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를 보라”

도시연서 17-5에 기고한 “대지를 보라” 소개
http://www.dosi.or.kr/newletter/소준철/

아카마 가후 짓고, 서호철 옮긴 “대지를 보라”(아모르문디, 2016)

친한 친구가 도시를 어떻게 정의할지 물어왔다. 사전을 펼쳤다. “일정한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은 지역”이란다. 고개가 갸울어진다. 뭐라 말해야 할지 무척 난감했다. 연구자(지망생)으로 ‘사람이 많은’ 동네라 하기엔 격이 떨어지고, ‘도시의 빈곤’의 연대기를 적는 처지인데, 국가의 ‘중심’이라거나 발전의 주체라거나 시골과 대립한다는 식의 정의는 어딘가 한 편이 깨져있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한 마음에 책 한 권을 꺼내 긴 설명을 읊어줬다.

도시는두가지상반된얼굴을갖는다. 한편에는우뚝솟은건물들, 차량과인파로붐비는거리, 쇼윈도를장식한최신유행의상품들, 거리를어슬렁거리기만해도볼거리가넘치는화사한도시의얼굴이있다. 그것은자연을극복하고이룩한인공낙원, 모던의상징이다. 그러나뒷골목이나산동네, 다리밑으로대표되는도시의또다른얼굴은빈곤과굶주림, 범죄, 유혹과타락같은전혀다른모습을보인다. 사람이사는곳이면어디든빈부의차이는있을테고돈으로사고파는쾌락과만족의뒷면에는상품화된노동과성의비참함이있겠지만, 도시에서는빛이선명한만큼그늘도더욱짙다.

많은인구가밀집한도시는숙명적으로식량공급, 주거와교통, 공중위생을문제로떠안고있다. 그런문제들을제대로해결하지못하면도시는말그대로인구를집어삼키는죽음의늪이된다. 늘가장불리한상황에처하게되는것은빈곤층이다. 그러나칼맑스가정확하게짚었듯이도시가필요로하는상품과서비스를저렴한가격으로공급하기위해서는실업자와빈곤층이일정규모로유지되어야한다. … 도시의빛과어둠의대립은구조적인문제다. 도시의문명은도시의빈곤과비참없이는유지될수없다(4).”

이 문장은 내게, 도시에 대한 정의는 아니지만, 훌륭한 전거(典據)다. 화사한 정면과 그늘 짙은 이면이라는 이 두 얼굴은 도시에 공존한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불쑥 두 얼굴이 등장할 수도 있고, 서로가 피할 수도 있다. 도시의 두 얼굴은, 문명과 빈곤 각자의 얼굴이다.

어쨌거나, (앞으로 다듬어 볼만한) 이 탁월한 서술은 『대지를 보라: 1920년대 경성의 밑바닥 탐방』(아모르문디, 2016)란 책 맨 앞에 놓인 역자의 서문의 서두다. 이 책은 경성에 사는 일본인, 재조(在朝)일본인인 아카마 기후라는 자가 적어 1924년에 출판했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는 (일본의 대륙 침략에 발맞춰 조선이나 만주나 중국에서 활동한 메이지기 사무라이 출신들을 가리키는) 대륙낭인(大陸浪人)일지도 모르고, 일본의 대륙 침략을 측면에서 지원한 국수주의 단체의 회원이었을 지도 모른다 한다. 1910년대 후반에서 1920년대 초반까지는 경성에서 기자로 살았다는 것만 확인가능하다고. 어떤 자인지 특정할 게 별로 없는 묘한 인물이다.

글은 더욱 묘하다. (역자가 다시 재배치한대로) 변장을 하고, 청소부가 되었다가, 넝마주이를 만났다가, 술집에서 일어난 활극을 목격하고, 감옥에서 갓 출소한 사람을 뒤따른다. 이뿐 아니다, 조선인 하층민을 적어보겠다며, 거지 아이와 (신발을 수선하는) 신기료, 마바리꾼[마부], (뱀 잡는) 땅꾼과 거지, (움막을 짓고 사는) 토막민, 도축인부, 거지 벼락부자 등을 만나고 기록한다. 신변잡기와 호기심 채우기에 머물지는 않는다. 저자는 기록을 하다말고 “우리는 사회를 위해 연구하고 또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라는 사회를 위하는 지사(志士)의 목소리를 내놓는다. 또한 당대의 성매매 여성을 기록한다. 유곽과 유곽 바깥에 자리잡은 요정, 요릿집, 음식점, 술집, 카페 등에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관찰까지. 경성은 제국일본의 법이 지배하면서도 자체의 관습을 가진 도시이다. 저자로서는 주된 독자였을 남성들의 관음증을 만족시키려 성매매와 그 인물들을 선택했겠지만, 당시 사회의 남성 중심성과 그 실체를 두텁게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한 가지 난감한 게 있다. 지금껏 거의 알지 못한 재조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정상적이라 알려진대로, ‘지배-피지배’라는 식민지사회에 대한 거대한 구도를 생각해보자. 조선총독부는 두 말할 나위 없이 지배자 주체로 여겨지고, 크고 작은 자본가와 지주, 관료, 지식인, 지역유지들이 있었다. 그러나, 재조선일본인 모두가 지배민족, 식민지배자로서의 특권을 누린 건 아닌 모양이다. ‘식민지로 건너와서도 성공의 기회를 잡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저자는 이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이들 중엔 법률책 팔이나 (길거리 가수인) 엔카시, 경매상, 엿장수나 칠성장어장수와 같은 행상과 노점꾼, 싸구려 조선인 여관에 사는 전신인부와 땅콩장수와 광산꾼과 불명의 하층노동자도 있고, 풍각쟁이도 있다. ‘지배자 일본인’이란 커다란 구도의 빈틈을 보는 살피는 기묘함이 있다.

묘한 저자만큼이나 역자와 역자의 ‘공’ 역시 묘하다, 고백한대로 “본문 곳곳에 저자만큼 자주 고개를 내밀고 해설과 각주를 붙인”데다, 서문과 후기를 이용해 탁월한 해석을 빼곡이 적어 붙였다. 1924년의 글이 뜨거운 육성과 한숨, 땀과 때로는 피 냄새가 밴 현장감 넘치는 르포르타주의 맛을 유지하면서,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는 관음증과 (선정과 괴기를 팔아먹는) 옐로 저널리즘의 부산물로만 보여지지 않는 건, 역자가 고개를 내밀어 촘촘하고 두터웁게 당대 사회 구조를 설명해준 덕이다. 게다가 역사로 치부하지 말자, 도시는 거대한 물류 사이를 잇는, 작거나 불법인 물류가 이루어지는데다, 이런 것들은 여전히 ‘대지’의 그늘 짙은 이면에 사는 사람들 몫이다. 도시란 이런 것이지 않은가,를 사유하는 이들에게 권한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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