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뉴욕에, 그 첫날.

어제 오후엔 42가에서 62가까지 걸었다. M-Grid라 불리는 형태는 효율적이나, 거리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보면 거리마다의 편차가 극명한게 다소 폭력적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200년 묵은 도시 지하 어딘가엔 닌자거북이가 살고 있을 것 같다.
걷기 정말 좋은 날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적절한 온도에 얕은 바람이 살랑거렸다. 태평로 카페 어디에선가 “앞으로 또 언제 뵈려나요”라며, 아쉽게 헤어진 이 선생님을 만나러 나선 날이었다. 훌륭한 사부이자 좋은 친구인 이 선생님. (출판 과정에 대한 이해 가운데 많은 부분은 이 선생님의 전시에서 본 그 ‘자료들’ 덕이 크다.) 커피 한 잔을 들고, Columbia Univ. Press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선생님의 작업공간에서 그간의 사정을 서로 나누었고, 몇 권의 책을 보았다. 더군다나 여기까지 왔다며 읽어보라 책을 골라 주셨다. 3세계의 외딴 연구자에게 이 선물은 감격적이다. (돌아와 목차를 살펴보니, 부족하다 여기고, 궁금해하는 분야의 책들을 골라주셨는데, 너무나도 감사하다.)
작업하신 책을 살펴보고, ‘좋은’ 책들을 살펴 보았다. 최근에 데려오신 책 몇 권도 구경했다. 그 중에서 무언가를 보여주신다며 책을 딱 꺼내셨는데, “아니, 깡디드라니요!”라는 감탄의 한 문장을 내놓고 더 말을 잇질 못했다. Rockwell Kent이 그림을 그려넣은 Voltaire의 “Candide, ou l’Optimisme”의 영어판이었는데 정말 탁월했다.1929년의 책으로 내부디자인에다 고전적 요소를 적절히 변주한데다, 삽화는 한 눈에 들어왔고, 삽화들은 자연스레 연결되어 또 하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한 권을 구해다 서울에 데려가고 싶지만, 돌아와 찾아보니 정말 그 가격이 만만찮았다. 기억해두고 잊지 않기로.
실컷 책 이야기를 하다가, 브로드웨이와 타임스스퀘어를 지나 NYU 근처로 이동했다. 사라진 Shakespeare&Co.의 흔적을 보고, Cooper Union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와중에 본 Public! Theatre는 꼭 들어가보고 싶더라.) 레이거노믹스 이후 본격적으로 발동한 신자유주의 정책과 겹쳐진 80년대와 90년대의 재개발열풍에 대한 풍문이기도 했다. 뉴욕에서 25년여를 살아온 이 선생님의 기억을 들으며, 서울에 대한 내 이해는 어떨지 곰곰히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장소에 대한 기억이란 켜켜이 쌓아 놓고, 필요에 따라 끄집어내는 괜찮은 사교-장치이며, 자기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게다가 장소와 개인의 변화와 유지에 대한 역사적 증언이기도 하다.)
그리고 빌리지 요코초에 가 오키나와의 맥주와 북해도의 사케를 들고, 그간의 작업 이야기니 책 이야기니 하는 수다를 한참 떨었다. 아, 선생님이 옮기신대로 “벗과의 하룻밤 청담(淸談)은 10년 동안 책을 읽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밤이었다. 무엇보다 (안한다 해놓고는 나도 몰래) 연구자 행세를 하고 있었는데 부디 연구자 행세 그만하고 놀다 가시라는 조언에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이런 첫 날이었다. 둘째날의 아침엔 이런 첫 날을 정리하고, 일을 했다. 글을 최종적으로 넘기고, 2016년의 모든 일을 정리했다. 노트북은 캐비넷에다 고이 넣어 둘 생각이다. 남은 오후는 별일 없이 쉬다 영화를 한 편 보고, 동행할 만한 이벤트를 찾아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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