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는 ‘자격으로서의 가난’에만 관심이 있다”

기자: 김원진
날짜: 2020년 12월 30일.
장소: 정동 경향신문사.
게재: <주간경향> 1411호 (2021년 1월 11일 발행)


ㆍ한국사회 빈곤 다룬 책 낸 신명호 소장과 소준철 연구원

가난이 정쟁의 도구로 쓰이고 혐오의 대상이 될 때, 가난과 빈곤을 사려 깊게 들여다보는 책이 나왔다.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장과 소준철 도시사회학 연구자(청계천기술문화연구실 연구원)는 올 하반기 한국사회 빈곤을 다룬 책을 냈다. 가난·빈곤을 통계 너머로 다룬 연구나 서적이 드문 상황에서 귀한 저작이다.

신명호 소장의 <빈곤이 오고 있다>가 2020년 10월 16일 먼저 나왔다. 2013년 펴낸 <빈곤을 보는 눈>을 시대 변화에 맞춰 다시 쓴 책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다. 빈곤을 축으로 한 여러 이야기를 다룬다. 빈곤의 원인, 빈곤과 교육, 홈리스, 건강불평등, 빈곤과 선거, 빈곤 문화 등이 대표 주제다. 신명호 소장은 석사 논문을 쓰러 철거민 정착촌에 갔다가 그곳에서 12년을 살았다. 이후 25년 넘게 빈곤 연구에 매진했다.

소준철 연구원의 <가난의 문법>은 2020년 11월 30일 출간됐다. 재활용품 수집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 노인의 가난을 다룬다. 복지제도의 공백, 재활용품 산업의 허점 사이에서 생긴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의 삶을 조명한다.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이라는 매개로 가난의 형성과 복지제도 전반을 보여준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직접 페이스북에 독후감을 올렸고, 사회과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탁월한 저서’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벌써 4쇄를 찍었다. 사회과학서적으로는 요즘 보기 드문 판매고다.

신명호 소장과 소준철 연구원을 2020년 12월 30일 오전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신명호 소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채 왜곡된 빈곤을 둘러싼 편견과 선입견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준철 연구원은 “가난한 사람의 가난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통해 가난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복잡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했다”고 했다. 가난과 빈곤에 관한 두 연구자의 생각을 들었다. 대담은 2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가난과 빈곤을 둘러싼 사건은 2020년에도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됐는데요.

신명호(이하 신) “최근에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30대 발달장애 아들과 같이 살았던 60대 어머니가 숨졌죠. 5개월이 지나 발견됐어요. 서초구청에서는 (사례 관리 대상인) 주거급여 대상자였기 때문에 사각지대가 있는지 몰랐다고 했어요. 서초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전수조사해보겠다, 이게 다였어요. 비슷한 시기에 서초구청장은 집 한채 1가구 1주택 재산세 50% 감면해주겠다고 했죠. 대상도 많고 파격적인 조치였어요. 뭐랄까요. 딱 한국사회가 빈곤을 대하는 시각이 담겼다고 봤어요. 주택 보유자의 재산세 감면이 더 시급한 문제처럼 느껴졌죠. 빈곤은 일부의 문제니까 딱 요만큼, 전수조사만 하면 돼, 이런 시각이죠.”

소준철(이하 소) “사회복지 전달체계가 완전해졌다고 믿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라 복지행정 자체가 계속 순환보직인 상태에서 사례 관리가 어려워요. 민간 위탁이 끝나거나 내부의 보직이 바뀐다거나 하면 공백이 생기죠. <가난의 문법>에 나오는 재활용품 수집 노인분들을 뵐 때도 사회복지사가 계속 바뀌는 문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요. 공무원은 ‘된다/안 된다’ 둘 중 하나로만 얘기하고. 복지행정 말단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데 집중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산동네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 서로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이 가능했어요. 요즘은 지하방에서 숨진 뒤 오래도록 모르게 되죠. 그래서 찾아가는 복지를 한다고 했지만 만들어놓은 제도가 빈약하고,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는 사회의 자원 자체가 적어요.”

 “마을이 사라진 자리에서 행정이 이를 대처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고민이 필요하고 더 많은 자원 투입이 필요한 건데요. 몇년 전, 경기도의 한 사회복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맡았던 사례자 수만 2만5000명이었다고 해요. 여전히 버거운 상황이죠.”

 “간혹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 회복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공동체 회복으로 빈곤이 해결될까요. 더구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래서 정부의 복지가 필요한 것이고요.”

 “그런데 정부의 사회복지체계 자체가 협소해요. 지금은 소득을 기준으로 해서 대부분의 사회복지체계가 짜여 있어요.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은 정부의 사회복지 대상 기준으로 놓고 보면 잘 포착이 안 되기도 해요. 그냥 저소득층이라고 추정이 되지만 흔히 선별할 수 없는 분들이거든요. 집이 있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 있는 경우도 있어요. 이런 분들의 현실은 가난한데, 정작 복지의 바깥에 놓여 있기도 해요.”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가난의 문법>을 언급하면서 노인 공공일자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는데요.

 “노인 일자리라고 하는 건 사실 삶의 기본적인 부분을 나아지게 하는 게 아니라 결국 노동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해 특정한 이들에게 일을 하게끔 하는 방식이에요. 이걸 사실 복지라고 할 수 있을까, 전면적인 의문이 들어요. 사실 이보다는 기본적인 복지재정이나 복지서비스를 더 늘리는 방식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요. 김용범 차관이 올린 글에는 노인 일자리 말고 기초연금을 한시적으로 인상하는 안도 노인빈곤 해결 방법으로 나와 있긴 해요. 김용범 차관은 노동 공공일자리를 강조했지만요.”

 “1999년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졌어요. 이때 빈곤층 대상으로 한 자활사업이라는 것도 처음 생겼어요. 빈민 운동을 했던 쪽에서 자활사업을 제안한 건데, 당시 경제부처 관료들 반응이 ‘차라리 그냥 돈을 주자’였다고 해요. 자활센터 만들고, 센터 관리할 사람 채용하는 게 예산이 훨씬 많이 든다는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놀라운 얘기예요. 요즘 정서가 ‘사지 멀쩡한데 돈을 그냥 줘?’ 이런 거잖아요.”

 “김용범 차관은 페이스북 글에서 향후 은퇴자들이 연금을 받으면서 일을 안 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얘기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미 저성장 사회예요. 연금 받는 노인 세대가 나올 때까지 10년 정도 시차가 있고요. 그럼 10년 사이 일할 능력이 없는 노인들은 정부의 구제를 못 받을 수 있어요. 그럼 이분들은 돌아가실 때까지 내버려두는 것인가. 김용범 차관은 제 책을 두고 휴머니즘에 바탕을 뒀다고 했는데, 이것이 휴머니즘인가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복지제도에서는 노동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많이 따지죠. 자활사업이 대표적이에요. 자활사업 참여를 의무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받는 조건부 수급자들이 있어요. 노동능력이 없는 사람을 정부가 자활사업 현장에 배치해 사망하는 사고도 종종 일어나요. 복지에 들어가는 돈도 시민의 세금이니까 잘 써야 하는 것은 맞는데, 문제는 ‘노동능력이 있는 저소득층’을 선정하는 과정과 절차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형제복지원 자활사업 관련해 연구를 3~4년 했어요. 형제복지원이 왜 존재했나 생각해보면, 관료들이 책상머리에서 문서로만 만들어낸 사업으로 보였어요. 성과를 지표화할 수 있는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했던 거죠. 부산시는 형제복지원과 관련된 자료를 끊임없이 생산했어요. 사실 지금 노인일자리도 비슷해요. 관료들의 목표 수치와 페이퍼 워크(Paper Work)가 중심이 되면서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일을 해서 더 나아졌는지 고민은 부족하죠. 현장에서 일하는 노인들에 대한 안전망도 딱히 있는 것도 아니고요.”

 “노인 공공일자리를 둘러싼 이야기는 제가 사회적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유사해요. 저는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일을 하지만, 사회적 경제가 메인이 되어서는 안 되거든요. 복지가 기본으로 깔려야 하죠. 복지의 토대 위에 사회적 경제가 빈틈을 메워야 하는데, 지금 노인 공공일자리 논의를 보면 복지보다 공공일자리가 더 우선인 것처럼 보여요.”

-‘가난’을 이야기하면 혐오로 되돌아오거나, ‘개인 책임’으로 전가되는 사례가 부쩍 많아진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요구했던 건, 늘 일종의 자립이라는 표현이었어요. 지금 말로 하면 ‘알아서 살아라’였던 거죠. 그게 오늘날의 노인들이에요. 노인들을 만나다 보면 ‘나라 좋아졌네’라고 많이들 하세요. 역설적으로 이분들이 ‘가난은 개인 책임’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계시죠. 더구나 도시에서는 재개발이 많이 이뤄져 노인들끼리 모일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사라졌어요.”

 요즘 “흔히들 이야기하는 공정 이데올로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능력과 노력으로 성공한 자만이 결실을 누릴 수 있다. 시험도 안 봤는데, 그러니까 노력도 안 했고 능력도 부족해 보이는데 정규직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 가난에 적용되는 논리도 비슷하죠. 능력이 부족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가 낸 세금, 즉 복지를 제공해주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진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스스로 가난하다고 말하는 순간은 공무원 앞에서에요. 가난의 상태를 개선하든, 유지하든 도구나 자격으로 이해하거든요. 사회가 그걸 요구하니까. 자격이 되어야 복지를 해준다. 그래서 현실에서의 진짜 가난과 자격으로서의 가난은 다른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불평등하지만 ‘나라도 잘 살래’에서 나온 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 투자예요. 불평등한 사회에서 정부로부터 더 보호를 받아보겠다는 것이 자격으로서의 가난이고요. 두 현상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것 같아요.”

 “박사학위 논문에서 고소득층 집안의 아이들이 더 공부를 잘하는 이유를 분석했어요. 저소득층 부모들은 학력에 관심이 없었어요. 저학력 때문에 차별받은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일터에서도 학력을 따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어요. 이들은 자녀에게도 공부를 시킬 유인이 적었던 거예요. 문화 자체가 다르죠. 중산층 자녀와 출발선부터 다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요즘 중산층이 스스로 가난하다, 이런 말을 쓴다고 하던데요. 영끌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사회·경제적인 가난이 아니에요. 기회 없음의 다른 말로 가난을 쓰는 것 같아요. 시대의 공정성 논의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봐요. 내가 노력을 이만큼 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정하지 않은 것, 가난한 사람들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덜 주어지는 게 당연한 것. 이런 거죠.”

 “지금은 질 좋은 일자리가 희소해졌어요. 질 좋은 일자리는 대개 고학력자에게 돌아가죠. 학력이 갖는 가치는 더 커졌는데, 그걸 선점하기에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에게 주어진 기회가 더 희소해졌어요. 경쟁이 치열해졌으니 중상류층에서는 학력 자본 획득에 투입하는 비용이 전보다 더 커졌겠죠. 기본적인 문화적 환경도 다르고요. 역설적으로 공부로 빈곤을 탈출하는 시대는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고요.”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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