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에서 책이 사라지고 있다 [기획의 변]

이 글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의 기관지 <걷고싶은도시> 2023년 가을호에 실린 기획의 변입니다. 원문은 다음을 눌러 확인해주세요. 글 읽기

책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집, 사무실, 학교,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종종 책을 볼 수 있습니다. 상허 이태준은 『무서록』에서 “책은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라 적었죠. 그만큼 책은 인간이 만든 것 가운데 꽃과 같이 어여쁜 것입니다. 또 천사처럼 사람을 보호하고, 시간을 초월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잇습니다. 또 책이 만든 지식의 압도적인 군림 앞에 다른 무엇도 감히 책의 자리를 넘보기 어렵다는 뜻일 테죠. 책은 인류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켜켜이 쌓은 지식이며, 사회의 공기(公器)를 채우는 풍속이자, 모두가 속한 문화 그 자체입니다.

어떤 권력은 책을 없애려는 허무한 도전을 합니다. 책이 만들어낸 시공간, 이 시공간을 채운 지식에 대한 무모한 반감이었죠. 진나라의 이사(李斯)는 시황제에게 “옛것을 배워서 새것을 비방하는 자들을 모두 멸족”하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위험한 지식’을 없애고 시황제의 통치를 강화하겠다는 목적이었습니다. 이후, 책을 불사르는 분서와 유생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는 갱유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끔찍한 소동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최근에도 있었습니다. 2008년, 정부기관 중 하나인 국방부는 ‘금서목록’을 내놓았습니다. 사람들은 ‘필독 도서 리스트를 뽑은 건 아니냐’는 비웃음을 늘어놓았고, 서점들은 불온서적 코너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반복된 셈이죠.

2023년에도 이런 사건이 또 발생했습니다. 한 도시의 지방자치단체가 작은도서관의 문을 닫고, 공공도서관의 예산을 줄였고, 책 문화를 상징하는 거리를 없앴으며, 출판산업과 출판문화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거뒀습니다. 과거의 사상통제와 달리, 행정력의 ‘전시’와 ‘효율성’과 선출직 행정가의 ‘이익’을 고려한 결정으로 이뤄진 사건입니다. 즉, 제한된 지자체 재정을 사용할 때, 늘 적자일 수밖에 없는 책 문화보다 잘 드러나는 사업에 투여하겠다는 결정이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도서관과 책 문화가 가진 공공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임은 확실합니다. 사서였던 강민선은 <도서관의 말들>에서 이렇게 씁니다. “도서관은 단기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서가와 창고로 구성된 도서관 건물과 작은 쉼터와 같은 주변 시설, 사서, 독자는 수익을 창출하는 요소로부터 가장 멀리 있습니다. 투입에 대한 결과는 한 세대가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나타난다고 해도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투입해야 제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도서관입니다(강민선, 2019, 『도서관의 말들』, 유유: 93쪽 참조).” 도서관을 비롯한 책문화의 축소는 도시의 공공성을 해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사건들’이 이뤄지고 있는 도시는 바로 서울의 마포구입니다. 마포구는 2010년 서울시가 지정한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포구는 지금 여덟 개의 도서관, 아홉 개의 작은도서관, 사천칠백오십한 개의 출판사, 두 개의 책축제, 책거리까지 있는 명실상부한 책의 도시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마포구는 도서관과 출판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입니다. 아현동에는 식민지기 조선총독부도서관의 아현동 서고가 있었습니다. 해방 직후 도서관 부관장이었던 박봉석이 남북의 대치 상황을 뚫고 개성에 있던 고서를 되찾아 옮겨둔 곳이 마포의 아현동 서고였습니다. 이후 아현동 서고는 1957년 국립중앙도서관 아현동 분관이 됐고, 이후에는 마포도서관(현재의 마포평생학습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포구는 2004년 한국의 첫 번째 책축제인 서울와우북페스티벌이 시작된 곳입니다. 와우북페스티벌은 출판사와 작가, 독자가 함께 하는 새로운 책문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지역사회 주민들이 스스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작은도서관도 하나둘 생겨났습니다. 커다란 공공도서관에 가기 어려운 주민들이 걸어가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공공장소였습니다. 2020년에는 출판계의 다양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새로운 출판인을 지원하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도 만들어졌습니다. 마포는 사서, 편집자와 작가, 번역가와 디자이너가 함께 책을 만드는 ‘책의 산실’이었습니다.

이런 마포구에서 행정에 의해 공공의 책문화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걷고싶은도시』는 이번 특집을 통해 책이 사라지는 도시의 위험성을 말하고 시민들의 저항을 소개하며 사회적 지지를 끌어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마포중앙도서관장을 역임했던 송경진님께서 도시와 공동체에서 공공도서관의 역할, 위험과 대응을 넓게 짚는 글을 써주셨습니다. 또 공공도서관의 예산 삭감과 작은도서관의 폐관·기능전환 사태에 대응하는 느슨하지만 탄탄한 연대인 ‘마포구도서관을사랑하는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시민들에게 도서관이 왜 필요한지, 도서관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차분히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인을 양성해 온 플랫폼P의 파행적 운영에 대응하는 입주사협의회 조헌익님의 글을 통해 출판인들의 진지하고 유쾌한 저항을 소개합니다. 『걷고싶은도시』는 사건 그 자체만큼이나 공공성을 지키는 시민들의 대응과 참여를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책은 효율성과 가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사회에서 느린 결과물을 내놓는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그 가치와 쓸모는 단정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습니다. 상허 이태준이 말한 대로 “冊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冊”이기 때문입니다. 책문화와 산업이 위협받는 건, 마포만의 사정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의 한국사회가 극복해야 할 공동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번 특집은 마포구의 위험과 문제를 지적하는 것을 넘어, 위험에 처한 책문화를 보호하려는 시민의 노력을 지지하고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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