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나는 아카이브(즈)가 미워요

이 글은 정재완(2020), <북성로 글자 풍경>에 실렸습니다.

우리는 현장에서 만나는 것을 ‘레디메이드’로 생각한다. 현장에서의 쓸모를 넘어 현장을 대표하는 오브제로 이해한다. 예를 들면, 개조한 작은 도구를 보며 장인의 몸과 하나인 기술 자체로 과장해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이 이해는 기록과 수집의 기준이 되기도 하며, 아카이빙의 계기가 된다. 아카이빙의 실재와 그 결과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미있는 물건을 보관하는 일은 마치 수십 년전에 찍은 사진 한 장을 가진 것과 비슷할 것이다. 과거의 한 장면을 알려주는 ‘소중한’ 오브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이빙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로부터 그 소중한 오브제를 수집가, 전문가들이 취득하는 일로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그 문제를 하나씩 살펴보겠다. 

첫째, 아카이빙이란 실재가 사라져도 그 흔적 혹은 전체를 남길 요량으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대개는 돈과 인력의 문제 때문인지, 아카이빙이 시작되는 시점은 무언가가 사라지기 직전이거나 사라지면서 부터다. 아카이빙이란 컴퓨터 용어로 무언가를 카탈로깅해 백업하는 것을 말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목적은 꽤 거창하다. 수집가들은, “아카이브(즈)를 구축해야 후대가 현재를 이해할 수 있다”며 의미부여를 한다. 현재를 역사화하는 행위로, 이후의 역사만들기에 도움이 될 법한 것들을 저장하는 일인 셈이다. 가볍게 말하자면, 과거에 유행하던 타임캡슐 묻기 행사가 더 크고 자주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저장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반대로는 없애는 게 너무 많은 상황이다. 해방후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주거지역, 상업지역들 대개가 재개발 사업의 타겟이 됐다. 거의 예외가 없다. 이런 상황서 아카이빙은 투기적 개발에 대항해 과거를 기록하는 전사적 이미지로 보인다. 이들(사실 우리들)은 늘 말한다. 아카이브(즈)를 구축하면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후대에서 역사로 이해할 거라고. 그렇지만, 이건 오만이다. 역사는 나와 우리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역사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럼에도 아카이빙은 사라진다는 이해를 전제로 이뤄진다. (과연 투쟁의 도구일지 의심이 된다.) 수집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수집된 것들은 대개 쓸모 없는(없어질) 것들이다. 이걸 발굴하는 건 대개 수집가의 안목이다. 그이가 대상을 의미있는 오브제로 이해해야 가능하다. 예를 들어, 작은 수제 도구를 보고 장인의 손길이 길들어 있는 결과물로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 안목 역시 의심해야 한다. 이 안목은 애초에 자신이 마주한 대상이 사라질 위험에 처해있다는 걸 알기에 발동된 것이며, 수집 행위 내내 그 사라짐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아카이빙은 패배감이 만든 절박한 안목을 기초로 한다. 게다가 수집의 방법의 현실에서, 수집에 배정된 돈은 없다. 그런 경우는 본 일이 거의 없다. 돈을 주고 유물/작품을 취득하는 박물관/미술관과는 달리 아카이빙은 무상취득 혹은 주인없는 물건을 취득해 이뤄진다. 이 상황은 아카이빙이란 행위가 수집하려는 대상의 경제적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알리는 건 아닐까? 청계천에서 한 가게의 폐업 직전 도구와 시설을 수집한 일은 지독하게 씁쓸한 일이었다. 그렇게 모은 건, (1) 낡은 세계의 규범들(과 은어), (2) 장소와 쓸모를 다한 도구들, (3) “죽은 자들의 백과전서”인 인터뷰, (4) 오래된 (작은 그리고 덮개없는) 파사쥬, (5) 연결되었다 끊어진 것들, (6) 그나마 쓸모있거나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가게는 재개발로 문을 닫았다. 

셋째, 쓸모없는 것들은 현재와 대비할 때 쓸모가 생긴다. 이 일은 참혹한 결과를 낳는다. 앞서 말했듯이 아카이브(즈)란 인민의 것이 아니며, 과거를 그대로 보여준다기 보다, 수집가 혹은 전문가들의 의도에 따라 기획된다. 게다가 당사자는 과정 전반에 개입하기 어렵다. 우선 우리가 요새 아카이브즈를 통해 무얼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수집한 것들을 이어 붙여서는 전시를 하는게 보통인데, 전시의 주제는 보통 다음과 같다. 어떤 과거의 흔적(과 부활), 과거로의 (일시적) 회귀와 같은 것들이 대개이며, 사회적 의미의 전유(낡은 것을 쓸모있는 것으로)나 (말 할 수 없는 이들 혹은 말하지 않았던 이들을) “주체(로) 만들기”와 같은 결과물들은 그 주제에 비해 실질적인 영향력은 미미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아카이브즈란 그 역할이 변화를 막기보다, 변화를 드러내는데 쓰이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쓸모없는 것들을 수집하고 분류해 그 쓸모를 부여하는 장소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전후를 비교하는 데서 ‘이전’의 모습을 담당하는 도구이며, 이후의 변화를 정당화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덩달아 이러한 도구는 ‘문화시설’로서의 역할까지 담지할 수 있으니 재개발을 찬성하는 이들에게 거부감이 적은 것이기도 하다. 동시에 ‘역사화’라는 아카이브즈의 장점은 수집가들에게 ‘저항’으로 착각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 자리서 아카이빙이 동원된다. 

나는 아카이빙을 하고 있지만, 아카이빙은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집은 수집일 뿐, 운동이 아니다. 이제 해야 하는 일은 모두를 위한 ‘아카이브(즈) 구축 사업’을 따낼 고민보다, 이 현장에 뒤엉킨 온갖 욕망을 드러내는 데 필요한 나와 우리를 위한 아카이브(즈)를 구축하는 것 부터 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반대의 자산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연대해 공동의 아카이브즈를 만드는 걸 제안하며 마치고자 한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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