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와 정신적 삶」

짐멜, 게오르그(2005), 「대도시와 정신적 삶」,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새물결
위 자료의 요약(2015).

현대의 삶에서 가장 심층적인 문제들은 개인이 자기 자신의 독립과 개성을 사회나 역사적 유산, 외적 문화 및 삶의 기술의 압도적인 힘들부터 지켜내려는 요구에서 유래한다. 이는 원시 인간이 육신의 실존을 위해 치러야 했던 자연과의 투쟁에서의 마지막 단계에 속한다(35쪽). 이 모든 것에는 동일한 근본 동기가 작동하고 있다. 사회적ㆍ기술적 메커니즘 속에서 평준화되고 소모되는 데 대한 개인의 반항이 그것이다. 문화라는 신체에 담긴 영혼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구조들에서 삶의 개인적 내용과 초개인적 내용들 사이에 어떤 등식이 성립하는지, 그리고 개인의 인격이 외부의 힘들과 화해하는 적응 능력들이 어떠한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기서 할 과제다.

대도시에 사는 개인들에게 전형적인 심리적 기반은 신경과민인데 이는 외적ㆍ내적 자극들이 급속도로 그리고 끊임없이 바뀌는데서 기인한다(36쪽). 여기서 특히 대도시의 정신적 삶이 어떻게 기분이나 정서적 관계에 더 의존하는 소도시적 삶에 비해 지적 성격을 띠게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소도시의 정서적 관계들이 정신의 더 무의식적인 층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꾸준하고 지속적인 습관들을 통해서 가장 잘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우리의 오성은 정신에서도 투명한 층, 즉 가장 상층에 자리잡고 있다. 오성은 우리의 내적 힘들 중에서 적응력이 가장 뛰어나다. 오성은 대립적으로 변화하는 인상들에 적응하는 데에 어떠한 충격도, 내적 동요도 필요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대도시인은 외부 환경의 흐름이나 그 모순들에 의해서 삶이 뿌리째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방어 메커니즘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외부 현상들에 대한 반응은 가장 덜 민감하면서도 인격의 심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정신적 기관에 이양된다. 개인의 주체적 삶을 대도시의 억압적 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자구책으로 이러한 이성적 태도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다양한 개별 현상들과 얽혀 나타난다. 화폐 경제와 이성의 지배는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양자는 사람과 물건을 취급함에 있어 순수한 객관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순수하게 이성적인 사람은 개별적인 모든 것에 대해 냉담하다. 그 이유는 개별적인 것 안에서는 논리적 이성으로 다 포착될 수 없는 관계와 반응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화폐 원칙에 현상의 개별성이 자리 잡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화폐는 모든 현상들에 공통적인 것, 즉 모든 성질과 특성을 단지 수량적인 문제로 평준화시키는 교환 가치만을 문제 삼기 때문이다(37쪽).

현대의 대도시는 거의 전적으로 시장을 위한 생산, 즉 생산자가 보지 못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고객을 위한 생산에 의해서 유지된다. 이렇게 되면 고객과 생산자 양측의 이해관계는 몰인정한 객관성을 띠게 되고(38쪽) 확실한 것은 대도시적 삶의 형식이 이러한 상호작용의 가장 비옥한 토양이라는 점이다.

삶의 표면에 나타나는 일견 미미한 움직임에는 동일한 정신적 흐름들이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위의 사실 못지 않게 특정적이다. 현대적 정신은 점점 더 계산적인 정신이 되어왔다. 화폐가 지닌 계산적 본질을 통해 삶의 요소들 간의 관계에서 동일한 것과 동일하지 않은 것을 규정하는 정확성과 확실성, 약속과 협정의 명확성이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게 된 원인이자 그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대도시의 조건들이다(39쪽). 이렇게 대도시에서 사는 기술은 모든 활동과 상호관계가 확고하고 초주관적인 시간의 도식을 아주 정확히 따르지 않고서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다.

존재의 표면에 있는 하나의 점은 일견 그 표면에 속하거나 표면에서 생긴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점으로부터 정신의 심연으로 추를 드리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또한 외적으로 아주 하찮아 보이는 것들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일정한 지침에 따라 삶의 의미와 양식에 대한 최종적 결정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 삶이 팽창하고 복잡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정확성, 계산 가능성, 치밀성은 대도시의 화폐 경제적, 지성주의적 성격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내용들에도 반드시 일정한 색채를 부여한다. 또한 그것은 외부로부터 보편적이고 도식적인 정확성을 지닌 삶의 형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삶의 형식을 규정짓고자 하는 비합리적, 본능적 그리고 지배적 기질과 충동들을 배제시키지 않을 수 없다(40쪽).

삶의 형식의 정확성과 치밀성으로 가장 비인격적인 구조를 만든 바로 그 요소들이 다른 한편에서 가장 인격적인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마 둔감함처럼 절대적으로 대도시에 해당되는 정신적 현상은 없을 것이다. 우선 둔감함은 대도시의 지성주의를 고양시킨다고 생각되는 신경자극이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대립적 형태로 밀려들기 때문에 생긴다. 대수롭지 않은 인상들도 그 변화가 급격하고 대립적인 경우 신경에 무리할 정도의 반응을 요구하게 된다. 즉 신경은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써버리는 바람에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더 이상 새로운 힘을 축적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혹사당한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자극에 대해 거기에 합당한 에너지를 가지고 반응하는 능력이 없어지게 되는데, 이러한 무능력이 한적하고 변화가 없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보다 대도시에 자란 사람들에게 뚜렷이 나타나는 바로 그 둔감함이다.

대도시의 둔감함의 이와 같은 생리학적 원천에는 화폐 경제에서 유래하는 다른 원천이 합세한다. 둔감함의 본질은 사물의 차이에 대한 마비 증세이다(41쪽).

돈은 아주 가공할 만한 평준화 기계가 된다. 돈은 이로써 사물의 핵심과 고유성, 특별한 가치, 비교 불가능성을 가차 없이 없애 버린다. 돈에 의한 사물의 평가는 이제 확연히 인식할 수 있는 현상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화폐 순환의 본거지이면서 사물의 구매 가능성에 있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대도시는 또한 둔감함의 고유한 터전이 된다. 신경은 대도시 삶의 내용 및 형식에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을 그에 대한 반응을 중단하는 데서 찾는다. 이는 일정한 성격의 자기 보존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객관적 세계 전체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대가가 따른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자기 비하의 감정에 빠지게 되는 인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42쪽).

서로에 대한 도시인들의 정신적 태도는 형식적 측면에서 속내 감추기라고 볼 수 있다. 만약 무수한 사람들과의 쉴 새 없는 만남에 대해서 매번 내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면 사람들은 내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어 상상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혹은 대도시 삶에서 스쳐 지나가는 요소들에 대해 당연히 갖게 되는 불신 때문에 … 외적으로 속내를 감추는 이러한 태도 속에는 단지 냉담함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더 자주 은밀한 반감, 상호 적대감과 반발심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관계의 범위가 확장된 삶은 내적으로 … 동정심, 냉담, 반발심이라는 다양한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감정들은 의식되지 않고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며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곧 무관심에 빠진다(43쪽).

대도시의 전형적인 이러한 두 가지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반감이다.

다시금 대도시의 훨씬 보편적인 정신적 삶의 형식 혹은 외관으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이러한 태도는 개인들에게 일정한 방식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데, 다른 상황에서 그와 비견될 만한 것은 없다. 이러한 자유는 거의 모두에게 통용되는 공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발전 경향들 가운데 하나이다(44쪽).

그러나 일반적 도식은 대도시적 삶 안에서 개체성이 발전하는 모습에서도 인식될 수 있다(45쪽) . 아테네의 삶이 보여주는 대단한 역동성과 자극, 독특한 다채로움은 탁월한 개성을 지닌 몇몇 인물들이 개성을 말살시키는 소도시가 부단히 행사하는 외적ㆍ내적 압력에 대항해 싸워나갔던 사실로 설명될 것이다. 여기서 긴장된 분위기가 생성되는데 이러한 분위기에서 약한 자들은 억압되고, 강한 자들은 자신을 열정적으로 지켜나가도록 고무되었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싹텄다. 여기서 주장하려는 것은 삶의 가장 광범위하고 보편적인 내용과 형식들은 가장 개별적인 것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는 사실인데, 이러한 연관성은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타당성을 지닌다. 가장 보편적인 것과 가장 개별적인 것은 모두 공통적인 단계를 거친다. 다시 말해 이 양자는 모두 결집력이 강한 조직과 집단을 공동의 적으로 갖는다(46쪽).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들이 가장 외롭고 쓸쓸하게 느끼는 곳은 다름 아닌 대도시의 혼잡 속이라고 하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자유의 이면일 따름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가 반드시 그의 정서적 안정으로 나타날 필요는 결코 없다는 사실은 대도시에서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 집단의 크기와 인격의 내적ㆍ외적 자유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에 비추어 대도시는 자유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범위가 역동적으로 확장되면, 이는 다음 단계에 그와 동일한 크기만큼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크기로 확장되는 발판이 된다 (47쪽). 바로 이 지점에서 삶의 양이 매우 직접적으로 질과 특성으로 전환된다. 대도시에서는 도시 내부의 삶의 물결들이 도시를 넘어 보다 넓은 국가적ㆍ국제적 영역으로 뻗어나간다. 즉 대도시의 크기에 대한 논리적ㆍ역사적 보충물인 개인의 자유는 비단 이동의 자유라든가 편견이나 고루함의 제거라는 소극적 의미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8쪽).

도시는 무엇보다 경제적 분업이 최고로 발달한 장소이다. 도시는 규모가 커짐에 따라 더욱더 분업에 결정적인 조건들을 제공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도시의 삶은 생계를 위한 투쟁을 자연과의 투쟁으로부터 사람을 둘러싼 투쟁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이다. 아직 다 고갈되지 않은 수입의 원천을 발견하기 위해, 또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기능을 찾기 위해 자신의 성과를 전문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성이 생기고 이는 나아가 일반 대중의 욕구를 분화ㆍ세련화시키고 풍부하게 만든다.

이는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특성들의 개별화로 이어진다. 우선 대도시 삶의 차원에서는 고유한 인격을 펼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미와 에너지의 양적 고양이 어느 한도에 이르면 사람들은 질적 특수화를 시도하는데 (49쪽) 그 의미는 결코 괴팍한 행동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 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계기는 비록 사소하게 생각되지만 대도시적 존재 형식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소도시의 관계와 비교해볼 때 대도시에서 개인들의 만남은 짧고 드물다는 점이 그것이다. 대도시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상대에게 다가가 자신의 개성을 강조하려는 유혹이 훨씬 더 크다.

대도시가 어떻게 해서 가장 개인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되는지에 대한 가장 심층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대 문화의 발전은 객관 정신이 주관 정신보다 더 우세하다는 특징을 지닌다(50쪽). 많은 점에서 개인들의 문화는 퇴보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분업이 늘어난 결과이다. 곧 개인은 사물들과 세력들의 거대한 조직에 비해서 한낱 먼지와 같은 존재로 격하되는데, 이들 사물과 세력은 개인에게서 모든 진보, 정신력, 가치들을 점점 빼앗아가고, 그것들을 주관적 삶의 형식이 아니라 순수하게 객관적 삶의 형식으로 만들어간다.

대도시는 이처럼 모든 개인적인 것을 초월하는 문화의 본래 터전이다. 다른 한편으로 삶은 점점 더 개인적 색체들이나 비교 불가능한 특성들을 몰아내는 비인격적 내용들과 제공물들로 채워진다. 그 결과 개인적인 것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자신의 개성과 특성을 짜내야 한다(51쪽). 

대도시의 양적 조건에서 자라난 이러한 두 가지 형식의 개인주의, 즉 개인의 독립인격의 특이성이라는 두 가지 개인주의가 역사적으로 차지하는 위치에서 보면, 정신의 세계사에서 대도시는 전적으로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52쪽). 더 이상 모든 개인 안에 존재하는 ‘보편적 인간’이 아니라 질적 유일성과 대체 불가능성이 개인적 가치를 유지하게 된다. 우리 시대의 외적ㆍ내적 역사는 개인 주체가 전체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 가에 대한 이 두 가지 방식 간의 투쟁과 분규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에게 대도시의 고유한 조건들은 이 두 방식이 발전할 기회이자 자극을 제공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대도시는 이 두 가지 방식간의 갈등과 조화의 시도가 이루어지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이로써 대도시는 정신적 존재의 발전에 있어서 전적으로 고유한, 그 의미가 분명한 위치를 획득한다. 대도시는 삶을 포괄하는 대립된 조류들이 동등한 권리로 만나고 전개되는 장소로서 위대한 역사적 형상물의 하나임이 밝혀진다. 따라서 대도시의 개별적 현상들이 우리에게 호감을 주든 주지 못하든 우리는 대도시에 대해 재판관의 태도로 임할 수 없다. 대도시에 작용하는 힘들은 전체 역사적 삶의 뿌리와 정점에 자리 잡고 있고 우리는 하나의 세포 같은 덧없는 존재로서 그러한 삶에 속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과제는 불평하거나 용서하는 일이 아니라 오로지 이해하는 데에 있다(53쪽).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