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단신] 우체부 구보씨의 일일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뉴스레터 도시연서 2017/6에 게재한 “도시단신”입니다.

“구보씨는 한 지식인이 신경숙의 “외딴 방”에 대해 떠드는 소리를 듣고는 큰숨을 벌컥 들이키고 한숨을 내뱉었다. 소설 속 소녀는 매일같이 열한시 무렵에 찾아오는 우체부를 보며 도시로 떠나는 상상을 하나, 우체부는 속절없이 그 소식만은 전해주지 않는다고. 구보씨는 다른 생각을 해봤다. 시인에게 소식을 전하다 “시인과 우정을 나누는 우체부를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서글픈 일이지만, 환상과 기대 속에서도, 영화 ‘일 포스티노’의 세계는 끝난 것 같다. 어떤 세계는, 카세트테이프에 대한 추억이나 마찬가지로 나이 든 사람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앞서 적은 소설 속 장면이 해독 불가능한 시기에 접어 든 셈이니까.

우체부인 구보씨는 사실 우체부에게 사연이란 일감일 뿐이며, 자신은 그 ‘사연의 내용’을 관장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더 이상 사연을 편지에 담지 않는다. 구보씨는 자신과 동료들의 처지를 떠올렸다. ‘우리에게 세상은 여섯자리 아니면 다섯자리로 모두 표현된다. 우리는 창고에서 품물을 들고 나와 숫자들 사이를 오간다’라며 말이다. 실제로 구보를 비롯한, 우체부들은 주소를 숫자로 부호화한 세계에서 일한다. 모든 건물은 다섯자리 혹은 여섯자리의 ‘우편번호’가 배정되어 있고, 정해진 약속 코드들 사이를 오가며 사연이 담긴 편지와 소포를 옮기는 일이다. 최근 정부당국은 여섯자리 우편번호를 다섯자리 ‘국가기초구역번호’로 이름이 바꿨는데, 얼마 전 도로명 주소를 익히는데 한참 고생한 기억이 있다. 차라리 이런 걸 알아줬으면 싶었다.

게다가 구보를 비롯한, 우체부들에게 더 현격한 변화가 있다. “외딴 방”의 시대까지 오갔던 사연을 담은 편지는 거의 없다, 라디오의 사연보내기와 연애편지는 물론. 간혹 군에 간 남자와의 편지, 대개는 뭔가의 명세서, 혹은 정기구독물에 불과하다. 편지가 장사가 안되니, ‘등기’와 ‘소포’로 채운다는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지방엔 직영이 아닌 별정우체국을 들였고, 시설관리를 위한 일종의 하청업체를 만들어서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릴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저 멀리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에서는 우편물이 줄어들자 수익을 내기 위해 KFC의 후라이드 치킨을 배달한다니, 만국의 우체부들의 처지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체국이 금융업과 택배계로 진입하자, 꽤 많은 경쟁자가 생겼다. 덕분에 노동의 내용과 강도가 달라졌다. 편지가 사라졌고, 소포는 박스단위로 커졌달까. 편지(와 전보)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로, 소포는 ‘택배’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예나 지금이나 배정된 “건수”는 채워야한다, 젠장. 구보씨의 친한 동료인 미진은 택배기사와 그녀 자신을 비견하며 별 차이가 없다는 술주정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어설픈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들에게, 구보씨와 동료, 그와 그녀들의 세계를 톺아보길 부탁드린다. 도시는 어떤 누군가의 ‘생활공간’이며, 그리고 그/녀들 없이는 도시가 굴러가지 않는다. 내곁의 사람들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한 시대지 않나?

URL

집배원 노동환경 실태조사 (2017/06/09, 경남도민일보)
http://m.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39754

우편 물량 줄었지만 … 등기 소포 늘어 중노동 늪 ‘허우적’ (2017/06/26,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70626003303

1500통 배달 끝내야 밥 넘어가요 (2017/06/27,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627008012&wlog_tag3=naver

집배원 매일 1500통 처리 ‘밥 먹듯’ 초과 노동 (2017/06/26, 경남도민일보)
http://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40939

점심 거른 채 더위 속 골목 누벼 계단 오르내리면 ‘파김치’ (2017/06/26,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70626003294

‘사선’ 내몰리는 집배원 “과로사를 막아주세요” (2017/06/26, 세계일보)
http://www.segye.com/newsView/20170626003373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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