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기억의 반복, 취약성의 공유

2025/12/6 진실의힘, 연세대학교 비교사회문화연구소
“비상시의 아카이브: 계엄 이후, 민주주의를 다시 묻다” 발표문 중 일부

기억의 반복, 취약성의 공유

사회적 참사 경험은 어떻게 방어적 연대가 되었는가


소개

12월 3일 10시 25분 이후, 나는 두려움과 무서움에 휩싸였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공포였다. 이 연구는 원초적인 공포를 끌어 안고 이 사태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이 단일한 정치적 지향이나 조직된 이념에 의해 통합된 것이 아니었다는데 주목한다. 광장에 쏟아진 목소리들은 처절하고, 처연했다. 또 단단한 말들은 실상 위태로운 마음을 끌어안고 있었다. 

시민 각자가 겪어 낸 삶의 고통과 재난의 기억은 우리가 다른 자리에 서 있지만 동일한 위협을 감지하게 했다. 과거 참사의 기억과 계엄에 대한 공포는 서로를 재해석하며 공진화(co-evolution)했다. 세월호와 이태원에서 목격한 ‘무능한 국가’는 계엄령을 통해 ‘국민을 적대시하는 국가’로 재규정되었고, 이 새로운 인식은 다시 과거의 참사를 단순한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구조적 폭력의 반복으로 읽어내게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부정의 감각은 이 공진화 속에서 형성되었다. 나의 이 사적인 공포가 광장에서는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공포의 근원이 국가였다는 사실 또한 공유되었다. 국가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더 나아가 적대한다는 깨달음은 시민을 국가가 아닌 서로에게로 향하게 했다. 이 충격적인 ‘국가에 대한 의심’이 연대를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조건이었다. 

이 연구는 2024년 12월 3일 계엄과 2025년 4월 4일 사이의 시간 동안 벌어진 집회 속 발언에서  성수대교 붕괴 사고(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년), 세월호(2014년)와 이태원 참사(2022년),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2023년) 등의 사회적 참사의 기억을 어떻게 소환하는지 추적한다. 여기서 분석의 핵심은 이 기억들이 ‘치유’되거나 ‘해결’된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 속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으며 ‘회복되지 않는 상처’로 새겨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계엄령 선포와 내란이라는 폭력 상황에서 자신의 가장 약한 기억을 숨기지 않고 광장에서 드러냈다. 광장의 시민들은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거나 동일시해서 뭉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폭력 앞에서 무력한 서로의 ‘취약성’을 드러냈고, 목격했으며, 자신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잠재적 희생자’임을 확인했다.  참사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은 이미 체제 밖으로 내쳐진 비체였고, 광장의 시민들은 자신 역시 그 자리로 밀려날 수 있음을 감각했다. 서로 다른 고통의 자리를 더듬으며, 이들은 서로를 연결했다. 

이렇게 형성된 연대는  ‘저항’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거나 권력을 쟁취하려는 공세적 실천이라기보다 파국을 막으려는 ‘방어적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광장의 연대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부정과 거부에서 출발했다. 서로를 그대로 이해한다거나 완벽하게 통합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우발적이고도 절박한 연결이었다. 그래서 그 자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 자리는 소란스러웠고, 불협화음으로 가득 찼다. 이 연구는 이를 ‘방어적 연대(defensive solidarity)’로 개념화하며, 긍정적이고 통합적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파국을 멈추려 함께 모은 힘의 쓸모와 한계를 검토한다. 이는 이익에 기반한 연대나 정체성의 정치와는 다른, 유약하고 위태로움을 드러낸 이들이 불협화음 속에서 구축한 처절한 ‘생존의 방어선’이었다.


하고 싶은 말

2025년 4월 광장은 ‘승리’를 외쳤다. 나는 시민들의 발언을 하나씩 살피며 시민들의 동력이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공세적인 욕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은 국가가 나도 죽일 수 있겠다는 공포와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서로의 팔짱을 꼈고, 광장에 나섰다. 역설적이게도, 승리를 목표로 하지 않고, 서로의 생명을 지키려고 했던 이 처절한 ‘방어적 연대’가 내란이란 거대한 국가 폭력을 모력화시킨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이들은 승리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지켰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광장의 불빛은 사그라들었고 우리는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록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 ‘졸업’의 가사가 자꾸 떠오른다. 이 노래 가사는 파국을 통과한 시민들이 서로에게 건넸던 가장 간절한 약속처럼 들린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 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여기서 이 “미친 세상”은 세월호와 이태원을 거쳐 12.3 비상계엄에 이르기까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방기하고 위협해 온 ‘구조적 폭력’의 반복은 아닐까 싶다. 시민들이 목격한 국가는 ‘통제불가능’했고 우리의 일상을 무너트릴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 공포 앞에서 흩어지는 대신,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라고 서로의 안녕을 빌었다. 이는 막연한 축복이 아니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는 상황에서,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존엄한 삶을 이어가가자는 바람이자 돌봄의 선언이다. 이는 나의 안전이 타인의 안전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특히, 서로를 ‘잠재적 희생자’가 아닌 ‘생존의 동료’로 다시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널 잊지 않을게’라는 다짐은 방어적 연대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제다. 기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와 공진화한다.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 이태원의 보라색 리본과 만나고, 다시 내란 저지의 촛불로 이어졌듯이,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잊지 않음으로써 국가가 강요하는 망각과 고립에 저항했다. 

광장의 촛불은 꺼질 수 있지만, 우리가 확인한 ‘취약성의 공유’는 일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내란을 예고했던 구조적인 폭력, 특히, 차별과 혐오, 안전의 외주화 등은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일상의 계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방어선 역시 일상회되어야 한다. 그동안 이들에게 ‘광장 밖의 일상’은 잊혀짐을 강요받거나 혐오의 시선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또 다른 고립의 현장이었다. 그러나 광장에서 확인한 ‘서로의 곁을 지키는 감각’이 일상으로 스며든다면, 피해자유가족은 더 이상 ‘불쌍한 피해자’라거나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을 함께 지탱하는 시민으로서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12.3 계엄 이후, 광장의 열기를 박제하고 기념하는 일은 섵부르다. 전국 곳곳에 만들어진 광장, 그 광장에서 핫팩과 먹을거리를 나누며 확인했던 그 ‘돌봄의 감각’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제는 이 감각을 비정규직 노동 현장,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 현장, 그리고 피해자·유가족이 숨 쉬는 일상의 공간으로 가져가야 한다. 피해자·유가족이 외롭게 싸우지 않게끔 직장과 학교, 동네에서 작은 방어선을 구축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구체적인 ‘뒷배’가 되어주는 새로운 시민성(Citizenship)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반복될지 모를 또 다른 파국 앞에서 우리를 다시 살게 할 것이다. 우리는 “ 이 미친 세상”을 당장 바꿀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디에 있더라도” 서로를 잊지 않고 곁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취약한 존재들이 혼자 힘들어 하게, 혼자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