원부, 환경처, 박람회 조직위 등의 생각이 어떻게 같고 다를지고 궁금해졌습니다. 조직위와 환경처의 관계는 무슨 관계일까요? 현재 상황에서는 ‘참여가 적극 권장’되었다는 것, 즉 캠페인이 전행정부적이라는 건가요? 캠페인은 효용성을 따지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계획’과 ‘현실’이 같이 등장해야 캠페인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 [어떻게 계획했고, 어떻게 수행했는가. 무엇이 혁신이며, 그건 어떤 의미인가] 폐기물처리시스템 모형도의 경우, 위생 매립 개념도 등은 당시 매립에 대한 전환 요구로 필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때 이 모형도의 의미가 뭐냐는 지적에 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속적인 것인지, 돌출적인 것인지, 혹은 의미 없는 것인지. 이후 실제 기술의 구현과 정책의 설립, 또한 사회에서의 ‘이용’ 문제 등을 고려한다면, 이 모형도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제기해야 합니다.

6. [엑스포 자체에 대한 분석을 넘어서기] 고민이 커집니다. 광고는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전시장 배치(자원활용관, 재활용온실, 재생조형관, 재활용센터 5개소, 분리수거함). 같은 맥락에서 재활용센터, 재활용온실, 재생조형관 등은 흥미롭지만, 상호간의 관계가 무언지 더 설명해내야 합니다. 즉, 전시와 일상은 무슨 관계일까요? 이것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이런 고민도 듭니다. 어릴 적 가봤던 엑스포장을 상상해보면, 무수히 많은 이들이 여러 쓰레기를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엑스포 내부에서 발생하는 ‘깨끗한 쓰레기’와 전시장에서 치워야 하는 ‘더러운 쓰레기’가 나뉘어 있지 않을까요. 전시관의 폐기 절차도 무척 궁금합니다. 이 내부에서 발생하는 선택적인 처리와 선택적인 처리/처분은 어떨까요? 

7. 자, 제목으로 돌아가서, 제가 ‘인프라의 형성’을 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엑스포 전시장 관람기를 본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여기서 발표자는 STS의 어떤 자리로 향하고 있는 건지요. 혹은 쓰레기/폐기물 연구에서 어떤 자리를 메우려고 하는 건지요? 당시 실제 도시적 차원과 달리, 즉, 실제 작동하는 인프라가 아니라 한국은 “쓰레기를 자원으로 바꿀 수 있다”는 국가 차원의 사회기술적상상을 물화시킨 무대는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사정에서 재활용 처리 제도의 세팅 과정등의 정책적 경로? 혹은 자원재생공사와 환경처 등의 제도/정책행위자? 혹은 사용? 즉 어떤 사회적 구성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보다 명료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8. 만약 이 전시가 ‘쇼케이스’가 아니라 ‘알리바이’라면요? 엑스포가 쓰레기 문제를 ‘국가’가 나서 시민의 참여와 미래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첨단/혁신/개발의 알리바이를 제공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는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공백지가 있을텐데 이를 가리는 기술적인 ‘쇼윈도우’아니었을까요? 이는 결국 도래하는 사회적, 정책적 변화를 기반하여 재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엑스포의 ‘재활용 구상’은 이후 종량제 시행(1995) 등 실제 정책으로 연착륙했습니까, 아니면 전시장이 철거됨과 동시에 사라진 ‘휘발된 미래’였습니까? 이 연구가 단순한 박람회 기록 복원을 넘어, 한국 현대사에서 기술이 사회적 위기(쓰레기 대란)를 봉합하기 위해 어떻게 동원되었는지 밝히는 ‘기술정치학적 분석’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9. [덧붙이기] 발표를 듣다 보니, 차라리 대전의 쓰레기 처리가 어떻게 계획되었는지 검토를 해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대전은 대덕군을 흡수하며 직할시가 된 지 얼마 안되었고, 충남대(1980년대 초) 이전이 완료되었고, KASIT(1989)가 들어왔으며, 둔산신도시가 개발되었습니다. 1960년대 지리적 범위가 획정되고 1970-1980년대 들어 고밀도로 변해갔던 서울의 경우 어쨌거나 난지도(-수도권매립지)라는 매립체제를 형성했다면, 급속도로 확장/성장하는 도시 대덕은, 그리고 과학기술 도시를 자부하는 사정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곧 등장 할 재활용체계와의 관계나 구즉동 매립장(1996)의 형성과의 관계는 어땠을까요? 


댓글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