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먹은 사람

2010/11/11 에 썼다는 문장들.

이곳은 별로 크지 않고, 깔끔하지도 않은 극장이다. 어딜 가더라도 눅눅한 냄새가 느껴지는 극장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극장보다 천 원이 싸고, 사람들이 얼마 없는데다가 극장 앞 노점에서 파는 문어 다리가 맛있다는 이유로 이 극장에 자주 온다. 극장 안은 고양이가 쥐를 모두 잡아먹은 후의 쥐구멍 속처럼 조용하지만, 노점들이 가득한 극장 앞 거리는 지나다니는 보행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극장 바깥에서 담배 한 대 피우기가 민망할 정도로 사람이 많이 지나다닌다. 게다가 까만 옷,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다리가 보이지 않는 속도로 걸어간다.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왜 저 인간들은 이 극장 놔두고, CGV니 메가박스니 하는 정신 없는 극장에 가는 걸까? 그리고 뭐 저리들 바쁜 걸까?” 모두가 “상대적인 거니까.”라는 절대적인 답을 하리란 걸 아는 나는 스스로 답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이 질문은 그저 ‘나는 내 세상이 있어’라는 자만심 가득한 말을 에둘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반성을 한다. 그리고 말한다. “머리가 아프다, 이런 생각을 하니까.” 나는 사람 구경이나 더 할 요량으로, 복도에서 건물 바깥으로 나간다.
입구 계단에 앉아서 인상을 잔뜩 찌푸린 한 남자가 보인다. 그 옆에는 담배 필터를 씹어대는 한 여자가 있다. 둘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나누는 인사 소리가 들려온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지는 “예에.”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저따위 목소리로 인사할 바에야, 그냥 모르는 체 하겠다. 차가운 인간들.”이라고 그들의 대화 뒤에 내 말을 친절하게 덧붙인다. 사람들의 대화라는 일종의 상차림에다가 내 말을 하나 올려 놓고 싶을 뿐이다. 그냥 내가 외로우니까.
남자가 극장 안으로 다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간다. “저 사람, 괜히 마음에 든다.”고 중얼거려본다. 까칠한 말동무가 필요한 날이다. 이 극장에 오는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까칠한 사람을 발견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내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끄집어 내는 머리 속의 생각들을 찬찬히 살펴 보면, 내게는 까칠한 사람들이 어울린다. 까칠하고 말 잘라먹기 좋아하는 외계인들은 빌어먹지도 못 할 잰 체하는 마초보다야 1000 배는 낫고, 긴장해서 말을 더듬는 숙맥보다는 43배 정도 낫다. 상영관으로 따라 들어간다. 그리고 남자의 옆의 옆 자리에 앉는다. 문어 다리를 씹다가, 남자에게 문어 다리 몇 개를 건네며 수다쟁이처럼 말한다. “웃으실 때, 담배 냄새 풍겨요. 문어 다리 하나 드세요. 아, 장난이에요. 아줌마가 문어다리를 너무 많이 줬네요. 조금 드세요. 더 먹고 싶으면 말씀하시고요.” 남자는 문어 다리를 받아 들고 “고맙네요. 담배 냄새나, 문어 다리 냄새나 뭐.”라고 말한다. 영화가 시작할 즈음, 남자는 조용히 문어를 씹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쥐 구멍 속에서 바깥으로 나가기는 싫지만, 구멍 안에서 다른 쥐랑 같이 있자니 불편해 죽을 것 같은 쥐새끼 같은 마음 상태다. 남자는 문어 다리를 씹는 것 말고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영화는 지루한데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온갖 잡생각들 때문에 나한테 짜증이 난다. 결국 “문어 다리도 혼자서나 씹자. 사람 구경은 해서 뭐하니, 아까 담배나 피우고 들어올 걸 그랬다. 듣지도 않는 말이나 떠들고, 나는 글러먹은 사람이다.”라고 투덜대며 영화가 미처 끝나지도 않았지만, 상영관을 빠져 나온다.
“차라리 CGV에나 가서 쁘띠 부르주아지 놀이나 할 걸 그랬나? 지저분한 극장에 들어갔더니 젠장 할 내 머리만 복잡해진다.” 노점이 가득한 인도 끝자락에 서서 중얼거린다. “아, 지랄 맞다. 나 정말 글러먹은 인간이야.” 아까 문어 다리를 산 노점 아줌마가 내게 말한다. “정신 차려. 호랑이한테 잡혀갈라. 어흥.” 나는 허하게 웃는다.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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