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 사진은 1983년 8월 전, 난지도 매립지 내 주거지역 풍경. 드디어 확보.몇 가지 자료를 조합하면, 당시 난지도의 쓰레기처리 과정과 주민들의 생태를 정리할 수 있겠다. 강남개발과 그 배후의 난지도라는 연결 역시 중요한 분석 지점이다. 이제 이 이전의 청계천으로 출발. 가장 문제는 1960년 초의 청계천과 그 인근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의 성동 지역 부근 청계천은 어느만큼 자료가 확보되어 있다.
#2 1960년대 쓰레기처리에는 미국의 기술이 쓰였고(정확히는 미군의 기술과 함께 식민지기의 시설과 인력 운용방식이 동시에 사용된 걸로 보여요), 1975년을 기점으로 쓰레기처리에는 미국/일본 산업의 재자원화 방식이 제안됐고, 똥오줌처리에는 영국기술을 도입됐구요. 이런 시설을 기반으로 1980년대 재활용에는 미국과 일본의 기술이 도입됐습니다.
#3 여기서잠깐 <뿌리깊은 나무>(1976-1980)에 대한 논문을 준비할 적에 출판문화계의 1975년의 변화를 감지한 적이 있다. “형제복지원”에 대한 작업에서도 “내무부 훈령 410호”가 등장하며, 이전과 달라진다. 쓰레기 재자원화와 빈민의 역할(1960-1989)에 대한 이번 작업에서도 1975년, (재활용이란 단어가 없던 시기였던 시점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폐품) 재자원화”가 정책적으로 처음 야기되던 시기였다. 대체 1975년에는 어떤 일이 있던 걸까. 오일쇼크, 강남개발, 지하철, 유신헌법 찬반 국민투표, 동아투위, 긴조 9호(4대 안전법)와 베트남전쟁 종전, 국회의사당의 건설, 인혁당 주동자의 사형, 학도호국단의 부활,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 너머의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은데… 결국 긴조9호인가.. 아, 이 시기는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 식민지의 유산/변주로 보기도 애매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끌고와도 이상하고, 한국적 어쩌고저쩌고라고 봐도 요상하다. 애매, 이상, 요상의 시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