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만에 하루키의 소설을 읽을까 한다.

십년 전쯤인가, 하루키 책을 다시 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외우는 구절이라고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상실의 시대) 뿐이지만, 한 7-8년 정도를 지겹도록 읽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게다가 를 읽고, 일종의 자가복제가 아닌가, 왜 스토리가 빤한가, 지독한 장기 중 하나라 여겨온 ‘단조로운 묘사이나 뜨거웠던 베드신’에 감정을 집어넣은 것에 대한 반발 등을 가졌었다. 이후, 하루키의 글이라고는 “개똥벌레”나 사라진 코끼리와 사육사를 다룬 소설, “빵가게 습격사건” 같은 몇 편의 단편만 읽었다. 이후, 나와 하루키의 관계는 남몰래 가졌던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저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고 할 때나 맺어졌다. 생각보다 그 시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요사이는 지난날의 멋스러움 정도이거니라 곰씹는, 수많은 기억의 한 켠 정도일 뿐이다. 그래왔는데 말이다, 1Q84가 읽고 싶어졌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하루키는 어떻게 달라졌나, 그대로인가, 옛 기억 속 작가가 지금은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일본에 왔다하여 일본을 이해하고자 읽겠다는 멋드러진 변을 내놓을 생각은 없다.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 이 소설로 무언가를 직시할 수 있다는 건, 꿈보다 허무맹랑하다는 걸 안다, 이제는.) 어쨌거나, 아주 오랜만에 하루키의 글을 읽어본다. 그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나와 그의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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