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파트 재건축과 나무의 운명

이 글은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의 기관지 <걷고싶은도시> 2023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은 다음을 눌러 확인해주세요. 글 읽기


이성민 개포동 그곳, 소준철 걷고싶은도시 편집위원


● ‘개포동 그곳’의 시작

소준철(이하 소): 안녕하세요, 이성민 작가님. ‘개포동 그곳’으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어쩌다 시작하게 된 거에요?

이성민(이하 이): 안녕하세요. 저는 ‘개포동 그곳’이라는 이름으로 재건축을 앞둔 개포주공아파트 1단지(이하 개포주공)에서 사라지게 될 공간과 나무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여기 개포주공아파트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러니까 어른이 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에요. 학창시절부터 이곳도 언젠가는 재건축이 되겠거니 생각했었죠. 어른이 되고나서 언젠가는 한번 찾아가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소: 그러면 언제 어떻게 개포주공아파트에 돌아오게 됐나요?

이: 2014년이었어요. 우연히 동네를 찾게 됐어요. 그날 아파트를 쭉 둘러보았죠. 동네를 거니는 시간 내내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어요. 기억과 다를 바 없는 풍경,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동네 어른들을 만났어요. 그날의 경험에서 위안을 느꼈어요. 그 뒤로 자주 찾아가 동네를 기록하게 됐죠.

소: 다시 찾은 동네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이: 동네를 산책하며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아파트보다 높이 자란 나무들이었어요. 제가 어릴 때도 보았던 그 나무들이 여전히 있었죠. 자리는 그대로지만, 나무들은 제각각의 개성을 지닌 채 ‘잘 자라난 모습’이었어요. 내가 어른으로 자란 것처럼 나무도 자라고 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재건축을 앞둔 상황서 사람들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지만, 40년 이상 이곳에서 자란 나무들은 대개 폐목 처리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안타까웠어요.

소: 기록은 어떤 방법으로 시작했어요?

이: 단지 안의 나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게 됐어요. 초반에는 카카오스토리에 올렸죠.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댓글을 달아줬어요. 사진에 아파트가 몇 동인지 보이지 않았는데도, 나무와 벤치를 보고는 사진 속 장소가 어딘지 단번에 알아채는 이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아파트, 나무, 벤치에서 겪었던 일과 느낌을 남겼어요. 제 계정에는 아파트와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그때 느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를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모두 단지 안의 나무가 사라지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구나.” 그래서 재건축이 되기 전에 사람들과 함께 동네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의 시작인데요, 사람들을 다시 여기 개포주공 아파트로 오게끔 이끌고, 그들에게 새겨진 공간과 나무에 대한 기억을 모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소: 첫 번째 프로그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세요!

이: 2017년 7월부터 2018년 9월 이주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진행했어요. 온라인으로 신청서를 받아 프로그램 진행했는데요. 두 개의 프로그램이었어요. 하나는 ‘개포동 나무산책’, 다른 하나는 ‘개포동 기억산책’이었죠. ‘개포동 나무산책’은 2017년 7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사람들과 열 번을 만나 함께 걸었어요. 사람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사라질지 모르는 나무를 함께 기억하고, 각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프로그램이었죠. 또 나무에 이름을 붙이는 ‘나무의 이름’ 캠페인도 준비했어요. ‘개포동 기억산책’도 같은 기간 동안 진행했는데, ‘나무산책’보다 열 번을 더한 스무 번을 만나 진행했죠. 방법은 단순하지만 뭉클했어요. 참여자가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에 가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었죠. 사진을 찍고, 참여자와 그곳과 기억에 관한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를 모았죠.

● ‘개포동 그곳’의 활동

소: ‘개포동 나무산책’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이: 참여자들이 온라인으로 신청을 합니다. 이때 참여자들이 가고 싶은 곳을 적는데요. 저는 참여자들이 원하는 곳을 고려해 산책 지도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참가자들과 그곳에 찾아가요. 참여자들은 자신이 가고 싶었던 장소가 희미하게나마 보이기 시작하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 봇물을 터트립니다. 그곳에 무엇이 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졌고,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체가 치유 그 자체였어요. 참여자들이 자신만의 장소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장소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본인들이 살면서 자주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나무를 의식하게 되고, 나무에 얽힌 추억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나무산책’과 함께 ‘나무의 이름’ 캠페인도 진행했어요. 참여자들이 나무가 있던 곳을 기록하고, 나무의 모습을 그리고, 나무의 흔적을 붙이고, 나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어요. 산책이 끝나고 서로가 지은 ‘나무의 이름’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나무에 얽힌 내 추억을 꺼내게 되더라고요. 은행나무에 올라가서 은행을 털었던 기억, 키우던 병아리나 햄스터가 죽자 그들을 묻었던 나무, 내 방 창문에서 손을 뻗으면 닿았던 나무 등. 우리가 매일 걷던 길, 누군가를 만났고 기다렸고 떠나보냈던 길마다 나무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나무는 공기 같았어요. 늘 우리 곁에 있었지만 평소에는 알지 못 했죠. ‘개포동 나무 산책’은 제게(또 참가자분들에게도) 우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나무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계기였어요.

개포주공아파트의 변화와 나무의 운명

소: ‘재건축’이라는 변화는 언제 시작됐나요? 혹시 나무는 어떻게 됐나요?

이: ‘나무산책’과 ‘기억산책’은 주민들의 이주 기간 막바지에야 끝났어요. 공사 직전, 모든 주민이 이주를 하게 되는데요, 이주 기간의 마지막 날짜가 2018년 9월 30일이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은 2019년 초부터 나무들은 베어졌어요. 그해 12월까지 나무 벌목이 진행됐구요. 나무 벌목이 끝난 2020년 초부터 건물 철거를 시작하더라구요.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소: 공사 전까지 개포주공에 나무가 얼마큼 있었는지 파악되셨나요?

이: 개포주공은 이름 그대로 한국주택공사가 1981년에 지은 아파트인데요, 1984년 한국주택공사가 작성한 ‘단지별 식재현황도’에는 약 39개 수종으로 구성된 (최소) 6만 그루 이상의 나무가 식재된 걸로 조사됐어요. 게다가 나무들도 주민들과 40여 년을 이곳에서 보냈는데요, 그 과정서 자연 발아된 나무까지 고려하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늘었으리라 생각해봐요. ‘나무산책’ 프로그램 중에 숲해설가분들, 우종영 나무의사 선생님과 함께 개포주공을 산책한 적이 있어요. 그분들이 말하시길, 단지 안에 자연 발아된 나무들이 많이 보인다고 하셨거든요. 게다가 새들이 대모산과 구룡산에 찾아갔다 개포주공으로 씨앗을 물고 돌아왔던 모양이에요. 그 씨앗이 단지 곳곳에 펴졌는데요, 놀이터에 버드나무가 열리기도 했고,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개암나무나 붉나무가 단지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어요. 또 첫 식재 수종에 포함된 적 없는 뽕나무, 갈참나무, 살구나무 같은 것들도 단지 곳곳에 있었어요. 새나 바람을 따라 씨앗이 날아 온 결과이거나 주민들이 심었던 결과로 예상된대요. 재건축을 앞둔 시기, 나무들이 생각나요. 재건축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라 관리사무소에서 별다른 조경 관리를 안 한 상태였는데요. 관리할 때보다도 오히려 나무들이 개성 있게 쑥쑥 더 잘 자랐다 싶었어요. 주민이 이주해 나가는 동안에는 나무들이 더 생기가 돌았어요. 이주 막바지 시기에는 아파트 안에 나무가 있다기보다 수목원 안에 아파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공사 직전 환경영향평가와 ‘식물 보호’?

소: 작가님께서 재건축 과정에서 나무가 ‘파악’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설명을 듣고 찾아보니, 재건축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하고, 그 평가 요소 중 하나로 ‘비오톱지도’(도시생태현황지도)를 생산하고, 여기서 ‘동식물의 현황과 존치 계획’을 작성하게 되어 있더라구요. 형식적으로는 나무를 비롯한 ‘동식물’의 ‘보호계획’이 세워지게끔 되어 있고, 실제로 세우게 되는 걸로 보이는데요. 개포주공에서 이뤄진 환경영향평가는 동식물, 특히 나무를 보호하는 방향이었나요?

이: 환경영향평가를 담당하는 분들에게 연락을 취해보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저 역시 이 조사가 타당하게 이뤄졌는지 궁금한 상황이에요. 이런 답답한 사정에서 제가 확인했던 건, 환경영향평가를 작성할 때 주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환경영향평가 작성 과정에서 의견을 수렴하는 기간이 공식적으로 존재하는데요, 제가 물었던 분들 가운데 그 사실조차 아는 분이 거의 없었어요. 애초에 주민의견 수렴기간이 있다는 걸 대부분 모르고 있더군요.

소: 환경영향평가에 의해 얼마큼의 나무가 존치되었을까요?

이: 환경영향평가서와 관련 자료를 열람했어요. 서울시 환경정책과가 조합측에게 보낸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한 검토의견에는 “240주를 식재할 계획이므로 조합 측에 가이식 수목 관리계획 등을 제시 바람”이라고 적혀 있었고, “반영!”되었다고도 적혀 있었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조사하여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그 방식과 절차는 알 수가 없어요. 앞의 240주라는 숫자도, 어떤 나무가 무엇을 기준으로 ‘선별’되었는지는 여전히 궁금합니다.

소: 가식장에 가본 적이 있으세요?

이: 단지 내부의 일부를 가식장으로 정해뒀더라구요. 그곳에 심겨진 나무를 보았는데 대부분 작은 나무였습니다. (조심스러운 추측입니다만, 아무래도 이식이 가능한 크기의 나무들이었을 겁니다.) 이 나무들이라도 보존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동시에 무척 속상하기도 했어요. 가식장의 자리는 원래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 온 자리였거든요. 거목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가식장을 만들었어요. 가식장을 만들기 위해 그 나무들을 모두 베어냈다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게다가 공사현장 내부에 가식장이 있기 때문에 공사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로 나무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지, 가식장의 관리 주체들이 보호대책을 잘 수립하고 있는지, 관리는 잘 이뤄졌는지 궁금하고 걱정이 됩니다만 여태껏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환경영향평가에 기록된 내용들이 잘 반영되었는지, 추후에라도 확인하는 절차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공원’을 만들어보자

소: 재건축 과정에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급히 돌아가는 공사장에서 ‘보존’이 가능할까요?

이: 제가 아파트의 ‘나무’를 살피며, 여기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을 더듬었던 건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어요. 우리가 ‘사라지는 것’들에 익숙해진 건 아닌지. 우리와 (말 그대로) 함께 자란 나무와 사람들의 추억어린 장소를 너무나도 쉽게 뽑고 허물어트리는 건 아닌지. 이처럼 쉽게 없애는 일이 우리 모두의 삶에 괜찮은 건지. 다른 이들은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프로젝트 내내 끊임없이 질문할 거리가 생겼어요. 제가 혼자 프로젝트를 꾸릴 때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걸 제 할 일이라 여겼어요. 그러다가 환경영향평가서 안에서 추후 지어질 아파트의 ‘공원예정지’를 알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지금의 나무들로 공원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나무를 보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의견을 모았고, 온라인으로 서명을 받아 강남구청과 조합에 전달했습니다. 이 결과, 지금 있는 나무 100여 그루를 공원예정부지로 이식해 보존하자는 목적의 협의 창구가 열렸습니다.

소: 굉장한 ‘시작’입니다. 협의는 잘 마무리되었나요?

이: 공원예정지는 공사 전에도 단지 중심부에 있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등하교를 했고, 출퇴근을 했던 길이에요. 모두가 거쳐가는 길이었죠. 근처에 개원초등학교, 테니스장과 농구장이 인접한 공터가 있었고, 작은 산책로가 있어 누구나 쉬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공원이 들어선다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됐어요. 더구나 관계 부처에서도 ‘나무 보존을 검토하자’는데 동의했으니까요. 그 시점에는 숲길의 경계에서 멀찍이 떨어진 나무들은 이미 베어졌고, 숲길 인근에는 22그루의 나무가 남아있었습니다. 협의가 시작되면서 새로 지어질 아파트의 구획 설계에서 (과거부터 이어지는) 숲길이 공존할 수 있을 지부터 파악했고, 그 기간 동안은 추가 벌목을 중단했어요. 최종적으로 이뤄진 경계측량의 결과는 존치가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숲길 정중앙에 도로가 놓여야 한다고 했어요. 공원예정지와 숲길이 아닌 다른 보존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시기적으로 절차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왜 보존보다 벌목이 우선시될까?

소: 보존되지 나무들은 모두 벌목이 되는 건가요? 벌목 과정에 대해 알고 계신 게 있나요?

이: 정확히 알고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만, 별도의 고지가 이뤄지는 것 같진 않습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건물이 무너트리고, 나무를 베어내는 게 으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벌목은 지정된 업체가 담당하고 있더군요. 벌목된 나무들이 ‘폐기’될지, 목재소로 갈지는 내부의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대개는 업체와 조합이 협의해 진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 벌목이 으레 당연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입장서 나무의 ‘재이주’가 어려운 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잘 아실법한 이식 비용의 문제가 우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식을 하더라도 나무의 생존이 어려운 물리적 조건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80년대 지어진 개포주공과 최근 아파트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개포주공의 경우, 지하주차장이 없어서 동 간격이 넓고, 나무가 뿌리를 땅속 깊이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나무가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최근의 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필수적인데요, 나무들은 이 지하주차장 때문에 뿌리를 깊이 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거목을 재이식한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기존의 나무들, 특히 거목들은 그 자리 그대로 보존하며 재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재건축 과정에서 이런 가능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데요, 이건 공사를 추진하는 주체의 의지와 동네 사람들의 관심이 관심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마지막 스물두 그루의 나무의 새 운명

소: 맞아요, ‘의지’(와 ‘관심’)의 부족을 환기시키고자 서울숲에서 ‘전시’를 진행하셨죠. 전시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소개해주시겠어요.

이: 앞서 나무를 존치시키려 했던 작은 숲길을 기억하시죠. 협의 과정 동안 벌목되지 않았던 스물두 그루의 나무도요. 그 나무들의 존치가 어렵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저와 주민들은 ‘베어질’ 스물두 그루의 나무를 기념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결국 나무들은 베어졌죠. 벌목업체 사장님이 제게 나무가 어디로 갈지 귀띔해주셨어요. 그래서 나무의 행방을 쫓았죠. 베어진 나무들은 목재소로 이동했어요. 나무들은 제재되어 통나무가 됐고, 목재소 한 구석에 쌓여있었어요. 목재소 주인에게 이 나무들의 추후 행방을 물었는데, 주문이 들어오기 전까지 나무들은 여기에 이 상태로 있을 거라고 답했어요. 저는 이전에 나무 이식에 관해 자문을 구했던 서울 그린 트러스트에 연락을 했습니다. 통나무가 된 상태로라도, 이 나무들을 기념할 수 있을지 의견을 물었죠. 서울 그린 트러스트가 성수동 서울숲 공원에 ‘겨울 정원’을 꾸미는 중인데, 이 나무들로 통나무 벤치와 곤충호텔을 만들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렇게 통나무가 된 나무들은 겨울 정원에 놓이게 됐어요. 저는 다시 단지로 돌아갔어요. 베어진 나무의 그루터기(밑동과 그루터기)를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벌목업체 사장님의 도움으로 한 그루의 그루터기를 캐내어 남양주의 공터로 옮겼어요. 2020년 10월쯤, 서울 그린 트러스트에서 제게 ‘개포동 그곳’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전시를 제안했는데요, 저는 서울 그린 트러스트에 이 전시에 ‘살아남은 그루터기’가 포함되길 바란다고 부탁드렸어요. 그렇게 그루터기가 남양주에서 서울숲 공원으로 옮겨졌고, 겨울 정원 부근에서 미리 와있던 나무들과 함께 전시할 수 있었어요. 저는 이 전시가 개포동의 작업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전하길 바랐어요. 이 나무들은 ‘그곳에 존재했던 나무’라는 걸 알리고 싶었거든요. 나무들이 그냥 베어지고만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으로 가능한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으며, 어쩌면 계속 살아갈 수도 있었음을 알길 바랐어요. 마지막까지 살아있었던 나무 스물두 그루를 기념하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무’가 아니라 분명히 ‘그곳에 존재했던 나무’가 모두의 노력으로 여기 이 모습으로 있다는 걸 알아주길 원했죠. 또 개포주공에서 구해 낸 ‘그루터기’를 통해 얼마나 크고 오래된 나무들이 그곳에 있었는지를, 개포주공에서 생을 다하지 못한 채 사라진 수만 그루의 나무를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소: 전시는 끝났잖아요. 그 그루터기는 이제 어디에 있나요.

이: 전시가 끝난 뒤, 그루터기를 어디에 보관할지 결정되지 않았어요. 서울 그린 트러스트에서 서울 숲 공원에 그대로 계속 보존하자는 제안을 주셨어요. 그 제안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했습니다. 지금은 ‘겨울 정원’ 바로 앞 한 편에 ‘겨울 정원 2’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개포동 그루터기가 보존되어 있어요. 또 주민들이 지어준 나무 스물두 그루의 ‘이름’이 적힌 판넬이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나무와 도시, 나무와 나

소: 작가님께서 재건축 과정에서 나무가 보존될 수 있게끔 하는 ‘서울특별시 도시 및 주거 환경 정비 조례’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의견은 여전한가요.

이: 한 그루의 나무는 많은 생명이 살게 합니다.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면 나무와 더불어 사는 생명들까지도 사라지게 된다는 걸 모두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아파트는 ‘경제적 가치’로만 이해됐어요. 그렇지만 이제는 다른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해야 할 것 같아요. 건물과 돈과 사람에게만 기울였던 관심이 나무와 다른 생명으로도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새로 지어진 (다른) 아파트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마음이 아팠어요. 끈으로 나무와 나무를 묶었더라고요. 나무들이 자라날 방향을 제한하고, 건물보다 높이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죠. 우종영 나무의사 선생님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요즘 도시에서 땅을 다 파헤치고 고층빌딩을 올리는데요, 그곳은 나무가 다시는 살 수 없는 공간이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개포주공의 경우는 나무가 땅에 연결되어 자라날 수 있었지만, 고층빌딩이 들어선 자리의 나무는 인공지반 위에 얹어놓은 상태라 지속가능하지 않다고요. 이제 도시에서 나무들은 자유롭게 자랄 수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자기가 살던 터전을 떠나 이식해 온 (살아남은) 나무들은 아픔을 겪으며 링거를 맞고는 하죠. 이제 나무들은 ‘이식’보다 ‘그 자리 그대로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커지면 좋겠습니다. 재건축을 하거나 도시계획 단계에서 (이미 심겨진) 나무들의 공간을 공원으로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논의를 위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하는 자리가 있는 것도 좋겠습니다. 왜냐면 재건축을 위해 만들어진 조합과 건설사가 나무 보존 계획을 일방적으로 결정해 제출하기보다, 나무의 보존을 고민하는 전문가들이 함께 계획을 수립하길 바라기 때문이죠. 앞으로는 우리 사회서 나무를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성을 지닌 존재로 여길 수 있길 바랍니다. 이러한 고민과 과정이 다음의 관련 조례 개정에 반영되면 좋겠어요.

소: ‘개포동 그곳’의 활동은 작가님께 어떤 계기가 되었는지 이야기 해주길 부탁드려요.

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동네를 기록하기 위해서였어요. 활동이 이어지며 사람들을 만나면서 방향이 생겼고, 나무를 보존할 수 있는 방안까지 모색해볼 수 있었습니다. 의문으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가능성을 발견해 시도할 수 있었고, 이제는 그 가능성을 알리며 제안하는 일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개포동 그곳’의 경험은 제 삶에 있어 무척 중요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소: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어떤 작업을 시도할 계획인가요?

이: ‘나무 보존’을 위해 ‘기억을 공유’하는 경험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애초에 시도했던 기록은 기억하는 방법 중 하나이죠. 중요한 건, ‘기억’같아요. 기억은 다가올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 위해 기억을 공유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그래야 그동안 외면했거나 무관심했던 관계를 찾아내고, 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또 예상치 못한 어떤 길의 시작을 갖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가올 날을 살기 위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록을 통해 생겨난 일들이 제게 기억해야 할 일들을 만들어줬어요. 프로젝트를 마치며 마음속에 ‘눈’ 하나를 간직한 기분이 듭니다. 그 ‘눈’이 개포동에서는 꽃피우진 못했지만 앞으로 다른 곳에서는 잘 자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또 저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다큐멘터리 영화와 책으로 제작해 소개하려 합니다. 저와 개포동 주민들의 경험을 통해 나무보존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재확인하고, ‘나무’의 보존에 대한 고민이 널리 알려지게끔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