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난한 노인에게 야광조끼만 주는 사회

기자: 차형석
날짜: 2021년 1월 15일.
장소: 중림동 시사인 회의실.
게재: <시사IN> 694호(2021년 1월 5일 발행) .


도시 연구자 소준철씨(37)는 최근 〈가난의 문법〉(푸른숲)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폐지 줍는 여성 노인’을 다룬 단행본은 이 책이 처음이다. 소씨가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일과 삶’에 관한 현장 연구를 하게 된 건 2015년 3월 어느 날의 경험 때문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서울 가양역 근처의 골목을 지날 때였다. 채 1㎞도 되지 않는 길이의 거리에서 각각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노인 몇 명을 보았다. 따로따로 폐지를 줍고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에 그는 아득함을 느꼈다. 그는 “여러 할머니들이 경쟁하듯이 기계처럼 폐지를 모으고서 흩어지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정말 이게 뭐지,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 아득함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은 ‘고령사회’ 국가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은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된다. 한국은 2016년 노인인구가 712만명(14%)을 돌파하며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20년, 65세 이상 노인은 81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한국은 가난한 노인의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다. 이는 국가 간 상대적 빈곤율 비교를 통해 나타난다. 상대적 빈곤율은 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의 비율을 뜻한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OECD에 가입한 37개국 가운데 미국의 17.8% 다음으로 높다. 노인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훨씬 더 심각하다. 43.8%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한국(43.8%), 에스토니아(37.2%), 라트비아(35.3%), 리투아니아(28.2%), 멕시코(24.7%) 순서다. 65~69세 고용률(45.5%)이 아이슬란드(52.3%)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70~74세 고용률은 33%로 OECD에서 가장 높은데도 노인의 상대적 빈곤은 가장 심하다. 아이러니하다.

‘재활용품 수집 노인’은 노인 빈곤의 상징이다. 빈곤의 숫자는 명확히 드러나는데, 당사자들은 골목으로 몸을 숨긴다. 소준철씨의 ‘현장 연구’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우선 사회과학 분야에서 선행 연구가 없었다. 서울 관악구 지역의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운동 차원에서’ 사례 보고서를 낸 적이 있을 뿐, 학술적 연구는 마땅한 게 없었다.

선행 연구가 없을 뿐 아니라 신뢰할 만한 통계도 없다.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폐지 수집 노인이 175만명이라는 주장(자원재활용연대)이 나왔으나, 이는 175만명의 ‘차상위계층’ 대부분이 재활용품을 수집할 것이라는 추측에서 나온 수치다. 2018년 보건복지부 산하 노인인력개발원은 6만6000여 명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6만6000여 명에서 175만명까지, 간극이 너무 크다.

소준철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60명가량을 만나 인터뷰하고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구를 위해 서울 북아현동 인근의 한 고시원에서 두 달 반 동안 살기도 했다. 새벽이고 밤이고 일정한 시간대를 정하고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관찰’했다. 노인들이 언제 다니는지, 동선이 어떤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사실들을 수집했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대개 오전 4시에서 6시 사이에 집을 나선다. 일찍 나선 이가 좀 더 많은 재활용품을 수집할 수 있어서다. 또 폐지 수집에 쓰는 리어카는 고물상에서 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공공시설이나 식당 화장실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모아놓은 재활용품과 운반도구를 도난당하는 일이 많아서다. “잃어버리게 되면 빌린 리어카나 카트 값까지 물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불안해한다(소준철).” 몰랐던 사실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 책에서 소준철씨는 가상의 인물 ‘45년생 윤영자씨’를 내세웠다.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나왔던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삶을 이어 붙였다. 구체적인 일상을 보여주면서도 인터뷰한 이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필요도 있었다. 윤영자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평균적인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현실에 기초한다. 예컨대 이름(영자)만 해도 1945년에 태어난 여성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에서 따왔다. 배경을 북아현동 일대로 잡은 것도, 이 지역이 여러 계층이 뒤섞여 있고 서울의 역사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소준철씨는 이 작업을 통해 재활용품 수집 노인의 삶을 드러낼 뿐 아니라, 도시에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지 구조와 경로를 알리고 싶었다. 노인들이 재활용품을 수집하고 판매하는 것은 정부의 자원순환 정책 및 재활용 산업 구조와 관련이 있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봉투가 등장한 것은 공공영역이 재활용 산업에 개입하고 관리의 직접 주체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넝마주이와 고물상이 재활용업체와 직접 거래를 해왔는데,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넝마주이의 일이 가난한 노인에게로 물려졌다.

특히 단독주택,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밀접한 도시 공간에서 자원순환 정책의 빈틈이 드러났다. 골목에 재활용품이 방치되는 일이 많았고, 노인들의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비공식 노동이 등장했다. 주거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농촌에서는 (폐지를 주우러 다니기 어렵기 때문에) 보기 드문 현상이다.

이들은 매일 고물상 폐지 가격 정보를 나눌 만큼 폐지 가격의 변동에 민감하다. 폐지 가격은 국제무역 관계로부터도 영향받는다. 2017년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폐지 수입을 중지하면서 국내 폐지 가격이 폭락했다. 미국에 폐지가 넘쳐나 폐지 가격이 하락했고, 국내 제지업체가 ‘값싸고 이물질이 적은’ 미국산 폐지의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관계가 노인들의 호주머니를 가볍게 만드는 한 요인이었다.

소준철씨가 논문에 이어 책까지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소씨는 논문을 쓰고서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발표회를 몇 차례 열었다. 가장 많은 질문이 ‘계급성에 대한 의심’이었다. 한마디로 ‘폐지 줍는 노인들이 빈자 코스프레를 하는 부자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폐지 수집하는 노인에 대한 기사에 달린 댓글도 비슷했다. “실제로는 차가 있는 부자더라” 같은 댓글이 정말 많았다. 그게 너무 답답했다. 오해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런 시각이 정부의 지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삶을 재구성해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나마 서울시를 비롯해 55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재활용품 수집인’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야광조끼나 리어카에 붙이는 반사 스티커를 나누어주는 수준의 사업이다. 소준철씨는 “동정과 시혜보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가 ‘45년생 윤영자’의 삶을 재구성해 내놓은 까닭이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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