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치사사건, 그 주변부.

박종철 가혹행위 치사사건 가해자 아내의 일기

출처: http://archives.kdemo.or.kr/View?pRegNo=00868180

이 자료는 故황인철 변호사가 기증한 자료다.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은 남영동에서 처절히 죽었다. 1월 15일 오후 3시 30분, 다음 날인 1월 16일자 『중앙일보』 는 특종을 전했다. “경찰조사 받던 서울대생 숨져”. 언론사에게는 특종이었고, 사람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이 죽음은 분명, 6월 항쟁의 단초였다. 이 사건은 하나의 신화적 계기였다. 그러나 신화성을 벗겨내고,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즉, 사건 자체와 사건의 처리에 대한 국가의 처신말이다.

 

이 일기는 가해자 조한경의 부인이 쓴 일기다. 부인은 남편의 죄가 실수라며 기도한다. 그러나 남편은 “사무실에서 다 알아서 해”주리라 말할 뿐이다. 정작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이 ‘국가’는 위로금 몇 푼을 주며 가족에 대한 감시를 지속할 뿐이다. 처음에 부인은 ‘회사’가 해결해주리라는 믿음이 있던 것처럼 보이나, 나중에 가서는 직접 변호사를 찾아가 (회사의 입장과 다른) 형량을 줄이기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아렌트가 주지한대로 악의 얼굴은 평범할 수도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건, 사람 개개인의 나쁨과 악함만은 아니다. 바로 구조적인 산물이다. 국가가 학생운동조직이나 언론매체에 대한 통제 시도만이 아니라, 내부를 단속하는 방식 역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이 자료가 보여주는 건, 그 어떤 사건도 평면적이며 단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우연한(?) 사건의 이면을 통하여, 국가의 민낯을 추측할 수 있다.


 

1월 15일
신문보고 놀람.
오전중 벽세에서 전화옴.
“별일 아니니 걱정 마라.
오늘 일찍 들어갈게.“
11시가 넘었는데 연락이 없어 불안하다.

16일
8시 30분경에 들어오신 아빠의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어쩐 일이에요?”
놀란 나의 가슴은 진정이 안된다.
“인공호흡 시키느냐고 눈의 신경이 파열되었단다.난 뺨 한 대 안 때렸으니 염려 마라. 책임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아빠의 말을 믿는다.

17일
정상 출근
퇴근하지 않음

11시가 넘어 이○○씨 한테 전화 옴.
“조금 있다 찾아 뵙겠습니다.”
“외상 아빠와 함께요?”
“가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불안하다.

다시 전화 옴 (12시경)
“너무 늦어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18일

오후 1시 30분경
이○○ 김창환(김창현)씨 오심. 정기홍씨.
“면회 준비 하세요. 조형은 절 때 그런 사람이 아닌데 정책상 어쩔 수 없습니다. 잘 될꺼에요.“
위로의 말에 가슴이 메이도록 아프다.
가슴 아프다는 말이 무엇인가 이제야 느껴본다.
이러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하는걸까?
망치로 대려 통증을 느끼는 것 같다.
어제 밤새도록 눈물 흘렸건만 수도 꼭지 틀어 놓은 것 같구나.

2시 40분경 사무실 도착
특수대에 가보니 기자들이 많이 와 있었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가야호텔 커피숍에서 기다리다 6시경 다시가 면회함.
상상외로 담담한 모습에 도리어 위로 받다.
“걱정 말고 아이들을 잘 돌보라.
내가 십자가를 졌으니 Θ[옮긴이: 하나님]은 아신다.
고문한 당사자는 괴로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떳떳하게 법정에 가서 투쟁 할수 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직원들
“그럴수 없다. 이대로 보낼수 없다.” 부둥켜 않고 울다.
“내일 아침 신문에 내가 물을 눌러 죽인 것으로 나올테니 놀라지 말라.
조서를 꾸며 위에 보고 했기에 그대로 시인 할 수밖에 없다. 반장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대로 인정하기까진 두시간동안 고민했었다.
어쩔수 없지 않느냐. 대공을 위해 내가 책임을 질 수밖에.
잘 될것이다. 너무 염려 말고 사무실에서 모든일은 돌봐 줄 것이다.“
집에 돌아와 동생네로 피신함.

19일
친구 댁으로 옮김 (대림 APT)

20일
본부장, 여러 직원들, 큰아빠, 강경사[옮긴이: 강준규] 부인 만남.
개인의 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총 없는 전쟁을 하는것이니 마음 굳게 먹고 견디자.
생활 대책을 세워 주라 말씀하심.
위로금으로 삼백만원 줌.

21일
아빠 친구들과 신문과 TV을 보며 걱정하다.
도대체 어떻게 되어져 가는 것인가

23일
큰 집으로 옮김.
큰 아빠와 상의 한 결과 집으로 들어가기로 함.

24일
방 얻는 문제로 직원들 만남.
운동권 학생들이 찾아올찌 모르니
방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

25일
큰 집에서 나와 연희동에 옴.
연희 교회에서 예배 드림.

26일
전도사님 만나다.
겨울 성경 학교를 참석치 못해 미안하다.
보따리 갖고 집으로 옴.
남의 집에 있다가 집에 오니 애들도 좋아하고 나 역시 마음이 편하다.
어쩔건가?
내가 왜 피해야 하나.
남편은 교도소에 들어가 고생하고 있는데 신변에 위험이 무어 대수란 말인가
돌을 던지면 맞고 화염병을 던지면 맞자.
남편의 진실을 누가 말할수 있단 말인가 나 만이라도 묻는 자들에게 진실을 말하자. 0은 알고 계시겠지.

27일
과장님 만남.
(여반장, 이반장, 여러 직원)
가야 커피숍.

28일
홍 계장 다녀가심.
과일, 과자, 고기, 50,000-
“위험하게 왜 집에 왔느냐?”

내일은 민속의 날이다.
그곳에서도 날짜 가는 것을 알고 있을까?
상상도 할수 없는 곳이기에 걱정이 된다.
Θ은 어떻게 재판하실까?
이쪽과 저쪽의 의를 구하는기다.
국가를 위해 충실스럽게 일하다 실수한일
용공주의자를 고문하다 질식사한 죽음
과연 누가 죄인이고 누가 의인인가
Θ의 의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그러나 Θ의 말씀은 진리이다.
진리의 그말씀을 믿고 기도할 따름이다.
처리하고 결정하시는 자는 Θ이시니깐.

29일
아침 일찍 큰 아빠와 함께 시골에 갔다.
마음 괴로워 안갈려 했지만 의상, 민상이를 생각해서, 또 어머님 아버님, 비화의 모습을 봄으로 조금은 위안을 드리고 싶어서-.
식구들을 만나니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다.
함께 할수 없는 아픔 때문에
차례도 생략하고 점심도 안 먹은채 올라왔다.

30일
추운 날씨에 방 문제로
직원들이 고생이 있다.

31일
이○○씨 만남.
적금(재형) 붓던 통장 갖고옴. 2,500,000.

1일
새로운 한달이 시작된다.
시간은 쉬임없이 지나건만
어떻게 되어가는것인지 만날수도 없으니
답답하다.

2일 아빠 친구들과 방 문제로 만나다.
집에 들어오니 담배 연기에 신경질이 난다. 직원들 모두 가버렸으면 좋으련만-. 괜한 신경쓰인다.

4일
이사함
새벽 5시에 도둑 이사를 하다.
비참한 날들이다.
왜 이리 되어야 하는지-.

6일
정리도 안된채 피곤하다.
땅속 깊숙이 들어가고 싶구나.

7일
3시쯤 첫 면회.
직원들과 함께 동행함.
야윈 모습, 초라한 모습,
뵙기 민망하다.
당신이 무슨 죄가 있기에
책임자로써의 도리라 하더니
이 무슨 변고인가?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눈이 뜨인다.
왜 당신이 그런 모습으로 감옥 속에 앉아 있어야 하나.
않된다. 이러면 않된다. 진실을 밝혀야지 왜 죄인이 되어야 하고 주범이 되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한 고통이며 누구를 위한 아픔을 감수하여야 하는걸까?
자식을 생각하고, 당신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 한다면 진실을 말하○○

14일
큰 아빠와 면회함.
억울함을 얘기하다.

21일
진실을 밝히자. 변호사 얘기도 하다. 주저하는 표정이지만 가족이 감격히 얘기한다.
서계장이 300,000 갖고 오심
월급에 준해 생활비로 준다고 했다
안주어도 고만이겠지만
생각해 주니 고맙다.
2,3년이면 해결되고 연구소에 자리를 마련하겠다나. 믿기지 않는다.

24일
단장님, 5처장님, 본부장님 방문.
본부장, 천만원 위로금으로 주심.
서울대생 말 “뺨 한 대 안맞고 구속되어왔는 그사람이 그럴수없다고”하여 간다. – 단장 말씀.

5처장: 모두가 잘 할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잘하는 것일까?
짊어진 멍에는 어떻게 벗겨지나
억울함을 어디서 호소하나?

28일
오후 면회.(직원들 동석)
저녁 때 의정부로 이송한다고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인가?
검사한테 “얘기 한 것 때문인가

3월 7일
의정부 면회

9일
5처장 만남.
생활대책, 형량조절.
2시간 걸친 많은 얘기를 하다.

8일
5처장 면담 요청
변호사 사건으로 화를 낸다.
가족으로선 당연한 처사가 아닌가?
조금이라도 억울함을 풀수 있다면,
형을 짧게 할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랴.
이해가 안간다.
우리가 무지막한 무식하지도 않는데
야당 쪽으로 기울까봐 그렇단다.
정치, 여론을 살펴가며 하는데-.
사무실 쪽에 모든걸 일임하란다.
위와 협상을 잘해 형량도 짧게 생활비도
100만원식 빨리 나올수 있게 한단다.
다 좋다. 그러나 죄목은 어쩔것인가.
어떻게 벗길 수 있을까?

19일
아빠와 단독 면담.
5처장이 보내서 온 줄 알고 있다.
생각해 보겠단다.
유과장한테 결심을 했단다.
정작 아빠가 죄인이라면 사무실에서도
그런 태도는 않했으리라.
번복할까봐 전전긍긍이다.

20일
생활비(백만원) 갖고 홍계장 오심.
돈을 모아 적립하여 그 이자로 생활할 수 있게 한단다.

21일
면회.
변호사 문제로 갈등.

28일
면회 안됨.

4월 4일
면회 안됨
검사 재조사가 있단다.

6일
5처 면담.
3일(변호사) 만나 얘기 들은 말로 듣기 싫어 하겠지만 억지쓰다.
공동정범, 과실치사, 살인죄는 아니란다.
국민 모두가 죽은 자의 편인데 누가 믿어 주나. 진실은 밝혀야 한다.

7일
유과장한테 전화옴.
역빌딩에서 만나 똑같이 들려 주고
기분 상힌 상태로 헤어짐.
오후에 의정부 면회갔으리라. (유과장) 다짐을 받고 확인하고 그러하겠지. 5처 유과장도 못한 일일게다.

11일
생활대책에 확실한것을 보여줬다 함. (1억 통장)
큰 아빠와 작은 갈등.
변호사 말, 5처의 말, 모두가 불확실하다.

다만 전능자이신 Θ만 바라보자.
공으로우시고 진실하시며 정직을 원하시는 그 분이 재판장이 되어 주시고
이 억울함을 풀어주시리라.
당신이 사랑하는 아들이니깐
오른손으로 꼭 잡고 계시니깐
내 힘이 연약하니 당신께서 해결하여 주소서.

18일
면회.(어머님과 함께)

19일
5처 방은 사무실
(전대통령 임기 만료때, 전에 교체 때, 88올림픽 후)
2시~3시간 앉아 있었다.

25일
면회
최선책과 차선책
실익과 명예, 가족. 갈등 “ ” “

5월 2일
많은 식구 면회

5월 9일
어머님, 누님.

11일
5처 방문 (병문안)
사모님과 면담
자기남편을 믿으란다.

16일
형부, 친구들.
처음 이야기가 재연되고
완전히 포기상태에서 안정을 찾겠다고
3시간-4시간 면회.

19일
유과장 유인물 갖고 만남.
흥분과 초조의 상태.
의정부에 가서 보이고 그네들 의견을 듣겠다고.

5처 방문.
피곤에 지친 모습.
여러 말을 하지만 귀에 들리지 않는다.

기도가 응답 되나 보다.
진실과 공의를 원하시는 Θ이 천주교를 통해 밝혀지다니.
가족이 알 수 없는 세세한 곳까지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걱정도 앞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인다.

20일
사건후 생활비를 연기하려다 5처 말에 주었다.
귀빈다실 유과장 서계장
전과 다른 초조한 분위기
뭔가 일이 터지나 보다.

 


 

사료 소개

각종 성명서 외에 1987년 1월 26일 김수환 추기경이 박종철 추모 및 고문추방을 위한 미사에서 행한 강론 <박종철 군의 죽음을 민주제단에 바친다> (등록번호 : 162432),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 발족식 안내문( 등록번호 : 431893), 박종철 군 아버지 박정기씨가 쓴 재판 관련 글(등록번호 : 51925), 박종철 고문과 관련한 조영래 변호사의 자필노트(등록번호:431739), KBS가 제작 방영한 박종철 관련 영상자료 인물한국사 시리즈(등록번호 : 456695, 456702), 동아일보 신문스크랩(등록번호 : 59558), 경향신문 사진사료 143건, 박용수 선생 사진사료 57건 등 비교적 다양한 자료가 망라되어 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http://archives.kdemo.or.kr/Collection?cls=007&yy=1980&evtNo=10000074

사료로 보는 6월 민주항쟁  “첫번째 죽음 – 박종철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다>
http://contents.kdemo.or.kr/june/

사료이야기 “박종철고문치사사건 – 진실이 힘이다” http://archives.kdemo.or.kr/contents/121227.jsp

 


 

관련된 읽을거리

김원(2009), 『87년 6월 항쟁』, 책세상.
김윤영(2006), 『박종철: 유월의 전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태호 외(1998), 『박종철 평전』, 박종철출판사.
서중석(2011), 『6월 항쟁: 1987년 민중운동의 장엄한 파노라마』, 돌베개.
유시춘(2003), 『6월 민주항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최규석(2009), 『100도씨: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창비
편집부(2010), “6월 항쟁을 기록하다” 전5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Junchol Kim So

도시 연구자, 서울을 살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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