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0 제품 X의 탄생, 청계천 일대 제조과정 추적기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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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문 전문]

안녕하세요, 제품 X의 탄생, 청계천 일대 제조과정 추적기를 발표하러 온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 연구원 소준철입니다. 우선 양해 말씀을 구해야겠습니다. 자료집에 실린 부제는 “산업생태계 추적기”입니다만, 실제 발표는 “제조과정 추적기”로 제목이 변경되었습니다. 단 두 달의 조사로 산업생태계를 운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변경한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발표는 서울시립대학교 세운캠퍼스 ‘디지털 트윈’ 사업의 지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조사와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의 자체 조사를 기반으로 준비했습니다. 특히 이 조사는 최혁규와 안근철과의 협업이며, 서울시립대 황지은 교수님의 조언,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와의 지속적인 세미나 덕분에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발표는 ‘추적기’와 ‘제품 X의 탄생’, 그리고 ‘남은 궁금증’, 이 세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추적기’ 부분에서는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의 조사에서 발견한 청계천 일대의 특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청계천 일대 제조업밀집지역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공업단지, 산업단지, 클러스터, 굳이 정부 차원에서 용도를 정한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조업 밀집지역이라고 부르자니,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유통업, 즉, 판매행위를 뒷전으로 두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제작행위와 판매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장소, 서쪽의 남대문시장/명동상업지구과 동쪽의 동대문시장 사이에 위치한 제조업 중심의 시장이라고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발표를 통해 이 지역을 ’청계천 시장’으로 부르길 제안합니다. 분명 이 시장의 성격을 보다 상세히 규정해야겠습니다만, 이 지역에 대한 접근 지점에 대한 제안으로 여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청계천 시장은 어떤 시장일까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 장소는 제작행위와 판매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공장과 유통매장이 공존하는 장소입니다. 이 지역을 살펴 볼 때, 제일 먼저 어떤 업체들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을 연구의 시작으로 둡니다. 예컨대 2015년의 모처의 조사에서처럼 “조명, 가구, 조각, 공구, 미싱, 타일도기의 명부 정리와 업체 현황상태, 대상수, 사업체의 기본 정보, 이용고객 현황, 경영 애로사항 등의 사업역량”과 같은 서너 쪽 분량의 설문지로 말입니다. 혹은 정리하는 사업으로 연결되기도 하지요. 오른쪽 하단의 사이트는 ‘사이버 청계천’입니다. 2000년부터 개인에 의해 운영된 사이트로 2012년까지 업데이트를 했지만, 그 이후로는 유지만 하고 있습니다. 그 위는 메이커스 파라다이스, 왼쪽은 세운상가산업지도(일명 세운산도)가 있습니다만, 사실 비슷한 량의 정보를 정리했을 뿐입니다. 물론 세운산도의 경우는 더 나은 방식으로 업데이트를 준비 중이라 하니, 그 다음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연구의 차원으로 본다면 아직 김용창(1996)의 박사논문과 심한별의 박사논문(2013)의 다음 판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김용창이 발견한 네트워크 경제체계 두 가지와 심한별이 발견한 정부/제도에 의한 생산활동 변화의 설명, 다음의 변화에 대해서 말이죠. 

우리는 2019년, 현재의 상황에서 이전에는 네트워크, 혹은 도심부의 생산활동 밀집지, 혹은 도심부 제조업 밀집지라고 불리는 이 청계천 시장을 살펴 보기로 했습니다. 청계천 시장의 생산활동은 ‘공정’과 업체 간의 연계를 파악하면 보이리라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다 설문조사, 학위논문, 또한 서울역사박물관의 생활문화자료조사 시리즈, 내용연구소의 “산림살림”과 같은 자료집, 그리고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다루는 여러 자료들을 참조했습니다. 그래서 조사에 앞서 첫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건 뒤에서 한 번 바뀝니다!) 이 과정에서는 이전부터 기술자들을 만나 작업을 해 온 세운기술중개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기술중개소의 추천을 통해 1차 선별을 했고, 준철, 근철, 혁규가 2차 선별을 하여 아래의 기준틀에 맞추어 조사를 실시하기로 했습니다. 기준을 보면, 사업체의 성격으로 분류하면 기존업체, (새롭게 진입한) 메이커스로 나눌 수 있고요, (산업분류를 기초로) 금속/가공, 전자/전기 등으로 딱 잘라 보기로 했습니다. (조명, 가구, 미싱, 타일도기 등은 인력과 시간의 문제로 현재 조사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리고 기존의 ‘제작행위’ 뿐만 아니라 (시장이라는 인식 하에서) ‘유통행위’를 보아야 하고, 완료한 공정에 따라 완제품, 반제품/부품으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뭐든 공정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예술가나 업체들의) 프로토타입 혹은 시제품, 혹은 잘 팔리고 있는 기성품이 있으니까 뭐라도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급적 청계천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세웠습니다. 

뒤에서 이야기드리겠지만, 대개의 기준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조사가 시작되자 기본적인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시장에서는 산업분류가 무색하다는 점입니다. 전자와 금속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청계천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지폐교환기가 있습니다. 코인노래방, 셀프세탁방, 피씨방 등 한국 ‘셀프-방’문화의 핵심이지요. 이 지폐교환기는 외장과 내장은 금속 가공업에서 진행하고, 핵심인 지폐와 동전의 식별기와 방출기, 교환이 가능하게 한 ‘소프트웨어’는 전자 전기에서 진행합니다. 실제로는 전자와 금속이 만나, 제품을 만들게 되는거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만, 앞서 공정과 산업분류로 업체의 이름을 모았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사실입니다. 즉, 공정과 산업분류 이전에 상품을 파악할 때 청계천 시장의 다른 면이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추가할 점은 바로 완제품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시제품의 경우는 청계천 시장의 특징이기도 합니다만, 애초에 추적 자체가 어렵더군요. 정상적인 주문 방식에 있어서 제품의 정보를 주지 않는 곳이 청계천 시장인데요, 조사를 빌미로 세세한 정보를 알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제작의 동기가 궁금했습니다. 박배균(1997)은 “각 공정 가운데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 단계에 자신의 업체를 특화시키고 다른 업체들과 긴밀한 부업체계를 구성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이 발견은 일반적인 설명이 되었고요. 그러면 ‘긴밀한 부업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주문’입니다. 이건 김용창(1996)의 발견이었던, 두 가지 네트워크(주문을 받은 생산자본이 지역 내 사업장들과 협력하청을 구성하는 것, 청계천 내부 판매장-외부 공장의 방식)의 구별이 사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청계천은 ’주문’이 제작행위를 이루는 특수한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공정을 재구성하는 건, ‘주문’과 ‘주문 받은 자’에 의한 기획이고, 주문에 따라 협력하청의 대상과 거래 방식을 정하거나, 혹은 확보한 자체공장/협력사에 일감을 주거나, (최근의 변화로) 자체생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게 우리의 발견입니다. 

이쯤에서 저희가 배신한 (원초적인 아이디어) 하나를 말씀드려야겠네요. 청계천은 청계천 내부에서 생산이 가능하지만, 이곳 역시 배후생산기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파악해보고자 하는데 경기도(화성, 오산, 남양주, 파주, 의정부, 포천, 하남 등)으로 옮겼고, 이들에게 청계천은 ‘주문과 판매만 가능한 영업소’가 설치된 지역입니다. 청계천의 값어치를 따져보면, 밀집된 도심제조업이란 시장 내부, 밀집지역 내부 뿐만 아니라 시장 외부, 배후의 생산기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단지, 성공해서 확장을 했다는 사례로만 그들을 소비해서는 안되며, 청계천 내부에서 제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청계천 시장의 원형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들 역시 청계천 시장의 한 유형입니다. 

이제 다른 발견입니다. 바로 ‘부품’수입의 문제입니다. 앞서 제시한 기준에서  청계천 내부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다소 국수주의적이었달까요, 저는 사회사연구자이기도 한데 스스로가 착잡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착각이었습니다.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 태양열 조명등 장치는 중국산 부품과 입정동의 생산품, 국내 다른 지역의 부품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사업장에게 부품의 다변화는 기회가 아닐까, 다시 생각해봅니다. 예컨대 청계천에서 직접 제작한 부품의 사용은 ‘정확히 필요한 혹은 꼭 맞는’ 주문제작이 가능하고요, 청계천 외부 국산품은 품질이 적당한 (기성품으로서의) 부품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중국산을 쓰고, 미국산이나 서유럽산은 한국산이 할 수 없는 기능을 갖춘 부품, 혹은 보다 고품질의 제품이라는 인식이 있더군요. 그렇게 본다면, 부품의 다변화를 두고 패배적이거나 국수주의적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는 엄연히 시장이니까요. 

마지막 발견입니다. 우리가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사실을 확인한 발견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리가 안되는 사안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네요. 늘 그렇지만 기술자 가운데 몇 몇은 ‘리드’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세운상가에서 유명한 마이스터 분들도 계신 듯이요. ‘학습하는 기술자’라는 존재에 대해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만난 기술자 한 분은 LED 조명을 제작하십니다. 이분의 작업에는 LED조명, 콘트롤러(외장), PCB, SMPS(전원장치)가 있습니다. SMPS야 외주를 주는게 워낙 싼 편이니 외부에 맡깁니다. LED 조명은 직접 작업을 하고, PCB은 (외부 공장에서 기초적인 부분의 뗌질을 해 온) 자삽해 온 제품에 추가적인 작업만 진행합니다. 여기에 PCB의 케이스인 콘트롤러의 외장의 경우에 외주를 맡겨오다가, 작년 기계를 사다 직접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직접 장비를 구하고 운영방식을 학습한 셈입니다. 하청을 주던 일을 자체 생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거죠. 그렇다고 청계천 외부와의 연계가 닫힌 건 아닌지 의심하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더 알아봐야겠습니다만, 다른 방식으로 연계 방식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다른 장비들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계신데요) 제작의 재하청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는 장비의 구동-어플리케이션, 즉, 프로그램의 판갈이(업데이트)를 하거나, 구동방식을 변경할 때 또 다른 기술자들과 연동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리하자면, 청계천 시장은 산업분류 뿐만 아니라 제품을 중심으로 산업의 뒤섞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입니다. 또한 청계천의 중심적 역할은 주문이 제작을 이끕니다. 주문은 제작방식과 하청대상 등을 결정합니다. 게다가 밀집지역이자 제조업의 주문 위주의 시장에서 부품의 다변화는 제작의 범주를 넓히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기존의 협력하청관계, 판매점-제작공장의 분리와 함께 학습하는 기술자에 의한 자체생산의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품X의 발견을 살펴보시지요.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산업연구자라기 보다는) 에스노그라피연구자이자 사회사연구자로서 한국사회의 토착적 근대성을 탐험하는 탐정에 가까운데요, 이 제품X는 청계천 시장의 시공간의 토착성을 살펴보기 위한 실제 예입니다. (우연찮게 만나게 된 제품이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청계천의 주문방식은 주로 방문, 유선, 이메일로 이루어집니다. 손그림으로도 그리고, 캐드로도 그리고요. 그 방식보다 중요한 건 적힌 내용일텐데요. 제작을 위해 필요한 완성품의 모양과 크기, 자재의 종류입니다. 앞에서도 살짝 언급드린 듯, (특히 시제품의 경우는) 제품의 실제 쓸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하청업체들도 내가 만든 부품의 쓸모가 무언지 물어보지 않는 편이고요. 기술적인 부분만 서로 주고 받는다고 합니다. 정보를 관리한다는 건,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제품이 생산된다는 뜻이겠지요? 

자, 우선 기준을 몇 가지 바꿨습니다. 기존업체, 기성품인 것을 고르고, 완제품과 반제품/부품의 ‘상태’를 알 수 있을 것이며, 부품 생산지는 어디든 관계 없지만 그 목적을 알아둬야 하며, 유통과 제작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기로 생각했습니다. 또한 주문방식을 보며 ‘자재의 물질성’을 추가로 조사하고, 기술자의 운동과 학습방식, 도구와 신체의 관계 역시 고려할 사안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기준이 다양합니다, 이건 혼자서라면 못 할 작업일텐데요, 아직 성기긴 하지만 네트워크 단위의 연구이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한쪽을 넘기며] 파악한 업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간이 있다면 각 업체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ABC 정도는 해야 할 듯. A – 기술중개소 추천, 시제품 위주, B – 세운상가/대림상가 내 제작업체, C 산림입정 위치, D-HR시보리 중심]

우연히 찾아 온 X, 깔대기입니다. 이 깔대기는 무척 단순해 보입니다. 특히 식품회사로부터 모 정밀업체가 주문 받은 제품입니다. 주문량은 20여개 정도로 이후에 기름을 짜는 기계, 착유기에 장착될 예정입니다. 제작이 완료되어 식품회사에 출고된지 보름이 채 안된 제품입니다. 본래는 궁금증 많은 자들에게 도움을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습니다. 마침 가보니 산림조형의 소동호 작가가 한라금속과 함께 시보리 시리즈라는 작업을 함께 하셨다고 해서 예술가와 기술자의 만남을 조우하겠거나 생각했습니다. 다만 저희의 사정으로 산림조형을 찾아 뵙고 그 계획을 다음으로 미뤄 둔 상태입니다만, 사장님께서 깔대기 제작 공정에 합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양해를 구하며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깔대기는 굉장히 단순해 보입니다만, 스테인리스판 하나와 같은 재질의 파이프 하나가 합쳐진 제품입니다. 우리가 세운 기준을 비추어 볼 때 기존업체의 제품, 기성품이며, (부품으로도 판매가 가능한) 반제품으로, 청계천에서 자체적으로 구할 수 있는 자재로, 실제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보여드릴 시보리의 사례는 스테인리스와 원심력을 기초로 하는 운동, 금형과 롤러가 필요한 손기술로 이루어집니다. 

저희의 작업 이전에 기존의 방식 하나를 보여드릴까 싶습니다. 설문지를 통해 공정을 조사할 때 이해관계자를 채워 넣는다면 결국 이런 그림에 머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각 부품에 따라 제작과정을 새로 정리했습니다. 우선 아래 빨간 네모의 위와 아래가 각기 다른 부품입니다. 우선 주문을 받은 태연정밀이 한라금속에 시보리 공정에 참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한라금속은 동신스텐에 가서 스테인리스판을 구매하지요. 원절기를 설정하고, 판을 올려 잘라냅니다. 금형을 꺼내 와 시보리 작업을 실시합니다. 즉 원뿔 모양을 만듭니다. 그리고 태연정밀로 보냅니다. 같은 시기에 태연정밀은 파이프를 구매해다 파이프를 절단해 둡니다. 한라금속으로 부터 스테인리스 원뿔이 오면, 파이프를 접합할 수 있게 원뿔에 구멍을 냅니다. 주문자인 태연정밀은 두 개를 진화판금으로 보내 알곤용접을 하지요. 이쯤에서 깔대기의 모양새는 완성이 됩니다. 여기에다 판금집이 제품을 승진시대빠우로 보내고, 빠우, 연마 작업이 이루어져 반짝반짝 빛나는 깔때기가 완성됩니다. 이후에 제품은 다시 태연정밀로 옮겨지고, 태연정밀은 주문을 넣은 식품회사로 납품을 하게 됩니다. 이 연결고리 역시 그렇게 특이한 건 아닙니다. 다만 작은 깔때기 하나에도 여러 업체가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시보리에 국한한다면 제작은 네모에서 동그라미로, 동그라미에서 원뿔로 바뀌는 형태입니다. 이건 원절기와 시보리 기계를 통해 이루어지지요. 기술자의 의미는 어떤 도구와 기술과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한 쪽 넘어가며] 다만 한라금속 사장님의 주된 도구는 시보리 기계와 롤러, 그리고 겨드랑이입니다. (사실 겨드랑이로 재질을 느낄 수 있다는 사장님의 한마디는 체득지식, 암묵지라는 말 정도에 그치지만, 아직 의미-결정화가 되지 않는 어떤 사실로 남아있습니다.) 한 발짝 뒤로 떨어져서 보면, 깔때기는 원심력을 제어하며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이 운동성을 중심으로 공정을 다시 상상해보면 어떨까요? 원심력은 너무 커다란 분류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아직은 두 달이란 시간이 너무나도 짧아 마땅한 답은 내리지 못하겠습니다, 솔직히. 더 만나고, 수집해보고, 연말쯤에 더 나은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지금 저희는 이러한 조사/연구를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조사를 하며 남은 궁금증 몇 가지를 정리해보며 마치겠습니다. 

입정동에는 많은 변동이 있었습니다. 거래처가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금형’의 실종이 있습니다. 금속가공 공정에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델인 금형이 필요합니다. 업체가 사라진 문제 뿐만 아니라 이 금형이 사라진 거죠. 이 경우에는 비싼 돈을 주고 금형을 새로 해야 합니다만, 이걸 감당하느니 제품을 단종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곳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걸 두고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막연히 ‘된다, 안된다’ 는 이야기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 청계천복원 시기에 대한 상인들 사이의 재평가, 혹은 이 문제가 청계천 시장의 낙후와 기술자의 게으름이라는 개인주의적 지적까지 시끌시끌합니다. 청계천이라는 시장에 필요한 건 난장이 아닌 걸로 보입니다. 외부와의 관계 유지, 주문의 유지와 정보의 관리, 다양한 기술과 공정의 확보가 필요합니다. 즉, 도심부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과 기술/정보의 중심지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시장의 기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다음의 사안을 더 신경 쓰면 좋겠습니다. 골목길이 주는 다양한 결, 상업과 공업의 공간 재배치, 업체의 단가 관리법과 같은 것 말입니다. 

우선 골목길은 낙후의 상징이지만, 이제와보니, 사라져보니 주문과 매개의 다양한 결을 보호하는 장치였습니다. 한 업체는 입정동 재개발 이후 “골목이 공사를 진행하며, 사람들이 골목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이전같으면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세운상가나 다른 공장에 연결해줬는데, 그런 경우가 요새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주문이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렸습니다만,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버린 셈입니다. 

상업과 공업의 공간이 재배치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화입니다. 최근 논의되는 vertical에 대한 논의를 기초로 조사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세운상가군은 하층부에서 영업망에서 주문을 수리하고, 상층부의 업체가 제작을 합니다. 즉, 아래에서 위로 향하게 되지요. 그러면 청계천 시장 전체를 평면으로 두면 어떨까요? 청계천 시장의 도로 인접로에 유통/상업 관련 영업소들이 빼곡히 들어차고 있습니다. 공간 내부에 있는 (심지어는 막힌 골목에도 들어찬) 공장이 하청을 받아 제작을 하고 있습니다. 테두리 주문, 안 생산, 마치 액자식의 공간 구성이 된다고 할까요? 

청계천 시장은 청계천 시장만 standalone으로 생존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연계망만 보더라도 부품으로는 미국, 서유럽, 중국과 연계되어 있으며, 생산기지는 청계천 내부와 경기도 각지로 이어져 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부품의 유통이 가능하며, 반제품의 구입이 용이한 지역이라는 유통적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노력은 자체 생산을 시도하는 것과 함께 단가 관리를 하려는 시장적 노력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현재 다양한 결 중 일부가 소거되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너무 낭만적인가요? 경로 의존의 패착일 수 있고, 어두운 미래가 올 게 분명해, 라고 하는 착잡함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 여러 사례들이 은유적으로 깔고 있는 전제는 청계천 시장은 여전히 정보가 흐르며,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장이며, 환경은 제도적인 영향으로 낙후되었지만, 기술과 기술자들은 끊임없이 변화에 적응 중이라는 점입니다. 청계천 시장은 무엇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마지막으로 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 동료들에게 더 힘내자고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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