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잠시, 자리를 채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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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호부터 편집위원장 대행 역할을 맡은 소준철입니다. 

지난 10년간 「걷고싶은도시」를 이끌어온 안현찬 편집위원장이 잠시간 휴직을 결정했습니다. 어쩌다가 제가 편집위원장 대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감투를 욕심냈다기보다, 편집위원장이 조금이나마 가볍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청했습니다. 다행히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편집위원은 없었고, 말 그대로 어쩌다가 편집위원장 대행이 되었습니다. 큰 변화를 시도하기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편집위원장의 역할을 대신하여 잡지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작은 실험을 고민하겠습니다.

대행 감투를 쓰고 보니, 2017년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저는 도시연대 외부 필자로 2017년 봄호 “노인과 도시” 편에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에 나온 연구노트」를 실으며 도시연대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그때만 해도 청탁받았던 글을 무사히 마무리하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그러다 편집위원 자리를 제안받았고, 2017년 여름호 “호모나이트쿠스와 도시” 편부터 참여했습니다. 그때 첫 미션은 김 모 작가의 글을 받아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는 글을 엮어 잡지모양새를 만드는 게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그해 겨울호 “중국동포와 도시”편에서는 기자가 되었고, 현장에서 받아 낸 말로 글짓기를 해 신이 났습니다. 글쓰기가 쓸모 있다고 처음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편집위원장 대행 역할로 『걷고싶은도시』 만들기에 참여합니다. 계간지 출판의 기획에서 발행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진행하는 경험을 하게 되니 『걷고싶은도시』를 새로 알아가는 기분입니다.

편집위원 활동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활기찬 2018년이었습니다. 여러 필자의 글을 엮어 잡지를 내면 되는 걸 알면서도,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이 합세해 당시 한국의 도시에 휘몰아쳤던 도시재생 바람의 현장을 둘러보고 기획했고, 글을 청탁하고,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세운상가·용산전자상가를 찾았고, 통영의 (폐)조선소와 비어버린 주거지, 군산 원도심, 서울 안암동의 ‘캠퍼스타운’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렇지만 2018년에 쓴 좌담회 기사 제목처럼 “도시재생이 뭔지 아직 모르겠어”라는 생각이 계속됐습니다. “사례 지역”이 적절한지 의심됐고, 섭외도 어려웠습니다. 편집위원장은 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본래 2년을 계획했지만, 1년을 진행한 상황에서 편집위원회는 도시재생 특집을 연속적으로 진행하겠다는 목표를 포기했고, 2019년 봄호를 내지 않고 다음 호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가 참 좋습니다. 글도 좋지만 편집위원회의 노력이 빛났던 때였습니다. 용산전자상가의 텅 빈 골목, 통영에서의 별 헤는 새벽, 군산의 더웠던 오후, 안암동에서의 바빴던 해질녘을 여전히 기억합니다. 쇠퇴한 거대도시의 회복과 대안이라는 질문 앞에 무력감을 느꼈지만, 그 어떤 때보다 현장을 자주 확인했고 우리의 기획은 항상 현장을 염두에 두면서 선언과 당위를 피하려 했습니다. 판단 중지를 외치는 과정도 수 차례의 토론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그때 저는 계간지를 만들고 기획하는 편집위원의 태도를 처음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다뤄야 하는 건, 선언과 목표의 달콤함(혹은 배신)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이라는 걸요. 당시 편집위원장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복간호 “편집장입니다”에서 유명인보다 당사자나 발언 기회가 적은 사회적 약자를 필자로 모셔 “쉽고 생생한 특집”을 기획하겠다 약속했습니다. 

저는 『걷고싶은도시』가 도시에 존재하는 여러 삶을 다루는 잡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새로운 제안이 속속 사회에 제출되는 요즈음입니다. 도시의 모습과 역할이 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건물이나 도로와 같이 도시의 물리적인 면과 신념이나 유행/취향 같은 도시의 정신적인 면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삶과 구체적이며 다양한 생존법을 말하는 잡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도시연대가 해왔던 일을 돌아보며, 도시연대에서 우리가 함께 모색할 좋은 일들을 탐색하겠습니다.

이번 호에서 편집위원회는 독자 여러분께 “당신의 녹색도시에는 어떤 생명이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기로 했습니다. 편집위원회가 열심히 의견을 공유하며 필자를 찾아낸 결과입니다. 녹색도시를 맞이하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함께 상상해보길 권합니다. 시선과 관심은 지난 호에 이어 배성호 님, 김하나 님이 다음 글을 작성해 주셨습니다. 교실과 아파트라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도시 안팎을 세심하게 살피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빌궁 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번 호 연재를 쉬어갑니다. 세종대로 16길 소식에서는 맹기돈 사무처장이 “시민기록”이라는 도시연대의 새 접근 대상을 공유합니다. 아직 방법과 도구가 마땅치 않고 선언적입니다. 그렇지만 다정함이라는 마음과 태도가 실마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근철 님과 최지 님, 안인섭 님의 소중한 연재가 계속됩니다. 언젠가 세 분의 연재를 각호에서 따로 떼어 필자별로 엮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오래도록 세 분의 글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편집위원회에 축하할 일이 생겼습니다. 앞서 밝힌 대로 안현찬 편집위원장이 1년간 휴직을 합니다. 10년을 쉬지 않고 달린 편집위원장이, 마음껏 신나게 시간을 쓰며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하고 돌아오길 바랍니다. 또 “임산부와 특집”을 기획했던 이채원 편집위원이 복키를 출산했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육아로도 지칠 텐데, ‘육퇴’ 후 학위논문 작성도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건강히 목표를 이루기를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걷고싶은도시』의 새로운 담당 간사로 정우주 활동가가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의견을 함께 내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편집위원회와 사무처, 편집위원회와 독자를 연결하는 일에도 능합니다. 앞으로 함께 만들어 나갈 일이 기대됩니다. 내년 여름 호에 편집위원장 대행에서 ‘대행’을 뗄 수 있을지, 아니면 ‘장’까지 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