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한 여성의 어떤 삶

이 글은 『걷고싶은도시』96(2018가을호)에 기고한 글이며,  일생활균형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일생활균형재단 WLB연구소, 2016『지역 사회 직업경로와 조직문화 연구: 동남권 경제벨트 20-50대 제조업노동자 생애사를 중심으로』”에 수록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기초로 재구성하여 작성했습니다. 또한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웹에서의 가독성을 위해 각주를 제거한 상태이니, 더 정확히 읽고 싶은 분은 위 링크를 눌러 pdf로 읽어주세요. 

그림: Bauhaus Stairway, 1932, by Oskar Schlemmer depicts women climbing the stairs of the German design school (Credit: Alamy)”

홍서현은 울산 동구에서 살아왔다. 그녀의 아버지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직업군인으로 일했고, 1982년, 다른 일을 찾아 울산의 현대중공업에 취업했다. 그렇게 가족이 모두 울산 동구로 이주해왔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버님 직업이 뭐냐, 뭐 손들어 봐라”하면 “대부분 (아버지가) 중공업(에) 다니시는 분들, 아니면 자동차 다니시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분위기였다. 그래선지 동구는 어릴 적에 ‘동구 아일랜드’라고 부를 정도로, ‘살기는 되게 좋은’ 장소였고, 이곳에서는 누구나 ‘생활환경이 거의 다 비슷비슷’했다.

울산이 약간 보면 동구가 이렇게, 동구 아일랜드라고 해요. …… 어렸을 때는 근데… 그때 당시는… 뭐가 많이 없었고, 놀 것도 없고 그래서… 그랬는데 지금은… 네. 동구가, 제가 뭐 나와 살아서 …… 동구가 살기는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복지나, 이릏게[이렇게] 중공업이 한참 잘나가던 그럴 때, 이제 복지나 이런 게 되게 잘 되어 있어 가지고. 네. 살기는 좋은 것 같아요. …… 동구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대부분 아버지가 중공업 아니면 자동차니까, 생활환경이 거의 다 비슷비슷 했죠, 네.

초·중등학교 때에야 별반 다를 바 없었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누구 아버지는 이사다, 누구 아버지는 뭐 부장급이다, 사택에 산다”는 이야기를 아이들끼리 나눴다. 어디에 사는지를 아는 일은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는 일이었다. 사택은 임원에게나 제공되었고, 아파트에 사는 자신을 보며 “우리 아버지(는) 회사원이구나”라며 담담해졌다. 서현과 그녀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는 1980년대의 노동자들이 사는 ‘새 중산층’의 보금자리 중 하나다. 이 아파트들은 1990년대 초, 낡은 사택단지와 사원아파트들과 같이 연립주택과 5층짜리 아파트들로 구성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집단주거지를 헐고 지은 15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들 중 하나다. 동구 곳곳에 있던 판자촌들 역시 철거됐고, 그 자리는 고층아파트 지역이 되었다. 혹자는 “노동자 집단거주지로부터 전형적인 중산층거주지와 같은 모습으로 탈바꿈시켰다”고 평하기도 한다. 게다가 1991년부터 현대중공업은 동구 지역에 복지·문화 시설을 설치하며 지역문화와 복지활동을 재조직화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규직노동자와 그 가족이 누리는 문화수준은 울산의 다른 노동자들과의 격차가 있었다. 물론 이전까지 지속된 ‘노동자 계급의 문화와 공동체가 해체’되었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만, 서현 가족은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며 울산의 중산층으로 진입했다.

앞서 서현이 말한 대로 동구에 사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생활환경을 갖게 됐다. 그렇지만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경쟁과 압박이 끊임없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청소년기의 학교생활과 대학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동구사람들의 경우, “이웃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이 지역 가족의 삶은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할 수 있는’ 비슷한 경제적 생활기반을 배경으로 사교육도 비슷한 내용과 수준으로” 이뤄졌다.

그녀가 다닌 고등학교는 평준화 이전에는 무척 유명한 학교였다. 일종의 우열반과 같은 형태의 반 분리를 경험하고, 시험결과가 나오면 성적표를 교실 앞에 붙이기도 했다. 교사는 심화반에 선발된 학생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불렀고, 뽑히지 못한 아이들은 하교 준비를 할 뿐이었다. 몇몇은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일요일에도 학교 가서 공부를 했다. 게다가 시내에 있는 유명한 학원을 오가고, 집에서 영어와 수학을 과외를 받는 사교육을 경험했다. 서현은 경쟁이 일상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녀에게 대학을 고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울산에 소재한 대학교의 식품영양학과와 부산에 소재한 대학교의 화학공학과에 합격을 했는데, “울산을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에 부산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녀는 대학생활 동안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해 본적이 없었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정규직 노동자로 ‘학자금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서현은 부산에서 만난 울산 출신의 20-30대는 다른 지역의 같은 또래들 전반과는 달랐다고 말한다. 대개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학자금 지원이 이뤄졌고, 집에서 경제적으로 지원하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이다. 서현은 “부모님한테 다 백프로 원조 받아서” 캐나다로 1년 간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취업전선에 서자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힘들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권과 부산 등의 회사에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을 할 수 없었다. “서류 넣는 족족 떨어지고. 그러다보니 졸업은 하고” “취업이 잘 안되다 보니까. 울산에서 알아봐야 되겠다 해서 그냥 집으로” 와버렸다. 게다가 아버지가 60세가 되어 퇴직을 했고, 다른 회사에서 촉탁직으로 2년을 채운 후, 현재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서현은 가장이 되었다. 고향인 울산에 돌아와 관내 경찰서에서 경리로 일했고, 한 구직 사이트를 통해 부산의 한 회사에 들어가 설계를 배웠다. 부산의 회사가 포항으로 옮기며, 업종을 변경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울산으로 돌아오기로 마음을 먹고, 파견직을 알아봤다.

근데 망했죠, 친구랑 같이 가서.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친구가 이제모르겠어요, 여자이고 하다보니까 부모님들이 이제 혼자 보내기는또 그랬고. 친구도 뭐 이제 그래도 먼 타국까지 가는데 이게 또 좋은 경험 해보는 것도 좋지 않냐, 같이 가자 이래 해가지고. (중략) 그래도 제가 제 돈으로 간 것도 아니고 부모님한테 다 백프로 원조 받아서 (캐나다 어학연수) 간 거고 하니까. 열심히 해야지4학년 때 토익 공부며, 뭐 그런 거 하긴 했는데결국은 전공 아닌 뭐다른 길을 선택을 하긴 했지만. (중략) 그때는 그냥진짜 뭐울산에 이런 공단, 이런 쪽도 많고 하니까. 그런전공 관련 분야 뭐 이런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하긴 했는데.. 이게 또서류 넣는 족족 떨어지고그러다보니 졸업은 하고. 취업이 잘 안되다 보니까. 울산에서 알아봐야 되겠다 해서 그냥 집으로 와버렸죠. (중략) 이제 지인분 소개로 그여기 울산에 보면 00 경찰서에 경리 일을 했었어요.

알다시피 모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남성에 비해 정규직 채용비율이 현저히 낮은 게 현실이다. 이렇게 여성들은 파견직 근무로 눈을 돌리게 된다.

중공업에 보면 파견직 2년, 중공업 계약직으로 2년 이렇게 있는데, 파견직은 이제 업체가 한 몇 군데 있어요. 거기를 통해서 이제 원서를 넣어서 면접 보고 이렇게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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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현대중공업 파견직 공고 (출처: http://kr.indeed.com 검색결과)

파견직의 근무 조건을 한 번 살펴보자. [그림 1]은 모 업체에서 내건, 현대중공업 일반 사무직 파견사원 공고다. 하청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대중공업에서 근무를 하지만 다른 회사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을 가리킨다. 파견업체 소속으로 2년을 일하고, 대개의 경우에 현대중공업의 계약직으로 2년을 더 일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견직을 ‘4년 짜리’라고 부른다. 파견직은 보통 사무직과 프로그래밍, 설계 등의 기술직으로 나뉜다. 여성의 경우, 상당수가 사무직으로 일을 하고, 기술을 가진 소수의 여성들은 기술직으로 지원을 한다.

서현의 경우는 이전 회사에서 도면 설계를 배워둔 덕에 파견직으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사실 그녀는 중공업의 ‘파견직’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을) 보면, 중공업에 계약직(파견직)으로 많이 들어갔었”다. 그/녀들을 보며 “나는 (파견직으로) 안 들어갈거”라며, 다른 길을 갔다. 그러나 친구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다. 울산에서 “4년만 (파견직을) 해도 결혼할 돈(이)” 모인다는 건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울산에는 스무살 때 파견직으로 들어가면 최대 4번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전설도 있다. 파견직으로 일을 하는 동안은 분명 하청업체에 비해 더 나은 계약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다. 서현은 파견직일 때 약 250만원을, 계약직일 때 약 266만원을 받았다. “빨간 날 다 만큼은 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감수해야 했다. 왜냐하면 한 회사에서 파견직 2년과 계약직 2년을 한 후엔 더 이상 연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파견일 때 (연봉이) 3천 좀 안됐나? 하여튼 계약직 넘어가면서부터는 한 (연봉) 3천 2백. … 그거는 엄청 좋았죠. 이래서 대기업을 다니는구나 싶었어요. 왜냐하면 노조 창립기념일 쉬죠, 뭐 투표하면 빨리 퇴근해라 뭐 하죠. 휴가 2주 주죠. … 특근비, 잔업비, 다 나왔죠.

‘사원증’이 발급되는데, 이 사원증 안에는 계약상태가 드러나지도 않았고,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문화 생활 같은 거 즐길 수 있는… 사원증 있으면 식당 얼마 할인 되고, 빵집 할인 되고, 이게 다 왜냐면 중공업 이 계열이니까. … 영화 보는데 할인되고. … 예술회관이라고 거기 이제 공연장이랑 영화관이 있어요. 그런 데도 사원증 제시하면 30%, 공연도 30% 뭐 막 이런 거 할인되고. 그런 건 진짜 좋았죠. 그런데 그게 계속 파견직, 계약직들의 복지가 날로 날로 좋아진 거예요.

이전에는 사번을 보면 계약상태를 알 수 있었다. 가령 A로 시작하면 정규직이며, S로 시작하면 파견직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통일이 되어 있어서 정규직과 파견직 간의 외견상의 차이는 없었다. 게다가 영화관이나 공연장에서 정규직은 50%가량 할인을 받을 때, 계약직은 30%, 파견직은 10%로 차등을 뒀지만, 이 역시 사라졌다. 복지혜택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사원’이었다. 그러나 온전히 같은 건 아니다. 상여금은 정규직에 비해 낮은 수준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뭐 만약에 상여금 이런 거 받는다 치면, 일할계산. 뭐 6개월, 뭐 입사한 지 6개월 안 된 사람은 뭐뭐 50%, 1년 이상 된 사람은 100% 다 받고 뭐 이런 거. 뭐 정규직의 뭐 50%를 받거나, 뭐 그런 기준들이 있었어요.

파견직의 문제는 단지 급여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파견직은 말 그대로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파견되어, 현대중공업에서 근무를 한다. 파견직은 승진이 없다. 모두가 ‘사원’일 뿐이다. 그저 파견직으로 2년, 계약직으로 2년을 일할 뿐이다. 정규직은 엄밀히 비정규직 상태인 파견직과 계약직의 위에 위치한다. 그렇기에 파견직/계약직은 정규직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그래도 4년을 거기에서 일을 하잖아요. 그러면 만약에 내가 한 3년 차, 4년 차 됐는데 밑에 사원이 갓 들어왔어요, 정규직으로. 근데 이 사원이 막 일을 막 아랫사람처럼 막 이렇게… 뭐해줘. 그런 것도 뭐 없지 않아 있었고. 내가 일은 더 많이 했는데, 얘가 일을 주는 애, 그러니까 연수로 따지면, 쟤는 이제 갓 새내기인데, 일을 주는 역할 이런 것도 있었고.

게다가 파견직/계약직은 별다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종종 경력이 더 긴 ‘계약직’들이 파견직에게 기술을 전수해주기도 하지만, 이건 개인의 선의로나 이루어질 뿐, 따로 교육을 할 여건이 없다. 서현은 현대중공업 내부에서 발생하는 정규직과 파견직/계약직의 차이를 ‘교육’으로 기억한다. “정직원은 교육을 다 받는데 계약직한테는 안 가르쳐” 준다고 말이다. 그러나 “일은 똑같이 준다.” 업무를 하기 위해 익혀야 할 기술이 있음에도, 파견직/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교육에서 배제된다.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종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부족한 기술로 과다한 업무를 맡아야 하는 처지라,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사적으로 친분이 있기 전까지는 물어보기도 힘든” 분위기가 형성된다. 가끔 열리는 교육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실무는 정작 안 가르쳐주고 필요없는 기본 지식 교육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파견직/계약직의 경우에는 실무에 대한 기술과 노하우가 전수되기 힘들다. “굳이 내가 그렇게 힘들게 해서 왔는데 나는 여기에 뼈 묻고 뭐 오래 다니고 이럴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굳이 가르쳐줘야 되지”하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라 여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서현은 파견직 이후 하청업체로 이직했다. 하청업체의 정직원이라 하더라도 결혼 이후에도 일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여전하다. 서현만 하더라도 출산 이후 경력단절을 예상하며 초기 진입단계부터 재진입이 수월한 ‘설계’ 직종으로 직업을 선택했으며, 이후에 자격증을 통해 재진입이 용이하도록 자기계발을 수행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경력단절’은 피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로 여긴다. 여성의 경우, 파견직, 계약직의 순환 고리를 거치며, 또한 원청에서 퇴직 후 하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결혼준비에 대한 공포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의 제도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공포로 변한다.

출산을 하고나서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제가 지금 걱정이 그게 제일 걱정이 돼요. 육아휴직이랑 출산휴가. 이게 지금 그런 전례가 없어가지고, 이 회사는. 그런 걸… 좀… 아무래도…. (중략) 저도 결혼을 앞두고 있고 그러니까 이제 계속 미래가 이제 걱정이 되는 거예요. 막상 뭐 남편만 바라보고 애만 키우고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아무래도 외벌이가 힘드니까. 그래서 이제 예비 신랑도 (제가) 일을 했으면 하는 거고. 근데 애는 만약에 출산하면 애는 어느 정도 키워놓고 이제 저도 물로 직장, 여자들이 직업이 있었으면 하는 것… 남은 평생을 맨날 애만 보며, 집안일만 하며 보내는 것도 좀 아니다 싶어서 그래서 지금 이 회사를 이제 그만두고 나면 물론 제가 설계 일을 하면서 캐드 웬만한 건 다 하긴 하는데 자격증이나 이런 걸 따볼까 하고 있거든요.

홍서현은 인터뷰를 진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했고, 계속 울산에 거주하고 있다. 다만, 현재는 일을 그만두고 가정주부가 되었다.


나오면서

따져보면 원청회사의 정규직 아버지를 둔 홍서현은 ‘전형적인 중산층 거주지’와 같은 모습으로 구성된 제조업 노동자 주거지역을 중심으로 비슷한 경제적 생활기반을 배경으로 비슷한 수준의 사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의 삶의 모형을 학습하며 자라며 원청회사가 주는 복지혜택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울산의 노동자’와 ‘정규직 아버지’라는 삶의 모형은 지역에서의 이주라는 선택지와 함께 ‘벗어나고 싶은 모델’로 이해된다. 그러나 경기 불황 이후, 그리고 산업구조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후속 세대의 상황은 아버지 세대와 크게 차이가 난다. ‘아버지 세대가 가지고 있던 장기적인 근속 환경도 보장되지 않는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기본적으로 정규직 채용비율이 현저히 낮아 파견직으로 주로 채용되는데 이는 하청과는 다른 방식으로 중공업에서 근무를 하지만 다른 회사 소속으로 파견된 직원을 뜻한다. 파견직의 경우 파견업체 소속으로 2년을 일하고 계약직으로 2년을 일해 ‘4년짜리’라고 불린다. 파견직은 여성의 취업과 이직을 제한하는 장치로도 보인다. 생애주기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20대 후반 ‘결혼’을 할 것이라 가정되는 존재이기에 재취업과 이직의 단계를 막고, 어린 나이의 여성을 위주로 취업시키는 방식인 셈이다. 그러므로 파견직의 계약이 종료되면, 여성들 대개는 신입으로 입사를 하거나 보다 낮은 계약조건으로 하청업체에 취업한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이라는 상황에서 또 다시 노동시장에서의 배제를 경험하기 쉽다.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해도 회사는 계약직의 경우에 이를 업무의 단절로 이해하고 가급적 기피하려 한다. 오늘 돌아 본 홍서현의 삶은 모두와 물론 다르다, 게다가 개인의 노력하는 삶이란 훌륭하다. 그러나 서현이 비수도권 시민, 청년,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그녀가 사회에서 처한 상황들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 익숙함이 낯설게 되게 무얼 해야 할까, 우리는 답을 찾아야만 한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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