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 아파트에 산다는 꿈이 남긴 건 무어지? 돈 혹은 서글픔은 아닌가.

<도시연서> 2018/10

한 때 아파트는 위험한 주거지였다. 연탄보일러를 처음 들인 1960년대 아파트에서는 안정성을 입증하겠다며 실험용 쥐를 방에 풀었다. 1970년 4월 8일에는 와우아파트가 무너졌다. 관료와 글쟁이들이 문화주택이라 불린 이 아파트 방문기를 언론에 흩뿌렸지만, 사람들은 아파트에 살기를 갈구하지 않았다. 이때만해도 아파트는 도시빈민용 주거지 중 하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아파트는 중산층의 주거지로 변했다. 강남개발과 메가스포츠로 이어지는 변화 속에 주택공사는 반포(1971-1979), 잠실(1975-1978), 둔촌(1979-1980), 개포(1981-1984), 고덕(1982-1985) 지역에 아파트를 지었고, 이후 상계(1986-1989), 창동(1988-1991), 번동(1989-1992), 등촌동(1993-1995)에 아파트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분당(성남), 일산(고양), 중동(부천), 평촌(안양), 산본(군포)의 1기 신도시가 만들어졌고, 아파트는 수도권을 넘어 지방에까지 중산층의 주거지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1990년대 영세한 건축업자들이 단독주택을 허물어 다세대 주택(공동주택, 세대별 분양 가능, 1984년 도입)과 다가구 주택(단독주택, 세대별 분양 불가, 1990년)이 확산되었다. 모두가 그러한 건 아니겠지만, 빌라는 중산층의 꿈을 이룰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도시민들의 주거지가 되었다.

우리는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를 지나오며 많은 변화를 갖게 됐다. 게다가 이때의 문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상태다. 개발 당시에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의 격차에만 주목 해왔으나, 이제는 신시가지 내부에서의 격차 역시 풀어야 할 숙제다. 예컨대 주거와 자녀 교육이 긴밀한 한국 사회에서 “X거”라는 표현은 공고해진 차별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휴거”, “주거”, “빌거”라는 차별적 언어가 만들어졌는데, 휴거란 휴먼시아 거지, 주거란 주공아파트 거지, 빌거란 빌라에 사는 거지의 줄임말로, 오랫동안 쌓인 차별의 결과로 보인다. 심지어 LH는 자신의 브랜드인 휴먼시아가 가난한 집의 이미지라는데 난색을 표하며 브랜드를 폐기해버렸으니, 최근의 가벼운 사건으로 볼 수는 없다.

이제 또 다른 개발의 폭풍이 몰아친다. 1980년대 지어진 주공아파트 가운데 상당수가 재건축이라는 궤도에 올라섰다. 각 조합은 시행사로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다. 둔촌주공아파트는 잠실 바로 옆인데다, 학군이 좋고, 재건축 단지 규모의 크기가 크다는 이유로 부동산 투기의 주요 대상으로 손꼽히는 상황이다. 혹자는 둔촌 재건축 단지의 34평이 20억, 43평이 25억을 상회할 거라는 ‘분석’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다시금 매매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오를 만큼 오른 규제지역의 아파트 뿐 아니라 비규제지역의 아파트까지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아파트는 드라마틱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데다, 시장이 크고, 상품으로서의 아파트는 표준화되어 있기에 거래하기 좋은 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임대를 통해 정기적인 수익도 올릴 수 있지 않은가. 빌라는 여전히 돈을 덜 가진 자들이 살고 있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천 만원, 이천 만원을 들고 온다. 돈 있는 자들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 정도만을 내는 갭투자를 하며 그 집을 산다. 그리고는 아파트 단지로의 재개발을 운운한다. 이 서글픈 풍경은 은평 뉴타운 이래로 쭉 이어지고 있다.

2016년, SH공사는 장기전세주택을 홍보하며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카피를 내놓았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SH공사 역시 아파트를 단위가격으로 평가되는 상품으로 간주하며 생산·매매하고 있는 주체라서 그런지, 그 진의가 의심스럽다. 변화 없이 선전물의 이름만 바뀌는 상황에서, 지금의 아파트들은 3-40년 후가 지나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한 신문사에서 “인구구조가 바뀌어야” 아파트 집중의 문제가 풀릴 거라는 서글픈 답을 내놓긴 한다. 또 다른 이들은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두고, 다음 내용을 주문한다. 정부를 비롯한 시장은 인민의 주거권을 지켜야 하며 인민들은 주택을 투기의 수단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직은 선언적 당위성을 논하는 수준이지만, 주거권의 대상과 역할에 대한 난상이 필요하다.

꿈의 아파트여! 죽은 아파트여!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 ‘빌거’를 아시나요

잇단 규제에도…”서울 주택 ‘갭투자’ 1년 새 2배로 증가”

공기는 바꿔도 아파트 대체 쉽지 않아“…인구·문화 바뀌어야 대안주택 나올듯

집은 인권이다한목소리도심 거리로 나선 사람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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