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11월 26일 한국문화연구학회 2022년 가을 정기학술대회 “리콜! 문화연구 -한국 문화연구에서 지식의 문제”의 “1부 문화연구에 있어서 분과 구분과 혼종성의 의미”에서 발표한 부족한 내용입니다.
사회학 분야의 교과서는 문화연구(혹은 문화사회학)에 있어 ‘문화’를 연구하는 일을 “사회와 관련한 문화를 이론화하는 것”이라거나 “사회적 총체성을 생각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J는 이 말이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사회학 전공자로서 ‘사회’를 이론화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신의 작업 역시 “연구의 정향성, 방법론, 대상이 되는 테제, 도입한 이론” 등을 고려하며 (전지구적인 차원, 한국 혹은 특정 도시 차원에서의) “맥락”을 그려내는 작업이라는 데서는 동의한다(원용진, 2004 참조). 그러나 한국에서 이뤄진 “문화생산의 조건, 문화 생산관계, 문화생산의 수단, 문화생산력” 등에 대한 분석 수준에서 “이데올로기, 권력, 담론, 욕망 등의 불균등성과 모순, 갈등”을 다루며, 이런 “테제(들로) … 주체, 헤게모니, 시민사회, 일상, 섹슈얼리티, 대중문화, 문화산업, 공공영역” 등의 분석대상“을 삼아내는 사정과 친연성이 있지만(원용진, 2004 참조), 스스로를 동일하다거나 그 안에 속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J는 ‘문화’라는 렌즈를 통해 ‘테제’와 ‘대상’을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 최인훈, 1960, 「광장 – 서문」, 『새벽』 .
여기에서 참조할 만한 구분이 하나 있다[아래 인용 참조]. “풍문”과 “현장”이라는 분류다. 최인훈은 남쪽의 자유주의와 북쪽의 공산주의 사이가 만든 한국전쟁의 인과율이 아닌 두 이념이 만든 희생과 이를 둘러 본 이의 ‘멈칫거림’을 드러냈다. 이런 태도가 인과율의 파악과 실존의 사정(처지)을 ‘풍문’과 ‘현장’으로 나눈다. 이 두 구분은 서구 인문사회과학을 추동시켰던 헤겔주의의 문명과 역사의 정당성을 따져대는 일과 (어설프고 하찮을) 사람의 실존과 맨얼굴을 포착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서호철, 2013 참조).
우리가 가진 문화의 속성을 따지는 연구 작업은 무척 중요하다. 문화연구는 “이데올로기”, “권력”, “욕망”은 각기 (개인/집단/사회적 차원에서) “주체/수용/정책-산업, 습속/담론/훈육-식민성, 저항-탈주/집단형성/욕망의 조건-공공성의 부재”를 파악하는 다양한 연장을 담은 ‘연장통’이다.
그러나 문화라는 개념적 그물에 사람의 민낯은 잘 걸리지 않는다. 아마도 그물구멍에 비해 그 크기가 작아 그물을 빠져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J는 자꾸 ‘멈칫거린다.’ 다양한 경우, 사회적 차원이 ‘근대국가의 정책’ 혹은 ‘산업’으로 환원되는 데 대한 불안함 때문이다. 또 (어설픈 수준의 체감이지만) ‘대안적 정책’과 ‘대안 문화(산업)’이라는 1990년대와 2000년대 꿈의 빛이 바래가는 과정을 ‘구경’했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에서 J는 과연 자신이 상대하는 건 무엇인가, 아니 무엇을 상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차라리 ‘풍속’을 상대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을 전연 알지 못 한다. 그런 점에서 홉스봄의 말마따나 정치사와 경제사의 잔여범주 쯤 되는 사회사가 매력적이었다. 더구나 사회사가 자리잡게 된 계기이기도 한 뤼시앙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흐와 같은 아날학파가 논하는 ‘일상생활’과 ‘일상성’을 따져 묻는 게 좋았다. (어째선지 훗날 이어지는 파슨스류의 구조기능주의 체제 아래서 만들어진 ‘역사사회학’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여기서 “우연성을 지닌 사건들이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 경로가 무언지를 따지는 게 흥미로웠다. 여기서 문화연구와의 친연성이 존재한다. 문화는 사회적 사건이나 행위, 제도를 이해가능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문맥(context)이며, 따라서 이 문화는 깊이 있게 서술(thick description)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차이는 ‘개념’의 강도와 ‘방법’이었다. 연구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았다. 개념을 통해 타당한 방향을 설정하며, 적절한 방법으로 신뢰를 높여야 했다. 개념이 과한 경우 타당해 보이지만 신뢰하기 어려웠고, 방법이 과한 경우 신뢰할 수 있어 보였지만 타당한 이야기인지 헷갈렸다.
그래도 우선 익힌 건 (지도교수의 권유에 따라) 방법을 아는 것이었다. J는 지도교수가 조곤조곤 일러주는 풍문과 현장 가운데서 현장에, 특히 현장에 찾아가기 위한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 즐거웠다. 예를 들면, 혼란스럽기는 하나 근대국가와 시민, 혹은 자본과 개인이라는 차원을 염두에 두지만, 그 둘만의 관계성만을 살피는 건 아니었다.
예컨대, 로버트 단턴이 1968년 “책의 문화사”를 끄집어내며 제시했던 “Communication Circuit”에 관심을 가졌다. “작가-출판사-인쇄/제본업자(지류, 잉크 등의 공급자)-유통업자-판매업자-독자/도서관”으로 연결된 순환구조, 이 순환성이 “지적 영향력-관심”, “경제적-사회적 국면”, “정치-법적 검열” 등과 같은 조건에 따라 어떤 변화가 존재하는지 따지는 연습을 했다. 복잡했지만, 한 현상에 얽힌 행위자를 구별하고, 행위자 간의 관계가 단선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점에서는 ‘지식’을 다채롭게 펼쳐 낼 노하우를 익히는데 있었다. 각 행위자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선, 다양한 자료를 찾는 법과 읽는 법을 익혀야 했다. 과정은 이렇다. 1) 한국과 한국 바깥의 아카이브즈와 데이터베이스를 찾아보고, 각각의 특징을 정리하고, 어떻게 검색할 것인가. 2) 자료(사료)를 읽는 능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2-1) 문자를 ‘읽는’ 능력과 함께 2-2) 책과 잡지의 판권장을 들춰 출판사와 인쇄소의 사정을 상상했고, 2-3) 판(版)마다 달라진 지점을 확인하며 작가와 편집자의 고민이 무엇인지 상상했다. 2-4) 지질(紙質)을 따지며 시대의 종이사정을 돌아보며, 2-5) 검열의 흔적을 찾아 (국가와 이를 대리한) 검열자의 딱한 입장을 찾으며, 2-6) 책과 잡지의 광고를 보며 독자들의 관심과 무관심의 이유를 고민했다. (돌아보면 J가 학교 기숙사에 처박혀 했던 짓은 오래된 골동품점포에 처박혀 골동품을 여기 저기 돌려보고 들어보는 것 정도의 일이었다.) 그 의미를 확실히 알게 된 구절 하나가 있다. 문학계에서 유명한 말로 “줄거리와 작품은 무관하다”는 것이다. 줄거리의 요약, 혹은 줄거리의 이해와 (훼손과 수정없는 자체로서의) 작품 분석이 다르다는 말이다. 누군가 쪼개고 요약한 것을 읽는다고, 전체를 이해하는데 나아질 리 만무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자료를 구해 읽고 정리하는 게 연구의 시작이 됐다.
‘자료’만 읽는 일은 ‘소재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경고가 가득했다. J도 동의했다. 풍문, 이론과 개념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자료부터/자료만 뒤지는 습성은 ‘보고서’를 쓰기에는 긍정적이었지만, ‘연구’를 하기엔 부정적인 것이기도 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우연찮게 앙리 르페브르의 『도시에 대한 권리』를 읽었다. 국가와 시민, 자본과 개인이라는 정형화된 구도 사이를 비틀 자리를 슬쩍 엿보았다. 이는 석사과정에서 죽어라 읽은『뿌리깊은 나무』의 자리와도 유사했다. 국가 혹은 자본이 만든 추상공간의 헤게모니와 이에 대항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구도 사이에서 이뤄지는 “저항”과 “공간”, “지향”으로서의 도시를 살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베버가 중세도시를 말한 것처럼 도시를 하나의 “시장”으로 이해하겠다는 고민과 푸코가 논한 통치성을 가능케 하는 통치기술에 의해 “배치(assemble)”에 대한 고민이 더해졌다. 도시는 (국가-시민, 자본-개인이라는 이분법을 넘어) 사람과 동물과 똥, 돈과 사물과 쓰레기, 관념과 정책과 기술이 역동적이면서도 불안정하게 흐르고 연결되고 교차되며, 단절도 되는 곳이라고 (어설피) 여겼다.
그러면서 J는 몇몇 가지 설정을 더했다. 우선 도시빈민과 배치의 문제였다. 항공사진을 촬영해 무허가주택지의 사람들을 배치/소거하는 과정을 통해 국가가 사람을 어떻게 정보화하는지, 토지/주택의 소유로 인한 자본화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언지, 쫓겨난 도시빈민의 이동을 통해 사람들의 저항이 어땠는지 정리하고 있다. 부산시 북구에서 이뤄진 도시 외곽 산업단지개발로 인한 환경위해업소의 이전 과정, 연이은 교도소, 정신병원, 부랑인수용소와 같은 혐오시설의 배치 등은 도시의 개발이 만든 이면을 드러낸다.
이어진 고민은 ‘이익’이었다. 누가 어떻게 이익을 만드는가, 도시라는 시장에서 무엇과 무엇이 연결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자활’이라는 명분을 통해 (악마화된) ‘형제복지원’이 어떤 사회시설로 기능했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폈다. 부랑인수용소는 부랑인을 우범자이자 비문명인으로 여겨 ‘교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더 나아가 이 교화의 자리는 이익을 공유하는 자리이다. 부산의 형제복지원은 수용자의 교육을 형식적인 목표로 삼고, 교육이 가능한 사업체를 일부 입주시키거나 공정 위탁을 했다. 지역 내 사업체들은 수용자를 값싼 인건비로 사용했고, 형제복지원은 수용자들의 직업훈련 참여 실적을 쌓고, (업체들의) 이용료와 실적을 통한 정부 보조금을 취했다. 반면에 개인의 자활과 ‘성장’은 허울 뿐이었다. 따져보면 집단수용시설의 자활작업장은 정부와 시설이 공모한 결과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사업체가 연루되는 자리였다.
J가 이렇게 연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는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과 연구의 물적 지원이 영향을 미쳤다. (이 경험은 독특하고, 또 흥미롭다.) 사회사/역사사회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몇이 모였고, (모 학회서 ‘넝마주이’에 대한 ‘통치술’ 어쩌고저쩌고 하는 품질이 나쁜 발표를 한 덕에) J도 어쩌다 여기에 껴들었다. 형제복지원을 두고 ‘통치’와 ‘권력’을 넘어 ‘사회적 배제’와 ‘공모’라는 낮은 수위의 개념과 방법으로 살펴보자는 목표를 강하게 공유했다. 게다가 구성원 대다수가 서울대 사회학과 소속/출신이었고, 이로 인해 서울대학교의 연구모임 지원비를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를 하는 이들과의 네트워크 덕분에 분석해야 할 자료 역시 빠르게 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구성원들 대부분이 자료 수집과 분류/정리에 익숙했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자료에 대한 정리가 끝났다. 게다가 동일한 주제로 두 차례의 콜로키엄을 가졌고, 작은 발표회를 수차례 치루는 과정에서 내 연구의 주제가 선명해졌다. 여기서 몇몇은 외부기관으로부터 관련 프로젝트를 수주해 치루며, 자신만의 분야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몇 몇 학교에 국한된다는 판단도 강하게 든다. ‘지식’의 생산 조건에 대한 고려가 분명 필요하다.)
J의 고민은 ‘사람’에게로 향했다. 특히 ‘현재’의 ‘사람’이 그 대상이었다. 여기에는 연구자지망생으로서의 생존 문제가 끼어있었다. 박사학위를 시작한 2015년, 여러 이유로 그는 먹고 사는 문제에 본격적으로 봉착했다. 더구나 ‘사회사’라는 분야에서 박사과정생이 장학금 혹은 지원금을 받는 방법은 전무했다. 게다가 2009년부터 불거진 청년의 빈곤문제와 국가의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비록 다른 분야의 연구자이지만) 연구자 자신의 생존이 문제가 됐다. 이때의 선택은 동시대의 사람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사회문제란 대개 ‘동시대’의 것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더욱이 ‘청년 담론’에서 논해졌던 “노오력”의 문제를 다른 대상과 비교/대조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 ‘가난한 사람’의 ‘노오력’을 살피기 위한 대상을 물색하며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들이 사는 현장 가까이 이동했다. 조사를 하는 과정은 ‘끝나지 않는 노오력’을 확인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가난’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달리 ‘단절’보다는 ‘(느슨하고 약한) 연결’된 경우가 많았고, 노인들은 끝나지 않는 사회의 훈육(길들임)에 나름대로 (소박한 방식으로) 일탈하고 저항하며 연대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결과물인 『가난의 문법』은 ‘노오력’을 가난의 조건으로 환원해 사회에 고발하려는 시도를 벗어나려 고심했다. ‘노오력’ 자체를 드러내며 노인들이 가난하다는 조건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극복하지 못 하는 지점은 무언지, 노인들 서로가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하며 필요한 자원을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그려내는 나름의 에스노그라피 작성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J에게 사람을 직접 연구하는 일은 고된 작업이었다. 연구를 하는 방법은 시간과 비용이 꽤나 들었다. 종종 만나던 노인들의 실종이 연이어졌다. 재개발, 노화, 건강의 악화가 계속됐다. 연구비의 부족과 동료의 부족은 한참동안 연구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빈곤의 포르노화, 혹은 사람의 대상화라는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난의 경로와 노인들의 ‘일상성’을 발견하겠다는 연구 목표는 사회 고발과 정책 제언 사이를 맴돌며 갈피를 잃었다. 결과물의 양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주체들은 J에게 정책보고서와 구술생애사를 요구했다. 정책보고서는 형식적으로 작성했지만, 구술생애사는 노인들의 가족 반대로 무산됐다. 이런 한계와 애매모호함은 글쓰기의 한계이자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J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이 처한 구조를 통해 다음 연구를 진행했다. 예컨대 노인의 재활용품 수집은 “재활용품이 배출이 과다한 도시, 여기서 당연한 행정력의 부족, 현금이 없는 노인의 조우로 이뤄지는 일”이며, “재활용품 수집이 돈이 된다는 점, 재활용품 산업이 현재의 노인의 폐지수집이라는 현상을 받치고 있다.” 여기서 재활용품 수집의 초기 단계가 대개 ‘무허가’, 즉 ‘불법’으로 이뤄진다는 점에 집중할 때, 도시사람들의 생활을 가능케 하는 도시와 도시의 기반시설(쓰레기 처리 체계)을 공식/비공식이라는 이중성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1970년대와 1980년대라는 시간 안에서 “넝마주이”의 운명 중 하나가 매립지의 넝마주이(비공식적 수거인)라는 점은 구조의 공식화와 비공식적 행위자의 행위를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보인다.
J가 이런 저런 고민 끝에 최근 시도한 작업은 쓰레기처리가 만든 더러운 대형 기반시설의 제도적 형성과 비공식적인 (인간) 경제의 탄생에 대한 학위논문이었다. 연구의 배경은 1970년대까지 도시개발 건설현장에 지반을 다지는 용도로 쓰레기를 사용해왔는데, 인구의 증가하고, 기술발전으로 일회용품이 증가하며, 도시개발사업의 끝이 다가오며, 기존의 공사현장을 대체할 대형매립지를 ‘난지도’에 설립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도시 넝마주이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자신들이 선별한 재활용품의 비공식적인 판매경로를 만들었고, 이에 따라 매립지 주변에 고물상이 들어섰고, 폐품-비즈니스가 만들어졌다. 정부는 쓰레기처리를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넝마주이와 비공식적인 경제를 없애려 ‘신식’ 재활용품 분류 시설을 들여왔다. 그러나 연탄재 처리에 실패해 분류 시설이 먹통이 됐고, 이에 따라 쓰레기 처리의 ‘현대화’가 실패했고, 1990년대 쓰레기 처리의 체계화 과정에서 늘어난 도시 쓰레기의 양을 감당하기 어려워 비공식적 체계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현재의 이원화된 구조가 굳어졌다는 발견이다. 뿐만 아니라 이 대형매립지는 쓰레기를 배출한 지역의 사람들은 그 어떤 불편도 감수하지 않으면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시설 인근의 주민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도시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제는 연구를 한 연구자로서의 생명에 대한 지점이다. 집단수용시설과 ‘사회적 배제’에 관련한 연구는 강력한 동료 집단이 존재하지만, 가난, 노인, 쓰레기, 도시에 대한 연구에 있어 마땅한 동료 집단을 찾기가 어렵다. 더구나 마땅한 ‘이론’ 혹은 ‘개념’의 지향(예컨대 지식, 도시 안 통치와 배치, 공모, 비공식)을 공유할 자리가 마땅히 없었으며, 행정자료, 언론, 문학 등을 함께 읽어 나가며 방법을 공유한 동료 역시 마땅히 없다. (물론 풍문도 현장도 애매하게 챙기며 ‘사람’ 사이만 돌아다녔던 나선 J의 판단에 가장 큰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연구를 하기 위해 필요한 물적 자원을 구축하기 어렵고,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현재 연구자의 불안정한 사정이 가장 큰 영향이라 생각된다. (차라리 연구자-알바연대를 조성해야 할 필요가 강력하다!) 사소설과 같은 연구를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난 사정, (연구의 편의 때문인지) 연구자의 당사자성 혹은 연구자의 사적체험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사회구성체에 대한 관심을 기반으로 했던 이론적 지향이 강했던 앞선 선배 세대와의 간극 역시 크다. 그나마 합의점은 대개가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론자원을 ‘공부’하는 것인데, 여기서 공통의 연구로 나아간 경우를 찾기란 무척 힘들다.
(이렇게) J는 “폐품이 가득 들어찬 커다란 가방”을 들고 홀로 생계를 구하러 다니는 “넝마주이”의 삶을 산다. 그렇다고 그가 최인훈의 말대로 ‘운명’을 만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광장’을 찾았다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풍문들 사이의 필연성을 믿기보다, 이론의 굳건함을 믿기보다, 현장을 맴돌며 이런 저런 우연에 얽히며 지내고 있다. 자신이 가진 관심, 방법, 욕망, (넘을 수 없는) 조건, 한계를 몸에 새기고, 얽힌 관계 사이를 오간다. 그가 현장에 다가가는 방법은 역사, 그리고 사람이다. 이들은 필연과 우연이라는 대립항 사이에서, 낮은 개별적 존재와 (크라카우어의 말을 빌리자면) “아찔하게 높은” 이념이라는 높은 고도 사이를 상승 혹은 하강하며 오간다. 이 사이는 시간의 흐름, 사회의 담론, 변화하는 사실에 따라 그 폭과 너비가 더해지는 과정이다. 다시 말하자면, ‘필연’과 ‘우연’, 혹은 ‘풍문’과 ‘현장’의 그 어느 한쪽에 머물러서는 정체된 관념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럴 때 떠올려야 하는 건 철학자 퍼스의 말대로 “쏟아져 내리는 우연”을 통해 “감각”(“풍문”, “이론” 등)을 늘 돌아봐야하는데 있다. 풍문과 이론을 통해 우연과 현장을 살피면, 강고한 감각의 덫에 빠지는 건 아닐까 싶다. 또 연구자 자신을 (삶이라는 제약 아래 살아가는) 인간으로, 또 마주한 연구의 대상자의 우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학술장에서 풍문과 현장, 필연/감각과 우연, 이론과 방법이 풍부해는 것만큼, 이러한 인간성의 성찰이야말로 모두의 연구의 폭과 너비를 더하게 하는 지향점이다. 다시 돌아보자면, ‘문화’와 ‘문화연구’라는 틀은 사회의 여러 층위와 행위자를 연결하는 훌륭한 연장통이다. 하지만 연장통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사회를 고정된 감각의 장소로, 이론화된 공간과 이론화되지 않은 공간으로 나누는 정도에 머문다. 더 나아가 연장통을 들고 쓰는 사람들, 연장통을 들고 만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우리의 연구에서 쓸모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