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학과 산책자

세계의 문학의 작품이나 해석에 있어서 보편적 경험은 없다. 사실상 우리에게 익숙한 문학적 논쟁들은 “서구적 전통에 의해서 형성된 문화적 반응”에 불과하며, 보편적이라고 여겨온 것은 맥락의 분별없이 남용한 것으로 보아도 될 정도로 많다(권은, 2013, 11). 박태원은 작품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근·현대 문학에서 문제시 되는 작가다. 더군다나 보들레르 읽는 법을 통해 벤야민이 제시한 “산책자(flaneur)”라는 개념은 박태원을 이해하는 주요한 방식으로 논해졌다. 그러나 권은의 문제의식처럼 파리의 ‘산책자’(와 도쿄의 ‘고현학’(권은, 2013, 12)은 메트로폴리스의 방법이며, 사실상 식민도시 경성에 이 둘의 시각을 대입하기엔 ‘맥락’이나 ‘성격’이 다르지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권은은 박태원의 창작기법을 고찰하는 개념으로 “식민도시에서의 토착민 산책자‘(native colonial flaneur)를 제시한다(권은, 2013: 17). 자유롭게만 이해해왔던 박태원과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실 “식민도시의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시각적으로도 충분히 재현하지 못(권은, 2013: 18)하며 소설 속을 산다.

경성은 파농의 말대로 ‘이중도시’(dual city)를 이루며, “텅 빈 영역”이 존재한다. 『천변풍경』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는 광교 일대를 아래의 그림처럼 옮겨놓았는데, 이 소설에서 박태원은 혼마치나 왜성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산책자가 도시 공간을 두루 살피지 않은 것이거나, 살피지 못한 것일 수 있다. (박태원의 다른 소설에서) 제국의 동경과 식민지 경성이 동시적으로 나오는 것이나,『천변풍경』에서 일본인의 공간이 제거된 조선인 공간의 삶이 기록된다[오른쪽 그림 참조]. 이런 상황은 “식민도시에서의 토착민 산책자(native colonial flaneur)”를 고려하게 만든다. 사실상 박태원의 경우를 참조할 때 ‘식민도시에서 토착민 산책자’의 산책로는 피식민 상태의 토박이 거리인 종로에 제한된다. 무엇보다 이 공간들은 (벤야민이 언급하는 파리처럼) “토박이들이 본인이 만든 ‘진짜 삶만으로’ 만든 풍경이 아니며, 이 공간은 이방인인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그렇기에 혼마치나 왜성대 일대는 산책자의 “풍경”이 될 수 없다. 즉, 조선인은 혼마치의 ‘산책자’가 될 수 없으며, 배회하는 혼부라가 어울리는 신세다. 그렇다면 종로거리의 ‘산책자’가 될 수도 없다(이 문장은 글쓴이의 생각이다. 종로 거리의 형성에 대해 수동적인, 혹은 피지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즉, 식민지배 상태인 도시에서 토착민들이 제국의 사람들을 살펴보는 시선에 대해 피해의식 혹은 열등감 등이 있다고 전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식민도시에서의 토착민 산책자”라는 수정된 개념 역시 폐기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곤 와지로가 주창한 도쿄의 고현학과 박태원의 유사성은 고려할 만하다. 첫째로는 풍속에 대한 관심이며, 둘째로는 기록이 필요해진 시기가 사회적 변동이 일어난 직후라는 점 때문이다.

(김윤식은) “고현학(modernologie)을 현대인의 생활을 조직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현대의 풍속을 분석, 해설하는 학문”이며, “사생활의 측면의 전모”를 밝히고, “소설작법을 속속들이 겉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주요한 특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고현학을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의 방법론”이라 평가했다.

첫째, 고현학은 풍속을 근대적인 방식으로 기록한다. 풍속을 그림이나 글로 설명하는데서, 『반년간』이란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신문 삽화’와 ‘지도’를 활용”한다. “통계수치”까지 더해 “도시공간을 재현(권은, 앞의 글: 26)”했다고 할 정도다.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기 위한 허구의 형식”으로써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통계’를 활용했다. 박태원 역시 통계 자료를 사용하곤 했는데,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는 통계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권은은 “경성이 복잡하고 거대하지 않은 탓에, 통계가 불필요했다(권은, 2013: 28)”고 지적한다. 고현학은 보다 “정밀한 묘사”(권은, 2013: 20)를 가리킨다.

“제목의 자의(字意)에 괴팍한 감이 불무(不無)하다. 원래 민속이란 것은 과거를 대상하고 풍속이란 것은 현실을 대상하는 것이다. 물론 민속이란 말에 관민(官民)의 ”민“ 즉 민간의 의(義)가 다분히 존재하기는 하지마는 그가 과거 그도 순전한 과거가 아니고 현재에도 잇는 과거의 잔존물을 대상하는데는 여전하다. 그러므로 영어의 Folk-lore가 제일 무난히 표현하는 것이다 .서로 교차되는 현상이 만타. 가요, 리언(俚諺, 속된 말), 수수격기, 은어, 민구(民具), 민가(民家), 속례(俗禮) 등과 비교적 호광(浩廣)한 것에는 민간 신앙, 민속예술, 연중 행사 등은 모두 민속학의 대상이 되지마는 새로 고안되어오는 의장(倚裝)의 유행 기타 장신방법의 유행은 민속학의 대상이 아니며 일부인사가 주창한 고현학의 대상이 될른지 모르는 것이다. 민속이란 말은 이상과 같거니와 내가 여기에 쓴 풍속이란 말은 과거의 잔존물이 아니고 현대에 호흡할만한 현대의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제목의 본 뜻은 연멸의 길을 밟는 묵을 것에 새 옷을 잎여서 새 호흡을 시켜서 현대에 부활시킬 수 잇는 것을 우자(愚者) 해보자는 것이다. 다시 거듭하여 새삼스레 말하면 흑과 환경과 민족성에서 양성된 민속을 토대로 아니한 여하(如何)한 문화라도 그는 장차에 자멸(自滅)의 길을 밟을 것이며 결국은 병화(甁花)의 미려연화(美麗煙火)의 휘황(輝煌)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송석하는 풍속을 “현대에 호흡할 만한 현대의 것”을 가리키며, 고현학의 대상이 될는지 모른다고 적는다. 게다가 김문집은 고현학을 다음처럼 대별(大別)한다: “일, (현대인의) 동작과 행위(를 연구하는 부문.) 일, 주거와 직장. 일, 음식과 기호. 일, 의상과 화장.”

“현현현상(現顯現想)을 통해서 현존인류의 생활과 문화상태를 분절하고 그를 종합하는 학문이 고현학이요, 상좌에다 사회학을 엄부(嚴父)로 모셔노치 안코는 살림해나가기에 절차(節次)를 일흘가 두려움이 잇는 과학이 고현학인 것이다. 이 학문은 시간적으로는 고고학과 대립하지마는 공간적으로는 민족학과 대립시켜야 한다는 것이 또한 우리의 상식이다. 웨냐하면 고현학은 최첨단의 문화학이니만치 그 연구의 대상을 문화도시에 두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고현학은 대약(大約) 다음과 같은 부문으로 대별(大別)할 수 잇다. 일, (현대인의) 동작과 행위(를 연구하는 부문.) 일, 주거와 직장. 일, 음식과 기호. 일, 의상과 화장. … 학문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호사가의 작란(作亂)과 같은 이따위 짓에서 고현학이 탄생하는 동시에 차종가두풍경(此種街頭風景)에서 경제학이 발생하고 심리학이 전개되고 민족의 금일이 상징적으로 촬영되 는것이고 국제정황이 여운잇게 연석(演釋)되는 것이다. (사회학의 기본자산이 됨은 말할 것도 없으나-) 고현학의 중대성 미루어 알지어다.“

둘째, 고현학은 “타버린 들판 위를 방황(곤: 264)”하는 자리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고현학은 관동대지진 이후 “과거에 생겨난 시골 농가 양식과 여전히 ‘과거에 갇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당면한 현재를 조사(‘일상생활에 대한 현실적 연구’)”(해리, 2006: 257)하는데서 시작한다. 고현학은 “조사활동”(곤, 위의 글: 265)이다. 하나의 조사방법으로서 “눈 앞의 존재를 학적 대상으로 존중하면서, 그것들의 분석과 기록을 수행해 나아가는 것(곤: 264)”인데 “미개인에 대한 문명인의 그것”, “환자에 대한 의사의 그것”, “범죄자에 대한 재판관의 그것”, “유토피아적인 어떤 관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무원식의 조사”에 불과하다(곤, 위의 글: 265)고 강조한다.

그러나 (박태원에게도) 고현학을 통한 (경성에 대한) 조사 행위는 하나의 학문이 되지 못했다. 권은은 『반년간』의 경우를 통해 고현학의 성립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경성에서의 시도들을 살펴보면, 방법론 정도의 시도에 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복잡한 현실과 풍속을 기록하는 일어떤 (유토피아적인) “관념”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는 구체적인 길을 그리지는 못했다. “(사용대상물로서) 재화가 사용되고 있는 장소에서 연구하는 것(곤, 위의 글: 269)”이며, “소비생활의 학문으로 성립된다(곤, 위의 글: 270)”는 곤 와지로의 말은 바람으로 남았고, 박태원의 경우처럼 기록들만 남아있다. 박태원에 대한 권은의 연구는 근대와 도시에 대한 질문에서 (주인공의 관찰행위를 주된 관심으로 삼았던 문학과 달리) 고현학의 자리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고현학은 변동의 시기에 무엇에 대한 사실적인 풍속과 “일상생활”의 기록의 필요까지를 제기함으로써 그 역할을 마쳤다.

참고문헌
권은, 2013, 「고현학과 산책자 – 박태원 창작방법의 비판적 고찰」, 『구보학보』9, 구보학회: 9-36.
류소연, 2013a,「박태원과 고현학」, 『뷰파인더 위의 경성』, 소명출판: 9-19.
류소연, 2013b,「피사체가 된 이야기: 『천변풍경』」, 『뷰파인더 위의 경성』, 소명출판: 111-130.
박태원, 2005(1936), 장수익 편, 『천변풍경』, 문학과지성사.
벤야민, 발터, 2005[1939], 「파리: 19세기의 수도」, 조형준 역, 『아케이드 프로젝트 1』, 새물결: 127-131.
와지로, 곤, 2001[1930], 김려실 역,「고현학이란 무엇인가」, 『현대문학의 연구』15, 한국문학연구학회: 261-271.
해리 하르투니언, 2006[2000], 「고현학의 탄생」, 윤영실·서정은 역, 『역사의 요동』, 휴머니스트: 252-262.

2015/3/19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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