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싶은도시』111호(2022 가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 글은 웹에서의 가독성을 위해 각주를 제거한 상태이니,
더 정확히 읽고 싶은 분은 아래 링크를 눌러 원본 pdf로 읽어주세요.
나는 전국순회교육서비스업 비정규직 종사자
나는 올해 2월에 대학원을 졸업했다. 30년간 이어왔던 학생생활을 드디어 끝냈다. 코로나19로 인해 졸업식에 가지 않았던 탓에 졸업이 크게 실감이 나는 일은 없었다. 졸업이 느껴진 건, 3월부터 나는 무얼 해서 먹고 사느냐는 고민에서부터였다. 우선 대학원 졸업자들의 벼룩시장인 진학사 교원채용이나 하이브레인넷(손발이 오글거리는 그 이름 hibrain.net)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갓 졸업한 내가 지원 가능한 분야는 대략 네 그룹 정도였다. 내봤자 떨어질 게 뻔한 대학교 내 교수(정년), 비정년교원, 강사(혹은 시간강사), 인문사회과학의 경우 정부지원사업의 연구인력((SSK 사업, HK+ 사업, 인문사회연구소 사업 등의 연구교수 혹은 전임연구원), 정부출연기관 및 정부출연연구소 등의 연구원 정도다. 전공과 경력 등을 따져 내가 선택 가능한 건 정부지원사업의 연구인력과 강사였다. 다만 내가 취업을 준비하기 직전 대개의 정부지원사업에서 연구인력이 대거 충원되었고, 비주류인 전공 덕에 딱 맞아떨어지는 공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직업강사로의 길을 준비했다. 아는 강사는 자신을 ‘전국순회교육서비스업자’라 불렀다. 나 역시 생존을 위해 전국순회교육서비스업자가 되기로 했다(나는 1학기에는 전라남도 순천, 2학기에는 경상남도 진주에서 수업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전국의 대학들은 강사 구인 시즌이 되면 공고를 내고, 지원자는 자기소개서와 강의계획서를 제출해 평가를 받았다. 나는 8개 종류의 자기소개서와 10개 과목의 강의계획서(안)을 작성했다. 대부분 대학교에서 탈락했지만, 다행히 국립순천대학교에서 두 과목의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조건은 시간당 9만원 대의 강사료, 그리고 강의 일자는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이틀 동안의 강의였다. (시간당 강의료는 사립대학은 5-6만원 선, 국립대학은 8-9만원 선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매주 약 666km를 쏘다녔지
드디어 나도 학기 중에 급여를 받고, 난생처음으로 사회보험을 받는 신분이 됐다. 그러나 편도 332.9km, 왕복 665.8km을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풀어야 했다. 먼저 세 가지의 조건을 세웠다. 지각하지 않아야 할 것, 이동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 가능한 체력을 아낄 것이었다. 순천까지의 출퇴근 방법은 자가용, 비행기, 고속열차 세 가지가 있었다. (고속버스도 있지만 시간대가 맞지 않아 이용할 수가 없었다.)
우선 자가용을 이용해 다니는 걸 생각해봤다. 회당 이동시간은 편도 4시간, 왕복 8시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기름값이 9만원 가량 들었고, 통행료는 3만원이 넘었다. 다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것이었다. 집에서 김포공항으로 이동한 후, 김포공항에서 여수공항으로 비행한 후, 여수공항에서 1시간에 한 번 오는 버스를 타고 순천대학교까지 가는 경로였다. 제일 먼저 마주한 문제는 공항으로의 접근성이었다. 집이 외진 곳이라 여기서 버스로 공항까지 가자니 시간이 오래 걸렸고, 세 번이나 환승 해야 했다. 그렇다고 공항에 차를 몰고 가니 차가 막히는 데다 주차비가 하루 2-3만원 대였다. 다음 문제는 항공권의 값과 갑작스런 스케쥴 변경이었다. 항공권은 5만원에서 8만원 사이로 들쭉날쭉했고, 코로나 19의 여파로 비행기의 운항 시간이 갑작스레 바뀌는 일이 잦았다. 하루는 전날 갑자기 비행기 시간이 바뀌는 바람에 난리가 난 적도 있다. 게다가 집에서 김포공항을 가는 길이나 여수공항에서 순천대학교까지 가는 길에 걸리는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었다.
비싼 자가용, 불안정한 항공에 비해 KTX는 값이 쌌고, 일정도 안정적이었다. 특히 새벽 시간이나 늦은 시간의 열차는 &자유석&을 이용할 수 있었고, 비용이 2만원대 중반으로 그 값도 쌌다. 집에서 광명역까지 대중교통 수단이 마땅치 않았지만 자가용을 이용하면 이동시간도 짧았고, &모두의 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비도 하루 8천원이 들었다. 다만 2시간 30분 내외로 이동시간이 길었으나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2시간 이동인간과 이동형 사무실
나는 12시간을 이동해야 돈을 버는 인간이 됐다. 월요일엔 10시 11분 기차를 탔고, 13시가량 학교 앞에서 밥을 먹었고, 14시부터 18시까지 수업을 했고, 19시 19분 기차를 타 23시가량 집에 도착했다. 수요일은 보다 하드코어했다. 5시 25분 기차를 탔다. 4시에는 일어나 준비하고 5시 15분까지는 광명역에 도착해야 하는 일정은 정말 힘들었다. 그러고 기차를 타고 9시부터 11시까지 수업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챙겨먹고, 기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4시였다.
기차는 내게 이동형 사무실이었다.
기차에서 나는 대개 행정업무를 했다. 처음에는 기차에서 논문을 읽고, 글을 쓸 여지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많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가끔 ‘마감에 쫓겨’ 글을 쓸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날은 꼭 허리가 아파 왔다. 주된 업무는 출결확인, 가끔 생기는 &연수&, 과제 검사 등이었다. 특히 학생들의 과제를 읽는 일은 꽤 재밌는 경험이었다. 과제를 읽다 잠시간 창밖을 보며 멍하니 있는 시간이 무척 귀했다. 수요일 출근길에는 늘 기차 안에서 해 뜨는 풍경을 마주했다. 곡성 부근에서 해 뜨는 섬진강변을 따라 내려가며 마주한 풍경은 특히 압도적이었다. 또 월요일 퇴근길에는 해지는 지리산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많은 날의 경우 기차를 타자마자 잠부터 들었기에 일몰을 볼 여유가 없던 것도 사실이다.)
일일생활권과 외주의 끝자락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린 1990년대, 부모님을 따라 서울에서 순천에 간 날은 지금과 대조적이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내가 사는 곳에서는 순천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타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영등포역에서 광주역까지 5~6시간 동안 무궁화호를 타고 이동했고, 광주역에서 광주버스터미널로 이동한 후 2시간가량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야 했다. 하루에 순천을 오가는 일이란 불가능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순천으로 매주 두 번씩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오사카, 도쿄, 베이징, 상하이에 가는 것과 비슷한 시간을 소요해서 말이다. 마치 일본에 ‘라멘’을 먹으러 다녀오는 일과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아내와 아기에게 “나 순대국밥 먹고 올게”라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렇게 국민학교 시절 ‘전국 일일생활권’이란 말을 배웠는데, 내가 장거리 통근자가 됐다. 미국의 영화 Up In the Air(2009)은 생활권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해고전문가는 1년 내내 비행기를 타고 미국의 주를 넘나들며 일한다. 나 역시 서울에서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전라북도를 지나 전라남도 순천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 출퇴근의 끝을 생각하면 아득하다. ‘일일생활권’을 경험한다는 건 흥미롭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된 생활의 연속이다. 내가 일일생활권을 경험하게 된 이유는 수요에 비해 부족한 강사직의 공급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강사로서 ‘전국 일일생활권‘을 경험하는 건 대학교란 업종에서 이뤄지는 외주의 가장 끝자락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왜냐면 다음의 직을 보장받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다음의 일을 물어보아도 사정은 같다. 대학 내에서 강의만 맡을 뿐 교육자로 혹은 연구자로 성장할 기회는 따로 없다. 동료 연구자를 만나 교류를 할 기회가 없고, 정규직들 역시 강사에게 무관심하다. 여기에 대학은 이동에 드는 비용 등에 대해서는 자가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 만큼 경제적인 보상에 무심하다. 그럼에도 전국순회 교육서비스업자의 직을 맡고 지속해야 할 이유란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함께 공부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배우고 공부한 것들을 학생들에게 공유하며,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내게 공유하는 경험은 값지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