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기장의 한 켠, “생활내용”
한국 사회에는 “누구나 경험한” 여러가지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일기쓰기”는 안 해본 사람을 찾기 힘든 ‘필수템’, 개중에 하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던 1991년에서 1996년까지 각 년의 1-2월과 7-8월의 일기는 거의 그대로 있다. 5월과 11월 말 쯔음이 되면, 어머니는 일기장을 몇 권씩 사다놓고는 “방학 때 이 일기장 다 쓰는거야.”라는 말과 그 압박 덕택에 남아있는 셈이다. 어찌보면 우리의 일기쓰기란 학교와 부모의 합작품인지도 모른다. 탐정의 눈을 빌려보자. 이 일기장이 하나의 흔적(사료)이라면! (실제로 1970-90년대의 일기장들도 국립민속박물관에 사료로써 수집되어 보존, 전시되고 있다. 이 일기장도 박물관의 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의 어떤 흔적이란 말인가!
이 일기장은, 단순히 일기를 쓰는 종이뭉치로써의 일기장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화된 공간이다. 각 칸에 역할이 나뉘어있다. 맨 위에는 날짜와 날씨. 왼쪽편에는 “생활내용” 항목과 체크란, 왼쪽 아래는 “좋은 일기는”이란 제목의 짧은 메시지들. 오른편엔 “주제”란과 원고지 형태로 된 본문. 그 아래엔 주인이 헷갈리는 “가정통신 및적어두기”가 있다.
이놈의 일기장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써야하는 공간이라지만, 개인적일 수 없었다. 여럿의 공동작업장이기 때문이다. 세번째 “교장선생님말씀“이란 제목의 일기를 보자. 그 왼쪽 아래에 보면 희미하게 뻘건 “우”자가 보인다. (“수”받을 내용은 아니었나보다.) 선생님의 확인이다. 어릴 적, 내 일기장은 나만 글적대는 공책이 아니었다. 글쓴이는 나이지만, 담임선생의 “아주 훌륭한 생각을 했습니다”같은 평가나, 편집자일을 한 어머니가 교정기호를 써가며 맞춤법이나 용법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공동작업장이었다. 그럼에도 철저히 개인적인 생활을 소재로 삼아야했다.
더 중요한 건, 나의 “반성”이었다. “생활내용”은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칸이었다. 앞서 말한대로 항목과 체크란이 있어서, 마치 설문지표와 같다. 게다가 각 항목은 “근면”과 “책임”과 “협동 자주”와 “준법”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있고, 하위 항목에 따라 해당하는 것을 체크하게끔 되어 있다. 내게 묻는다. “정직한 생활”을 하였는지, “정숙한 생활”을 하였는지. “애국하는 일”과 “저축을 잘” 했는지 따위 등을. “학교생활 규칙을 잘” 지키고 “잘못한 일을 뉘우쳤”는지 따위 등을 말이다. 하나의 조사표와 같은데, 분명 반성, 더 나아가 반성을 통한 ‘계몽’을 몸에 익게하는 의도란 건 분명하다.
생활내용에 대한 설명은, 바로 일기장 맨 앞 표지 뒷면에 있었다. “새로운 생활 일기 특징”이란 부분이다. 생활 내용들은 “문교부령 286호의 행동특성을중심으로” 하였다고 한다. (“문교부령 286호”는 1972년 3월 1일에 시행된 “교육과정령” (국가법령정보센터)을 가리키는데, “행동특성”이 정확히 무얼 가리키는지는 더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사업가가 공책의 과학성을 자랑하려 한건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정부의 시책을 따른 것인지, 혹은 역사적으로 <공무원 수첩>(1887, 일본 대장성)의 자장 안에 있는 건지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반성”의 “반복”을 꾀한다.
제시된 생활 내용을 “반복”적으로 “반성”케 하여 “행동의 변화”를 꾀하고 “전인적인 인간”을 육성하고자 한다는데, 사실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가 아니라 성공하였다!. 일기장에 얽힌 추억은 내다 버리고. 연초부터의 이 지저귐은, 분명 <교육과정령>의 <부록 2 – 국민학교특별활동>이 목표하는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생활경험을 통하여 사회성의 신장을 도모하고, 민주적이며 협동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공민”의 증명인지도 모른다.
나의 일기에 관한 나름의 평가로 이만 마치겠다.
“나의 일기장은 소설가가 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일기들은 분명 수준이 낮은게 사실이나, 하나의 문학이다. 기록적 사실성은 떨어진다. 일본의 사소설을 몸으로 익힌 탓인지, 픽션을 위해 사실적 소재를 끌어다 쓰는 시도가 눈에 띄며, 심훈의 <상록수>가 자랑하는 반성과 계몽의 이야기 구성이 보여진다. 아마 여기에는 한때 <상록수>를 좋아한, 작자의 모친 영향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름없는 1990년대의 이름없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수필문학이거나 짧은 소설의 운명은 근대의 그것을 타고난 것이 분명하다.” – 문학의 친구, 소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