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과 나와 생계

나는 연구자-지망생으로 크게 두 줄기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여기까지 나를 이끈) 주된 작업인 근/현대 책의 사회사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호철 싸부와 원 싸부를 보며 주조한 도시와 일상과 ‘일반인’에 대한 궁금증이다. 뒤의 건 “도시와 도시인”에 대한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생애사와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의 조합이라고 할 수도 있고(도시에서만 살아 온 내 삶을 다시보는 작업이며, 떠난 마왕의 노래가 문제의 시작이라는 것도 밝힌다). 간략하게 밝히고, 자세한 내용은 결과물이 나오면 공유하겠으니 저런 짓을 하고 있구나 정도로나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래의 다양한 작업을 하는데 겹쳐진 내적 동기를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하지 않고 주변만 빙빙 돌았던 인간이라, 이참에 ‘사회학적 상상력’이든 뭐든 사회학을 하며 놓친 여러 방법에 대한 감각을 살릴 수 있는 기회이다. 물론 젠더와 환경의 분야를 다루지 않는다는 한계도 있다. 둘째는 대학원에서 만난 탁월한 싸부님들의 방식을 구경에서 멈추지 않고, 내 멋대로 체험해보는 시간이라는 거다. 이 기회는 참으로 필요한 기회이다. 잡다함은 앞으로 정리하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셋째, (훗날 있을지 모르는 ‘평가’체계에 전혀 도움은 안되지만) 결과물을 만든다는데 있다. 이전까지는 쓸모없고 빈틈많은 ‘나 혼자만의’ 완벽주의에 빠져 결과의 필요를 느끼지 못 하였다. 작년 별일사무소, 특히 승인과의 작업에서 맛본 ‘완료된’ 결과물이 주는 기쁨 덕일테다. (작업의 평가는 과정이 아니라 마무리되고 난 후 마무리 되며, 그때의 평가에 귀기울여야 다음 작업을 넘어갈 수 있다는 것도!)

이런 동기들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연구자-지망생인) 나의 생활과는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적어보겠다.

우선, 책의 사회사는 석사학위논문인 “1970년대 전통적 생활세계와 생애사적 기록: <뿌리깊은 나무>를 중심으로“에서 다루지 못한, “생애사적 기록” 다르게 말하면 르포와 민중자서전 형태에 대한 고찰이다. 학위논문의 경우에 기초 정리 수준에서 끝나버려 매우 후회한다. 이 자료들을 통해 어떤 것을 발견하였는지에 대한 답을 제기할 예정이다. 가제이지만, <뿌리깊은 나무>가 열었던 공간은 ‘또 다른 민중’이 아니겠는가. 누군가 고민하고 있겠으나, 몇몇 근대 역사이론과 당대의 자료를 엮어 그릴 생각이다.

1) 1970-1980년대 또다른 ‘민중’의 계보 그리기: 잡지 <뿌리깊은 나무>를 관통하며 (연구논문, 사회사/역사사회학: 석사학위논문 후속연구, 11월 마감.)

그리고 창재샘의 제안으로 19세기 말부터 21세기에 이르는 긴 시기 책과 인쇄의 사회사를 그려보는 작업도 마무리 할 것 이다. 특히나 인쇄기술과 출판산업의 변화에 조응하는 당대 한국사회를 쭉 정리하는 방식일 것이다. 아래와 같다. 이와 함께 현재 개화기에서 현대에 이르는 출판사와 인쇄소의 명부를 만드는 개인작업 역시 진행하고 있다. 단편적인 기초자료들만 나온 상황에서, 이를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거라 보아 시작하였다. 현재 초안 작업 중이며, 수합한 자료를 정리할 계획이다. 기존의 출판학회의 역사, 국문학사와는 다른 방향으로 근/현대를 정리하고 있다.

2) 1883-2007 인쇄와 출판업으로 그려 보는 지식사 (제목 미정, 공동, 도록 해설, 지식사, 9월 마감.)

아, 그런데 이렇게 개인작업을 하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돈. 고정 급여가 없는 처지라, 내 개인 작업만 하다가는 굶기 십상이다. 다른 대학원생들처럼 교내에서 참여하는 프로젝이 없기에 더욱 큰 문제다. (사실 연구자-지망생의 대개가 겪는 현실이다.) 사회사/역사사회학 작업의 경우에 아직 과정생인 내게 연구비지원을 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더욱이 얼마 안 있으면 싸부들로부터 독립을 해야 하는 순간은 올테고, 자립하는 방법도 알아야 하는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펀딩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분야의 연구를 찾아보았다. 현재 학계 혹은 사회에서 필요한 작업을 해야 할것 같다는 다짐은 하였다. 질문은 나에게서 시작하는 셈이니, (평생 살아온) 도시와 도시인에 대한 관심에 집중해보기로 하였다. 실천이라 과감히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의미를 갖는 (버릴 목적으로 쓰는게 아닌) 작업을 하고 싶었다.

그 첫 번째 결과가 종건과 함께 한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이었다. 일단 마쳤지만, 연구논문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가 있어 “고물상이 지탱해 온 가난”이라는 문제제기를 하자 정했고, 그리고 곧 나올 호철 싸부의 방법을 보고, 해방 후 ‘고물상’에 얽힌 가난의 사회사를 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최근 연구에 대한 기사에 제기된 문제를 역사적인 방식으로 답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 고물상의 사회사 (연구논문, 사회사/역사사회학, 9월 마감)

아, 작년의 연구의 덕이라기보다, 기초연구가 필요한 분야라 “같은 지역의 ‘도시노인’들의 생활”, 특히 생활자원의 흐름과 연구에 대한 후속 연구 역시 진행하기로 하였다. 현장연구에 익숙한 쌀-연구자 민재와 함께 민속지적 작업을 이어가기로 하였다. 7월 쯔음에는 종건도 자신의 질문을 갖고 합류할 것이다.

4) 도시노인의 지역내 자원의 흐름과 이용 (연구보고서, 공동, 참여관찰연구: “폐지수집 여성노인의 일과 삶”의 후속연구, 10월 마감)

그렇지만 말이다. 이 일로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 작업을 한다해도, 남은 2016년과 돈을 벌 길이 없는 2017년 1-3월까지 “20여만원”에 불과한 돈으로 살아야 하는 상황이다. (역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 확보를 위해 들어가는 돈이 적잖은 상황에서) 이 정도로 생활의 유지는커녕, 버티기도 힘든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 계기가 있다. 작년 내내 서울의 근현대사 답사(어느날의 서울)를 함께한 영주님과 현재 상황으로 잠시 유보한 셀프-포르노그라피 연구모임(당인리발정소)의 깐박과 함께 “세대별로 드러나는 일인식(노동인식) 차이”라는 주제의 구술 연구를 기획할 수 있었다. (무척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다!)

현재까지 연구팀에서 도합 11과명의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울산지역의 조선업 관련 인터뷰를 주로 도맡아 하고 있다. 조선업의 위기 상황 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다른 울산 지역에서의 특징과 대기업 사무직이 아닌 (‘직영’이 아닌) 조선업 노동자의 삶을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생애사를 듣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원 싸부의 수업과 작업에서 느낀) 참여자의 구술에 대한 이해를 마주하고, ‘엘리트(대상)구술’이 아닌 작업의 필요도 가져 본다. 작업을 더 진행해야 두터운 해설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5) 세대별 일 인식 연구: 경상지역 제조업 20-50대 노동자의 이야기 (연구보고서, 공동, 노동-구술연구, 7월 마감)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이 기회 덕에 삶의 질은 이전보다 휙 올라갔다해도, 내년 4월까지 평균 월 50여만원의 생활비로 살아야 한다. (연구비의 적고 많음의 문제가 아니라, 딱히 연구비 지원을 받기 힘드나 들어가는 돈이 적잖은 대학원 생활의 구조적 문제이다. 이럴 때면 BK21과 같은 악마의 계약 마저 부럽기도 하다.)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는 와중에 또 다른 제안이 들어왔다. 이 제안 앞에서는 걱정이 많았다. 앞의 작업들이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리는 역사적 접근에, 몸으로 뛰는 현장-참여관찰을 통한 접근에다 인터뷰와 녹취록 해석과 같이 이중작업을 해야 하는 구술방법론을 택하고 있다. 그렇기에 도저히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밀도를 보장하는 연구를 할 자신이 없어서, 거절할까 한참 고민을 했다. 돈보다도 이게 마땅하지 않은가.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분야에 대한 프로젝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찾아가보니 다행히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는) 서울 도시 공간에 대한 역사적 작업이다. 지난 해, 답사를 다니며 해야할 말이 있다고 여기며 기초 자료를 정리해둔 지역이 있는데, 해당 지역의 해방 후 변천을 정리하는 작업으로 보인다. (물론 더 상의해야겠지만.) 게다가 감사하게도 단순한 조교로써가 아니라 필자로 참여할 듯 싶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연구가 마감된 후에나 공개할 수 있을 법 하다.) 아주 짧게 말하자면, 한 공간을 오갔던 물건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년 답사를 통해 어느 정도 맛 본 서울에이라는 도시사를 글로 옮길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게다가 내년4월까지 평균 80만원 정도를 가용할 수 있다니!  더더욱 기쁜 일이다. (다른 업계의 사람과 비교를 하면 침울해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6) 모 지역에 대한 스토리텔링 사업 (연구보고서, 공동, 도시사, 8월 마감)

위 작업들은 6월 마감, 7월 마감, 8월 마감, 9월 마감, 10월 마감으로, 사실상 매달 마감인 상황이다. 그래도 시기에 따라 작업의 집중도를 관리할 수 있기에 두렵거나 버겁다고 느끼지 않는다. 다만, 쉬는 시간이 줄어들어 겪는 심신의 피로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을 아직 못 찾았다는게 아쉬웁다. 어쨌거나 올해는 이렇게 살고 있고, 당분간 요로코롬 살 것 같다. (여름 방학에는 사라진 시장에 관한 역사적 연구 하나가 추가될 것이다. 그리고 사이사이 짧은 글을 쓰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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