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 완벽한 순간(들)을 기리며

전체 플레이리스트

01 완벽한 날

이천십팔년이 얼마 남지 않은 11월 31일입니다. 이번 달 제 서울살이의 일부와 함께 들을만한 노래를 전할까 합니다. 본래는 출근길, 퇴근길, 일과, 여가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지만, 갑작스런 실직으로 인해 그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적어놓고 보니, 실직한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완벽한 날들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변치 않으니까요.

Lou Reed, <Perfect Day>, 1972

02 기상청은 실패하지 않지만, 내 마음은 실패다

기상청은 요사이 예보를 틀리지 않습니다. 비가 시도때도 없이 내리는 여름도 아니고, 눈이 내린댔다가 내리지 않는 겨울도 아닙니다. 하늘은 매일처럼 뿌연 흐린 날이라, 어차피 틀릴 일이 없습니다. 완벽합니다.

Night Off, <오늘의 날씨는 실패다>, 2018

03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밤

올해 가을밤은 꽤 살만 합니다. 어차피 컴컴해서 공기가 좋은지 나쁜지 보이지 않고, 편의점 말고는 갈 곳이 없으니 돈을 쓸 곳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밤에는 꽤 살만 합니다. 흐릿한 달이 동그라미에 가깝게 뜬 날이 많아 몸이 달아 오릅니다. 몸치이지만 방에 쪼그리고 앉아 춤을 추는 상상을 하는게 좋습니다. 올 한해도 곧 끝날테니 내년에는 정기적으로 나갈 어딘가가 있길 바라는 의식을 치루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열심히 춤을 춥니다, 그러니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와서 몸무게 앞자리를 바꿔줬으면 좋겠습니다.

프롬, <달밤댄싱>, 2015

04 골목길은 연극무대

낮에는 할 일이 없어 골목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조사의 목적도 아니고, 그냥 살이나 빼자며 산책을 하려 나섭니다. 대개는 짧게 십년, 길게는 이삼십년을 오가는 골목들입니다. 몇 곳은 아파트단지로 바뀌었고, 어떤 곳엔 붉은 톤이 섞인 플래카드가 가득합니다. 동네가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지만, 그랬다가는 조금 더 큰 빌라나 아파트로 바뀌겠다 싶어 생각을 조심해봅니다. 그래도 멋부린 동네 사람 몇이 동네사람 욕을 하면, 괜히 끼어들어 “맞죠, 그래요, 아파트가 개발되면 좋겠네요”라 맞장구를 치다가 후다닥 도망쳐 나옵니다. 오늘의 연기도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옆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던 할아버지 얼굴이 자꾸 생각납니다.

김동산, 삼각전파사, <수원 지동 29길>, 2016

05 글을 못 쓰는 이유

얼마 전엔 한 잡지사 기자가 찾아와 재활용품을 줍는 노인들에 대한 의견을 묻더군요. 노인을 둘러 싼 관계망을 그리며, 제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기자의 표정이 절도(絕倒)와 오만상을 오가더군요. 최선을 다해 보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말했습니다. 기자는 복잡해진 심경을 토로하더군요. 나는 할 일을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제 글은 안써지는 걸까요? 말은 참 잘 하는데 말입니다.

이호석, <귀를 기울이면>, 2013

06 독립000가 돈을 버는 일

저는 정해진 날짜에 돈을 받는 일에 둔감합니다.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 때 일을 하고, 일을 마칠 즈음에 돈을 받기 때문이죠. 카드값 결제일은 정해져있지만, 한 달 전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이번 달의 지출 규모를 정합니다. 어쨌거나 카드 결제일은 월급쟁이들과 비슷한 마음이 들긴 합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네, 뭐 이런 말은 못 하지만 그날이 지나면 잔액은 0에 수렴하고 있습니다. 아, “눈 깜짝하면 사라지지만”이라는 말은 할 수 있겠군요.

스텔라장,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2017

07 잘 가, 신혼시절

한 후배가 충청도로 내려가겠다고 말하더라고요. 서울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고, 덜 벌더라도 덜 쓰는 곳으로 가겠다고 말합니다. 사는 동네가 재개발 대상구역이 됐는데, 벌이가 마땅치 않아 오르는 전세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떠나려 하니 달콤씁쓸했던 신혼시절이 끝나는 기분이 들어 애잔하다 합니다. 추억 하나 두고 떠난다는 멋도 없는 말을 합니다. 언젠가 돌아올지 모르잖아,라 말하니 그때엔 지금과 다르겠죠,라 답을 하네요.

김해원, <불길>, 2016

08 절룩인다는 거짓말을 기리며

11월 6일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이 세상을 떠난 날입니다. 제가 스물이 되는 해에 그가 데뷔앨범을 냈습니다. 그는 다리가 멀쩡하지만 사실은 절룩거리는 팔자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그 고백을 한참동안 들으며 다녔습니다. 또 그의 노래 덕에 361번 버스를 타다 구도심을 관광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2010년에, 벌써 8년 전에 죽었네요. 제게 거짓말 한 전력이 있지만, 저는 그의 노래가 좋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거짓말을 덜 했거든요. 게다가 그는 (어쩔 수 없이) 투잡에 능했습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치킨런>, 2008

09 각자도생

11월 9일, 종로의 한 고시원에 불이 났습니다. 그나마 설치된 화재감지시설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11월 24일, 서대문에 불이 났습니다. 소방방지시설이 없었습니다. 119시스템과 112시스템이 먹통이 됐습니다. 인과관계를 더 밝혀야 하지만, 시스템이 먹통이 된 사이 심장마비가 온 할머니 1명이 사망했습니다. 11월 27일, 민방위훈련에서 사람들은 화재 대피훈련을 했습니다. 아직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사회인가 봅니다.

Jeff Buckley, <Hallelujah>, 1994

10 블루스를 부르는 앵무새

한 음악가가 “이 비참한 패배를 살아낸다. 어둠으로 당당히 걸어간다. 우리는 오늘도 실패에 동참한다”는 가사를 붙인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회의 이면을 조사하는 일인이라는 마음으로 목청 높여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다음 날 오후 영등포역 뒤편에 걸어들어갔습니다. 심장이 두근두근 뜁니다. 발걸음이 빨라집니다. 사람들을 지나치기만 합니다. 사실 저, 노래는 부를 줄 아는데 대화 할 줄은 모르더군요. 따져보면 블루스를 제대로 들어온 게 아닌가 봅니다.

김일두, <문제없어요>, 2011

11 잘난 체냐, 함께 놀기냐

웨딩촬영이 얼마 안남아 두 달 만에 미용실에 갔습니다. 안면이 익은 스탭 중 한 명이 <We will rock you>를 아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이야기를 해서 영화를 봤다면서요. 그 노래가 Queen의 노래인지는 몰랐지만, 어릴 적부터 들어 본 노래라 따라부르고 있더라면서요. 저는 Freddie Mercury보다는 Lou Reed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 카라의 <Rock You>(2008)를 읊조렸습니다. 스탭이 따라 부르더라고요. 훌륭한 협연이었습니다.

카라, <Rock You>, 2008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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