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학생의 졸업논문을 위한 자문 요청. 고민의 기록으로 남겨둠.
– ACC에 대한 공격은 아니며, ACC가 무얼 어떻게 하려는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음.
– 학생들의 ‘제안’에 대한 나름의 의견일 따름.
1. 도시사회학적 관점에서 볼 때, 도시관광은 도시재생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가능하다면 그 이유와 함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시관광은 도시재생을 위한 매력적이지만 위험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공간을 손쉽게 ‘상품화’하여 자본(만)을 유치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도시공간의 관광화라고 합시다. (혹은 도시공간의 테마파크화라고도 볼 수 있고, Disneyfication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지역의 고유한 삶의 양식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칩니다. 외부인의 시선에 맞춰 전시하고, 소비하는 ‘스펙타클’로 전락시키죠. 또 테마파크처럼 도시공간과 사물의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측면이 동질화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게다가 도시재생의 성공 여부가 지역사회의 회복이 아니라, 관광객 수나 경제적 파급효과 같은 양적 지표로만 측정할 때, 도시는 시민의 삶의 터전이 아니라 ‘자본 창출’과 ‘자본 증식’을 위한 무대가 되어버리기 쉽니다. 따라서 도시관광이 재생수단이려면, ‘어떤 자본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유치할 것’이며, 자본의 논리에 따라 ‘동질화’되는 문제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2. 관광과 문화시설(예: 박물관, 문화전당 등)의 연계는 지역 정체성과 커뮤니티 재생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문화시설은 지역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며 동시에 정체성을 규정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문화시설에 무얼 담는가에 따라 광의적 의미로 사회에 대한 통제가 이뤄지기도 합니다. (너무 삐딱한가요?) 관광과 문화시설의 연계를 통해 지역 정체성과 재생을 시도하는 건 흥미로운 시도가 맞습니다. 잘 기획된 연계라면 지역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들겁니다.
그렇지만 ‘누가’ 서사의 생산자이며 소비자인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국가나 자본이 선호하는 그들에게 ‘매력적인’ 정체성을 선택적으로 선택하여 전시하면, 지역의 갈등과 상처, 소외의 경험과 기억은 의도적으로 배제되기 쉽습니다.
더 큰 문제는 문화시설이 지역 커뮤니티와 유기적이며 상호적인 관계 맺기 없이 ‘랜드마크’로서 기능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정체성을 강화하는게 아니라 타인이 ‘정체성’이라고 여기는 것을 박제하는 기관이며, 지역사회를 소외하는 결과를 가질 겁니다. 진정한 커뮤니티 재생이란 외부인이 소비하기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목소리로 다양한 기억을 공론화하고 논쟁할 수 있는 사회적인 공간을 회복할 때서야 가능합니다.
3.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은 문화관광 자원으로서 어떤 도시사회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
ACC라고 하겠습니다. 이 공간이자 문화시설은 분명 거대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광주의 민주화역사와 아시아문화를 연결하겠다는 거대 담론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그렇지만 이건 국가가 하향식으로 기획한 상징자본 아닐까요? 이 상징자본이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따져물어야 합니다. 지역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삶과 유리된 건 아닌지 물어야 합니다. 단적으로, 만약 ACC가 다른 대도시에 설치된다면, 지금과 같을까요 다를까요?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요. ACC는 그 자체만으로도 완결성이 높은 상태인 듯 보입니다. 이런 사정은 주변 지역을 자신의 배경으로 소모할 위험으로도 이어집니다. 즉,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ACC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예비 관객’, 인근 ‘시설’로 이해되지 않는지 물어야 합니다.
하고픈 말은 이렇습니다, ACC는 건물 자체의 위용이나 전시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설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이 거대한 공간이자 시설이 스스로의 경계를 허물고 지역 사회에 권한과 자원을 이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에 위치한 국가 시설’이라는 정체성이 계속하여 강하게 남을 겁니다.
4. 광주광역시의 도시재생을 위한 핵심 전략으로 ACC가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다면 그 가능성과 한계를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ACC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을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이 시설에 지역의 운명을 의존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거점 개발’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ACC는 여러 전략 중 하나여야지,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ACC는 지역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그 방법을 보다 고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는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강한 공공성과 약한 장소성/지역성을 어떻게 해소할지 방법이 필요합니다.)
어쨌거나 ACC가 재생의 촉매가 되려면, ACC를 활성화해서 주변으로 효과를 확산시킨다는 생각은 문제가 될 겁니다. 이건 철저히 공급자 중심적입니다. 필요한 건, 인근 지역, 양림동, 동명동, 넓게는 광주 곳곳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활동들이 ACC의 자원과 공간을 함께 ‘활용’하고 ‘점유’할 수 있게끔 문턱을 없애고 권한을 분산하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건 ACC와 지역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끊임없이 만나야 가능한 일일 겁니다.
5. 도시 내 특정 문화시설이나 관광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이 지역 불균형,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사회적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건 ‘우려’일까요? 저는 자본 논리에 기반한 방식의 도시재생이 가진 ‘필연적 귀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의 사이드이펙트, 뭐지요, 부작용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재생의 목표가 아니었나 의심하기도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계급적 소비를 유인하고,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키죠. 문화와 예술은 때때로 이렇게 가장 세련된 도구로 기능합니다. 여기서 임대료 폭등, 원주민과 영세상인은 자신이 일군 공간에서 그 어떤 이익(아니 보상도) 없이 폭력적으로 축출됩니다. ‘관계인구’ 논의가 아마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진짜 필요한 건 주거권과 상권 보호 같은 제도적인 장치입니다. 진짜 문제는 공간의 활력이 아닙니다. 그 활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누가 독점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6. ACC와 같은 국가주도형 문화시설이 지역 공동체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나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운영의 민주화’는 한계를 다한 것 같습니다. 권력을 분산하고 이양할 필요가 있습니다. XX참여위원회같은 형식적인 장치를 넘어, 예산과 공간, 프로그램 기획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 권한 일부가 지역사회에 위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다음으로,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방문객 수, 재정자립도 같은 경제적 지표가 아니라 지역사회 예술가 및 활동가 등과의 협업 경험,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 사용 경험, 주변 상권 연계 프로그램의 경험 등 관계성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 지표를 생산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협약에 대한 의무가 필요합니다. ACC 활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이 부동산 투기자본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지자체와 협력하여 임대료 안정화, 지역상생기금 등을 제도적으로 만들어 뒷받침해야 합니다. 시설의 역할은, 지역 생태계 전체에 책임을 지는 데서 이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7. 마지막으로, 도시사회학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지역 관광 활성화와 도시재생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방향성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조화로운 공존’이 가능할까요. 관광과 재생의 관계는 긴장과 갈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갈등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조정하는가입니다.
먼저, 관광객의 권리가 아니라 ‘주민의 권리’가 우선이라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주민의 안정적인 주거와 일상이 위협받는 관광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소비’ 중심의 관광이 아니라 ‘생산’ 중심의 관계를 생산해야 합니다. 방문객은 단순히 지역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 해결이나 문화 생산에 기여하는 통로를 만들고 참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장이 아니라 정의로운 분배, 혹은 정의로운 순환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관광 수익이 외부자본과 건물주에게만 집중되면 안됩니다. 지역사회와 지역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행위자에게 재투자되는 “공동 자산”(이랄까, common wealth)을 형성하는 구체적인 금융, 세제 정책이 필요합니다.
8. 마지막으로 덧붙이시고 싶은 견해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도시재생과 관광을 둘러싼 논의는 따져보면, ‘누가 도시의 주인이 될 것인가’라는 권력 투쟁의 문제입니다. 문화시설은 여기서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전장 중 하나입니다. 시민의 참여 뿐만 아니라 국가와 시설, 지역사회가 각자가 상상하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다투고, 시설과 그 주변은 외부자본과 건물주, 지역사회가 경제적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입니다. ACC가, 진정으로 ‘공공 자산’이 되려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적절치 않습니다. “누구에 의해 운영되고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이 새로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더 많은 예산과 화려한 기획보다, 시설이 가진 독점적 권력을 해체하고, 그 권한이 일부라도 시민에게 돌려주는 급진적인 상상력과 결단이 필요할 겁니다. 도시재생은 공간을 보기 좋은 경관을 꾸미는게 아닙니다. 공간을 둘러싼 권력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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